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뚫린 여론의 고속도로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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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아이·천리안·넷츠고 등 네티즌 상대 설문 조사 활발…실시간 집계 강점, 과학성은 떨어져
김영찬씨(41)는 코스닥(KOSDAQ·장외 등록 시장)에 등록된 벤처 기업의 주식에 관심이 많은 소액 투자자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코스닥 시장에 거품이 찼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보유한 주식을 언제 팔아야 할지 고민했다. 지난 5월 매입한 주식의 가격이 2배가 넘게 올랐다. 그쯤 올랐으니 팔아야 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팔려고 하니 아까웠다.

김씨가 투자한 기업은 인터넷 기업. 주식을 처음 매수할 때부터 기업의 미래 가치가 오를 것을 염두에 두었다. 따라서 인터넷 가입자가 지금처럼 늘어나고 전자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주식은 더 오를지 모른다…. 김씨가 망설인 이유이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7월 말 평소처럼 인터넷을 뒤지다가 천리안 홈페이지에 실린 ‘반짝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 결단을 내렸다. ‘올해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기업의 대주주들이 엄청난 평가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코스닥 동록 기업들의 주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응답자 가운데 73.33%가‘거품이다’라고 답한 것이다.

주가만큼 일반인들의 생각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도 없다. 며칠 후 그 기업의 주식은 크게 떨어졌다. 결과론이지만 김씨는 반짝 투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정치·사회 현안 처리에 영향 미치기도

반짝 투표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이 늘어나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반짝 투표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발표하는 업체들이 잇달아 생기고 있다. LG인터넷이 운영하는 채널아이, 천리안 홈페이지, SK텔레콤의 넷츠고 같은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홈페이지 몇 곳이 네티즌을 상대로 반짝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설문 내용은 사회 현안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된 설문을 올리는 것이다. 채널아이는 8월5일 홈페이지에‘요즘 정치 현실로 보아 후3김이라는 신조어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을 올렸다. 같은날 천리안은 ‘정치 대화합을 위해 김현철씨 사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실었다.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또 천리안은 8월6일 ‘한국 가수들의 립싱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밖에 신창원 사건과 태풍 올가에 관련된 설문도 등장했다.

네티즌들은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반짝 투표 사이트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결집된 견해는 가상 공간에서 정치·사회 운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반짝 투표가 여론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더욱이 현안이 종결되기 전에 설문 결과가 나와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디지털 통신 기술이 갖고 있는 특성인 신속성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일반 설문 조사와 달리 인터넷에 뜨는 반짝 투표는 설문 대상자가 일일이 설문지를 읽고 필기구로 적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로 클릭하기만 하면 끝난다. 결과도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집계된다. 정식 설문 조사 형태로 표본을 추출하고 설문지를 나누고 결과를 회수해 분석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반짝 투표는 여론조사에 드는 비용과 갖가지 비효율을 없앨 수 있다. 인터넷 통신과 소프트웨어 기술이 인간의 수작업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특정 견해 담긴 질문 내용 걸러내야

다만 인터넷 반짝 투표는 일반 설문 조사와 달리 과학성이 떨어진다. 일반 설문은 인구 구성 비율에 맞추어 표본을 엄밀하게 추출하고 질문 내역도 특정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설문 내용을 만든다. 반짝 투표 결과에는 주로 컴퓨터 통신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견해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반짝 투표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해 일반 시민의 견해를 대표한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채널아이가 지난 8월3일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당신이 가장 신뢰하는 기상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인터넷’이라고 대답한 네티즌이 ‘텔레비전’에 이어 12.24%를 차지했다. 신문과 라디오라고 답한 네티즌 수의 3배에 가깝다.

설문 내용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가치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반짝 투표의 질문 내용에 이미 특정 견해가 반영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채널아이가 지난 7월28일 올린 설문은‘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 대한 여권의 8·15 사면 검토와 관련해 법의 형평성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권력형 비리 사범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이 적절하게 행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였다. 질문 내용이 이미 특정 견해에 기운 것이다.
설문조사 전문가 참여해야 신뢰성 얻어

반짝 투표의 신뢰성이 높아지려면 설문 조사 전문가가 질문 내용을 결정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지금처럼 질문 내용과 운영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업체의 홈페이지 관리 부서 직원에게 맡기는 것은 개선되어야 한다.

정부·여당은 정책 결정에‘발롱 데세’라는 여론 수렴 방안을 이용한다. 즉,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 내용을 공개한 후 여론에 따라 정책 실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반짝 투표는 중요한 발롱 데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사회 현안에 대한 구성원의 견해를 인터넷 반짝 투표만큼 빠르게 결집하는 설문 방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반짝 투표는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해 신뢰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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