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행정자치부장관 "내부 고발자 많아야 공무원 부패 근절"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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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공직 비리가 하위직일수록, 인허가권과 단속권을 가진 일선 공무원일수록 구조화·관행화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이 깨끗해지지 않는 한, 국민들은 개혁을 실감하지 못합
김정길 장관은 정부 개혁의 전도사인가 돈 키호테인가. 김장관은 얼마 전 공직 사회의 비위와 행정 비능률을 고발한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라는 책을 펴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공무원 정책을 책임진 현직 장관의 이런 따끈따끈한 내부 고발에 대해 스텍트럼이 엄청나게 다른 찬반 양론이 연일 행정자치부 대화방에 쏟아지고 있다. 김장관은 정부 개혁 없이 한국의 미래는 없다면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거듭 강조했다. 자신을‘내부 고발자 1호’라고 자처하는 김장관을 10월24일 세종로 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공무원 부패 근절책 등을 물었다.

베스트 셀러에 진입했더군요. 정치적 행동이 아니냐는 비난이 많습니다.

얼마 전 한 야당 국회의원이 선거를 의식하지 않았느냐고 비꼬더군요. 그랬다면 선거 직전에 출간해 뿌렸을 겁니다. 그게 효과적 아닙니까. 장관 그만두고 해도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무 소용 없는 일이죠. 저라고 왜 책을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겠습니까. 지금도 부담스럽습니다. 가만 있으면 대통령에게 점수 따서 장수할 수도 있을 텐데 괜히 평지 풍파를 일으키면 옷 벗을 것 아닙니까. (책을 펴내는 일이) ‘정치인 김정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조용한 개혁을 하는 것이 정석 아닙니까?

사정을 통한 개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반향이 큰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 책이 대부분의 성실한 공무원마저 도매금으로 매도했다고 비쳐 가슴 아프지만, 부패하고 무사 안일한 공무원을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실추한 전체 공무원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저는 김대중 정부가 공직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마지막 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같이 어려울 때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영영 못할 것이라는 절박한 생각뿐입니다. 정부 개혁이 되지 않으면 사회·경제 개혁도 할 수 없습니다. 몇달 전 영국의 정부 개혁을 주도했던 다이애나 골즈워디 여사를 만났더니 정부 개혁을 먼저 하지 않으면 사회·경제 개혁은 절대 할 수 없다고 그러더군요.

대통령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청와대 부속실장을 통해 책을 드렸습니다만, 특별한 말씀은 없었습니다. 김중권 비서실장이 적절할 때 좋은 책을 썼으며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잘 전달했다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

최근 사정이 왜 중·하위직 공무원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입니까?

대통령이나 저는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부정 부패 척결 의지가 상위직보다 덜하다고 봅니다. 특히 최근 들어 공직 비리가 하위직일수록, 인허가권과 단속권을 가진 일선 공무원일수록 구조화·관행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비리는 규모나 내용 면에서 이미 생계형 비리 차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현정부가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비리 소지가 많다고 보는 건축, 공사, 보건·환경, 교통, 세무, 교육 병무 등 16개 취약 분야를 중점 단속 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이 깨끗해지지 않는 한, 국민들은 개혁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물론 상위직 부패도 엄히 다스려 공직 사회에서 부패와 무사 안일을 몰아낼 것입니다.

이재오씨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대통령이 중·하위직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을 지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전부터입니다. 몇달 전 강남에 사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집 두 채에다 고급 차를 2 대나 굴린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고, 경찰 뇌물 수수 비리가 터져나왔을 때도 그러셨습니다.

비리 공직자를 솎아내는 사정도 필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비리가 싹트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접근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공직 부정 부패는 사회 전반의 구조와 얽혀 있어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뿌리 뽑을 수 없습니다. 부패 환경 제거, 다시 말해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집니다. 권력 핵심부터 깨끗해져야 설득력을 갖습니다. 물론 감사와 감찰을 강화해 조그만 비리에도 단호히 대처해야 하며, 한번 비리를 저지른 공직자가 사기업에 다시 취직하는 것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비리를 양산하는 원천인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규제를 대폭 수술해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올해 각 부처마다 50%의 규제 철폐 목표치가 주어져 있습니다. 또 지금은 경제 사정 탓에 어렵습니다만 한눈 팔지 않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정도로 생계를 보장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정부는 이런 제도적 접근을 통해 끝까지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과거 정권처럼 개혁은 되지 않고 도리어 복지 부동만 낳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문민 정부는 사정 일변도여서 엎드려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현정부는 사정과 함께 법과 제도를 바꿔 공직 사회를 변화시킬 겁니다. 민간에서‘철밥통’이라고 빗대듯이 한번 공직자는 영원한 공직자였지만 현정부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목표 관리제·점수 관리제 같은 경쟁 체제를 도입해 같은 직급이라도 월급이나 승진에 차별을 둡니다. 요즘 낙지부동이라는 신조어도 나왔습니다만 일 안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복지 부동을 일삼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조처들이 헌법에 보장된 신분 보장 원칙을 허무는 것은 아니지만, 도태 압력을 높여 공직 사회에 만연한 비효율과 복무 기강 해이를 바로잡는 데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한국 공무원의 부패 정도는 세계적으로 어느 수준입니까?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 지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85개국 가운데 96년 27위에서 98년 43위로 떨어져 갈수록 부패가 창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패는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컴퓨터 통신 신고방에 민원 공무원이나 경찰관의 직무 태만 행위, 개인 비리 들이 꽤 올라옵니다만, 외부로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공직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감찰과 비리의 원천이 되는 규제를 혁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고발자의 신고가 가강 강력한 장치가 됩니다. 부패방지법에도 내부 고발자 보호 조항이 들어갑니다만, 신고를 고자질로 여기는 문화나 잘못된 관행과 비리를 덮어두는 침묵이 오히려 부패를 온존시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내부 고발자 1호’ 아닙니까?

다른 부처를 독려하기에 앞서 우선 행정자치부부터 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무처와 내무부를 합친 행정자치부는 다른 부처 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원성이 자자한 부처였지만 많이 바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부처에 비해 인력 감축도 많이 했고 친절 운동도 펼쳤습니다. 한달쯤 이 운동을 하자 한 신문이 ‘여기가 행자부 맞아요?’하는 칼럼을 냈습디다. 정부 개혁의 목표는 더 효율적이고 질 높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우선 손쉬운 친절부터 실천하자는 겁니다.

공직 사회의 이른바‘장관 길들이기’를 실감하고 계시겠네요.

저도 ‘장관으로 장수하려면 대통령과 많이 독대해야 한다. ‘꺼리’는 우리가 제공하겠다’‘예산 많이 따와야 능력 있는 장관이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달쯤 되니까 통합 부처를 장악하지 못해 곧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더군요. 장관을 위하는 척하면서 흔드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지적을 저에 대한 염려로 받아들이고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행정을 펼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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