송두율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 "김정일 서울 방문 빨라질 수 있다“
  • 南文熙 기자 ()
  • 승인 2000.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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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와 결탁한 남한 일부 세력의 고의적인 공격으로 인해 한국 정부가 흔들리거나 할 때 쐐기를 박기 위해서 서울 방문을 결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몇주 전 <시사저널>은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56·뮌스터 대학)를 인터뷰했다(<시사저널> 제 552호). 송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이나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경우 어떤 양상이 될지 그의 견해를 밝혔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나자 그의 예측은 대부분 현실로 나타났고, 그는 일약 국내 언론의 관심을 끄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동안 ‘해외의 반체제 인사’로만 인식되었던 그가 북한의 지도자와 그 체제에 대해 뛰어난 감수성을 가지고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충격적 장면’들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날을 내다보기 위해 그를 다시 지면에 초대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해외에서 남북 화해를 위해 애써 오셨으니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점을 주변 4강과 전세계에 널리 보여줬다는 것이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뜨거운 정에 차가운 지성을 결합해 하나씩 풀어 가면 잘 되리라고 봅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우선 감성적인 면에서 남한 사회에 충격을 많이 주었습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인 스타일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김위원장의 사업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즉 스케일이 매우 크다는 점과 두뇌 회전이 빠르고 임기 응변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것이었는데 남한에서는 그동안 너무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쪽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기도 했고, 1994년 김주석이 사망했을 때 잠깐 면담하고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북한 주민 역시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특히 그동안 북한은 남한의 대통령을 ‘미제의 주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평양 시민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씨와 달리 김대통령에 대해서는 매우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하다 고생한 사실이 많이 알려졌고, 또 북에 대해서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온 점에 대해 정치를 떠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대한 신뢰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북한 주민은 최근 몇년 간의 어려운 시기를 김위원장의 판단과 식견과 정치력에 의존해 극복해 왔습니다. 오죽했으면 ‘김위원장만 믿고 따른다’는 슬로건이 있겠습니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그가 결정한 것이니까 옳다고 믿는 분위기가 강한 것입니다.

군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남한의 경우 주적 개념의 혼란이 얘기되는데 북한 인민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선 주적 개념에서 남북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 인민군에게 제일의 주적은 ‘미 제국주의’이지 남한 군대가 아닙니다. 북한은 그동안 반제국주의 투쟁을 우선시해온 사회입니다. 따라서 주적 개념에서도 항상 ‘미 제국주의’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이 ‘괴뢰 정권’입니다. 따라서 혼란이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그동안 북한에게 남한은 무엇이었습니까? 적입니까, 아니면 민족의 한 일원입니까?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북한에도 남한을 욕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1972년의 7·4 공동성명에서 남북한이 ‘민족 대단결’ 원칙에 합의한 이후 북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 과정 등에서 이 부분을 매우 강조해 왔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과거 항일투쟁 때 결성한 조국광복회 강령 중에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민족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한 구절이 있는데, 이런 정신에 입각해 주민 교육이 이뤄져 왔습니다. 남쪽에서는 북한을 주로 이념적인 차원에서 인식했던 데 비해 저쪽은 이념보다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려고 했다는 점이지요.

최근 적십자회담에서 이산 가족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는데 궁금한 것은 북측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인 것 같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이산 가족 문제는 역시 예민한 문제입니다. 최소한 장기수 송환이 이뤄지고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만나는 것은 어렵겠지만 잘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언론입니다. 북쪽의 가족과 친척을 만났더니 못먹어서 그런지 피골이 상접했더라는 식의 기사가 계속 나가면 저쪽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이지요. 언론이 이런 점에 유의해서 협조가 잘된다면 순탄하게 되리라고 봅니다.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제가 아무래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언제쯤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8·15가 기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8·15에 오는 것은 현실성이 없고 북쪽도 10월10일이 당창건 55주년 기념일이기 때문에 그때를 전후하거나 아니면 좀 지나야 될 것 같습니다. 어쨌건 지난번 두 정상이 합의한 후속 조처들이 실천에 옮겨지면 가능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외세와 결탁한 남한 일부 세력의 고의적인 공격으로 인해 한국 정부가 흔들리거나 할 때 김위원장이 서울 방문을 결단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태를 내버려 둘 경우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김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때 김대통령 평양 방문 때와 같은 환대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는데요.

반대 데모도 있겠지요. 그러나 김위원장이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남한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 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상화되어 있었고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물론 알고 있지요. 다만 도가 지나칠 경우 밑에서 말릴 수도 있기 때문에 남쪽에서도 잘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위원장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겠다, 또는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겠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현실 사회주의의 공간을 휴전선 이북으로 한다’고 당 규약을 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이지 남측과 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단 이번에 자주 원칙에 합의했기 때문에 괜히 이 문제를 꺼내서 일을 꼬이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봤을 것입니다. 앞으로 미군 문제와 대미 관계 등은 4자회담이 열리면 그 자리에서 풀려고 할 것입니다.

남북이 주변국 관계에서 공조 체제를 이루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주변 강대국들의 원심력에 대항해 민족의 공동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서로 체제는 다르지만 민족의 동질성에 근거해 공동의 이해관계를 확충하고 그 메시지를 주변 국가들에 전할 경우 주변국들이 그것을 전면 거부할 명분은 없습니다. 동서독과 달리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남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21세기의 동북아 질서,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현실을 깊이 자각하고 민족적 관점에서 인식을 공유해 가면 통일 전망도 밝아진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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