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독사’ 될 날 온다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www.eandh.org) ()
  • 승인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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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업화 가속화하며 발암 물질 실어 날라…외출 삼가고 잘 씻어야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 때 ‘하늘에서 흙이 떨어진다’며 처음 우리 역사에 기록된 우토(雨土). 우토, 즉 모래바람은 일제 강점기에 ‘황사’로 창씨개명 된 뒤, 흙비 차원을 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대규모 황사를 일으키는 지역은 몽골의 고비 사막과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봄 고비 사막에서 발진하는 황사는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 서부 해안 지역에까지 도달한다고 한다. 사하라 사막에서 날아간 모래 바람은 카리브 해 산호초에 떨어져 조류(藻類)가 창궐하게 하는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천식 환자한테는 치명적

최근 한반도에서도 황사 발생 빈도와 강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94~1999년 고비 사막에서 제주도의 28배에 달하는 면적이 추가로 사막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비 사막이 매년 조금씩 확장해 중국 베이징의 턱밑에까지 다가온 것이다.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국의 공업화 또한 가속도가 붙으면서 각종 발암 물질이나 중금속이 황사에 실려 날아온다는 점도 심각하다. 황사 입자는 호흡기를 통해 인체 깊숙이 파고들 만큼 아주 작다. 2001년 4월 고비 사막에서 발생해 미국 서해안에 도착한 황사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50%가 지름이 2.5 μm였다. 나머지 50%도 2.5~10μm인 것으로 밝혀졌다. 10μm가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이니, 그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짐작할 수 있다.

공기가 드나드는 인간의 기도에는 미세한 섬모가 한쪽 방향으로 나 있다. 이들 섬모들은 코나 입을 통해 들어온 불순물을 밖으로 밀어낸다. 그런데 입자의 크기가 작으면 섬모도 어쩌지 못해, 체내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황사 입자가 독성 화학물질을 매단 채 폐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황사의 피해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천식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흡연자도 황사의 가중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흡연을 하게 되면 섬모들이 담배 연기에 의해 옆으로 누워버려 오염 물질을 밀어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황사는 또한 2000년 이후 한국의 일조 시간이 감소하는 한 원인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황사가 빈번한 봄철에 일조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조량 감소는 체내 비타민D 생산을 방해해 각종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황사 피해를 줄이는 비책은 따로 없다. 황사가 심한 날에 외출을 삼가고, 외출할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몸과 옷을 깨끗이 하는 것뿐이다. 빠르게 벌거숭이가 되어가는 고비 사막의 사막화를 나무로 막아보려고 하지만, 이는 돌로 강을 메우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딘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황사가 ‘바람에 높이 날려 비처럼 떨어지는 보드라운 모래흙’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황사가 ‘독사(毒砂)’가 될 날은 머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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