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e메일, 꿈이 아니다
  • 이원근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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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향기’ 개발 진행중…음반·휴대전화 등에도 적용 가능
전자 우편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몇 분이 멀다하고 쏟아져 들어오는 스팸 메일 탓이다. 나름으로 차단막을 치고 부산을 떨지만, 스팸 메일은 마치 불사신처럼 그 벽을 뚫고 들어온다. 허섭스레기 같은 내용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만약 전자 우편에서 상큼한 장미 향기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자. 이성 친구의 생일날 초콜릿이나 사탕 대신에 전자 우편으로 신선한 장미 향기를 첨부해서 보내고, 향기가 담긴 음악 CD를 선물한다면 얼마나 매혹적일까. 전자 우편을 열면 향긋한 장미 향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선물로 받은 댄스 음악을 틀면, 함께 갔던 나이트에서 마신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한 맥주 향과 열띤 춤사위 끝의 후끈한 땀내음 그리고 이성 친구에게서 느꼈던 체취가 컴퓨터에서 솔솔 나온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선물인가.

파리의 낭만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CD가 어울릴 것 같다. 장고 레인하트의 기타 연주 소리가 들리고, 1933년 파리의 어느 클럽에서 맡을 수 있는 시가 연기와 보졸레누보의 향기, 그리고 집시 여성의 값싼 향수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CD.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잘츠부르크의 화실에서 느낄 수 있는 달고 얼얼한 밀랍 양초 타는 냄새, 마룻바닥의 나무 향, 남녀의 옷에서 풍겨나오는 진한 향수 냄새가 들어 있는 CD가 어울릴 법하다.

환상이나 희망이 아니다. 제3의 향기라고 불리는 ‘디지털 향기(Digi-Smell)’는 지금, 오늘의 이야기이다. 향기는 이렇게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향기 나는 전자 우편(scented email)를 검증하는 실험이 있었다. 향기 상자(scent dom)라는 특별한 기기를 컴퓨터에 부착하면, 상대편에서 보낸 전자 우편에 담긴 향기 암호를 컴퓨터에 설치한 향기 소프트웨어가 해독해 향기 상자 속의 향기를 밖으로 뿜어내게 된다. 이 기술은 세계 어느 곳, 누구에게나 향기를 전달할 수 있다.

향기 상자는 프린트나 스캐너를 꽂는 방식으로 컴퓨터에 연결한다. 향기 상자에는 20 가지 기본 냄새가 들어 있고, 이것을 조합하여 60 가지 향기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2천 가지 이상의 냄새를 만들겠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가격은 2백50 파운드(약 52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이 기술의 원천 아이디어는 미국의 트리스넥스에서 처음 개발했고, 기술 개발자는 영국 서레이의 케이블 회사 텔웨스트 브로드벤드다.

음악 CD도 같은 기술이 적용된다. 컴퓨터에 향기 상자를 꽂고, 향기 암호가 기록된 음악 CD를 틀면 컴퓨터가 음악을 재생할 때 향기 암호를 해독해 무슨 디지털 향기를 만들어 낼지 명령하게 된다. 향기의 합성은 음악에 따라 조정하면 되고, 향기 상자의 향기가 모두 소모되면 다시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다. 이미 몇몇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독특한 향기 개발 전쟁에 돌입했다.
가장 기대가 큰 곳은 음반 회사들이다. 떠나온 고향의 향기와 어머니가 만든 요리 향기를 맡으며, 그 옛날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음반 판매가 쑥쑥 늘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컴퓨터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손목시계·mp3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인 바이뮤직닷컴(BuyMusic.com)은 오락의 혁명이 눈앞에 다가왔다며 환호하고 있다.
여가 전문 기업들은 바다와 선탠로션 냄새를 홍보 편지에 담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영화사는 팝콘 냄새를 홍보물에 담아 전송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도 이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향기를 이용해, 커플링 행사에 참여하도록 유혹할지 모른다.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성 친구를 버리기 위해 역한 냄새를 편지에 첨부하는 상황 말이다.

디지털 향기 시대는 일단 문이 열리면 빠르게 진화해 갈 것이다. 각종 향기로 채팅하고, 전자 우편은 물론 음악과 함께 내려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DVD를 보면서 실제 영화 속의 음식 냄새와 바닷가의 신선한 공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커와 스팸메일, 바이러스가 디지털 향기를 가만 놔둘 리 없다. 어느 날 컴퓨터를 켜고 전자 우편을 열면 매운 냄새나 역겨운 냄새가 방안에 진동할지도 모른다. 해커가 내 컴퓨터의 향기 조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향기 바이러스가 모든 컴퓨터에 감염되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역겨움을 참지 못해 구토를 할 수도 있다.

온갖 희한한 냄새가 세상에 판을 친다면 이에 따른 법적 조처도 속속 나올 것이다. 어떤 것이 역겨운 향기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필요할지 모른다. 이같은 별난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해커와 스팸 메일과 바이러스에 당할 만큼 당했으므로, 디지털 향기만큼은 사전에 철저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많은 사회인류학자들은, 인터넷에 제3의 향기를 첨부하는 것이 사이버 공간을 인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또 커뮤니케이션을 원초적으로 재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일부 음악 애호가들은 ‘모든 음악은 땅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의 자연 향을 가지고 있다’며 향기가 전송되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는 음악이 원초적인 자연의 냄새를 되찾을 때라는 것이다.

후각은 감성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냄새는 아주 강력하고 심오한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이 새로운 발견은 온라인 이용자에게 제3의 공간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자연이 인간을 만드는 데 4백만 년이 걸렸지만,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향기를 말살하는 데는 50년이 안 걸렸다. 인간이 스스로 말살한 인간적 향기를 되찾기 위해 디지털이라는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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