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텐슨 주한 미국 부대사 “남북 대화, 곧 재개된다”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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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북한과 성실하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성실하게 대화하는 목적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현안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한반도 평화 구축입니다. 그 다?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으로 일하다 8월12일 주한 미국 부대사로 취임하는 리처드 크리스텐슨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통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그의 판단은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45년 ‘해방둥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그는 67년 마켓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파견되면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2년 동안 목포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좋은 친구들’과 소줏잔을 자주 기울인 덕택에 한국 사회의 밑바닥 정서를 알게 되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호남 사투리를 불편 없이 구사할 정도이고, 그의 부인은 이화여대 미대를 나온 정화영씨다.

미국에 돌아와 4년간 대학원에서 동북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의 정치·경제·역사를 중점 공부한 뒤 73년 국무부에 들어간 그는 그해 11월 부영사로 한국에 부임했다. 외교관으로서 첫 근무지였다. 크리스텐슨 부대사는 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을 수행하는 등 북한을 여섯 번 방문했다. 이번 부임으로 그는 세번째 한국 근무를 기록한다. 그는 “원위치로 왔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31일 저녁 워싱턴 근교 한 한식집에서 만난 그는 미국이 지금 북한과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대사로 한국에 부임하는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떤 부문에 역점을 두고 활동할 예정입니까?

저의 일이 레이니 대사를 지원하는 것이니까, 대사를 보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시기에 한반도 문제의 좋은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우방으로서 미국과 한국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북한 정책 공조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는 줄 압니다. 양국간 근본적인 시각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시각 차가 있을 수 있겠죠. 한국 처지에서 볼 때 북한은 적이면서 같은 민족이죠. 그래서 사정이 아주 미묘하고 복잡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에게 북한 문제는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남북한은 단일 민족이니까 북한 문제를 바로 가족 문제라고 생각하죠. 반면 미국은 지정학적 차원, 즉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역점을 둡니다. 그런 점에서 시각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양국의 공조는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6월 마지 못해 북한에 2차 식량 지원을 했고, 최근에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추가 식량 지원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래도 공조가 잘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한국과 미국은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알맞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시각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런 차이가 가끔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볼 때 양국은 잘 협조하고 있어요. 서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94년 제네바에서 기본 합의서를 조인하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 사이에 긴장이 높았죠. 미국과 북한이 매우 중요한 것을 협의하면서 한국을 참석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당시 한국은 대단히 불안해 했는데, 당연합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시각 차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때보다도 협조가 잘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정책 골간은 개입 정책에 근거해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 아닙니까? 미국이 말하는 연착륙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연착륙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아요. 우리 관심은 한반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곧 평화 구축이지요.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강구하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는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과 아주 작은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간에는 정부간, 학생간, 사업가간 하루에 천만 번의 접촉이 있지요. 반면 미국과 북한의 경우 하루 3∼4번 정도입니다. 그 대화가 한국과 미국의 공동 목표인 평화 구축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 구축이라는 것이 북한의 정권, 또는 체제의 안정과도 연결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별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북한의 국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어요. 거듭 말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입니다. 그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목적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또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반드시 미국 뜻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입장은 한국과 북한이 당사자로서 한반도의 장래에 대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미국이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나 북한이 자꾸 한국을 제쳐 놓고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북한측과 만날 때마다 우리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한국과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네바 기본 합의서를 볼 때 핵 관련 부문은 잘 지켰다고 인정하면서도 남북 대화에 관한 책임은 안 지켰다는 것을 북한측에 지적합니다. 특히 평화 회담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면 미국과 북한만으로는 안되고, 한국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지요. 북한이 아직은 한국과 대화하지 않고 있지만 4자 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한·미 간의 결속과 의리를 새삼스럽게 다짐하면서, 양국이 각각 북한과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아직 4자 회담을 거부하지 않았어요.

한국이 말하는 연착륙과 미국이 추구하는 연착륙 사이에는 견해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미국은 북한 체제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것 같고, 한국은 북한 공산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어느 나라보다도 지지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지금 북한과 성실하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즉 북한을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성실하게 대화하는 목적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현안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평화 구축입니다. 그 다음으로 유해 문제, 미사일 문제 등이 있지요.

북한 체제의 성격이 바뀔 때 권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솔직하게 아무도 몰라요. 북한 체제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아요. 북한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인의 특징이 은근과 끈기 아닙니까. 어느 민족보다도 인내심이 있어요. 그래서 북한 지도자들이 견딜 수 있다고 말하면 저는 그것을 믿을 수 있어요. 사실 북한의 권력 유지 문제는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에 중요한 것은 북한의 장래를 알 수 없으니까 한국과 의리를 지키면서 북한과 성실하게 대화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북한으로 하여금 의심을 가지게 하면 대화가 안되겠지요. 그래서 파트너로서 확실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과 북한을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한국은 우리의 전통적인 동맹국이고, 북한은 전에는 적이었고 지금은 겨우 시작한 대화의 파트너이지요. 그렇게 보면 한국이 걱정하거나 불안해 할 게 없습니다.
북한은 변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점차 개방되리라고 보십니까?

예, 그전과 비교해 보면 분명히 그렇지요. 20년 전과 비교해 외국 사람이 많이 들어가고, 북한 관리들도 국제 회의나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속도가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나진·선봉 자유무역 지대 설치라든지, 농사 제도 변화를 그 예로 들 수 있겠지요. 북한은 전통적인 공산주의 농사 제도에 융통성을 가미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체제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관계를 넓히고 싶어해요.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 간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침범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북한 지도자들은 자기 체제, 사고 방식, 생활 방식이 침범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한국 사람들 역시 지금의 생활을 침범 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의 조기 붕괴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누구도 모르죠. 꼭지가 가늘고 약하게 보이는 사과가 1분 뒤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한 달이 가도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북한 정권의 장래에 관해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전하고 성실하게 대화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고, 이것은 한국을 위해서도 좋은 것입니다.

4자 회담 제안과 관련한 설명회에 북한의 참석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은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을 거에요. 제가 알기로는 아직 북한측으로부터 새로운 반응이 없습니다. 거부는 아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죠.

4자 회담이 성사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한국과 미국은 분명히 성실한 제안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당황해 하고 있어요. 이 제안을 받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인지, 아니면 덫에 걸리는 것은 아닐지를 분석하고 있겠지요. 그렇게 볼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의심입니다. 북한이 의심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과 미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을 설득해야죠.

4자 회담과 관련해 북한이 경제 제재 해제 같은 조건을 내걸면 미국은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까?

북한과의 대화는 성실한 대화니까, 북한측의 주장을 잘 듣고 고려해야지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방침은 변함이 없습니다. 터무니없는 요구라면 (받아들일) 가능성이 별로 없고, 적당한 주장이나 요구에 대해서는 신중히 고려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합의한 한 가지 기본 원칙은 전제 조건 없이 4자 회담을 하는 겁니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을 연착륙시키고 싶다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죠. 북한 정책과 관련해 미국 내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완화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 경제 제재를 완화하자는 견해도 있어요. 서로 공방전을 벌이는 형국입니다.
미국은 핵문제나 경수로 공급 문제 등에서 북한의 막무가내 식 떼쓰기에 마지 못해 양보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가 한 것처럼 미국의 북한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올 만한데요.

저는 릴리 대사 밑에서 일했지요. 그분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릴리 대사는 미국내 한 가지 의견을 잘 대표하는 분이지요. 즉 북한을 믿지 말자는 거지요.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건전하고 건설적인 대화가 중요해요. 또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 주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4자 회담은 기본적으로 여러 나라가 참가하는 다국적 회의인데, 다국적 회의는 효율성이 문제가 됩니다. 북한을 4자 회담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미국과 북한만으로는 안되고 한국이 꼭 참석해야지요. 미국과 북한은 한반도 안보·평화 문제를 직접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면 큰일 나요. 분명히 결과가 나빠요. 우리와 북한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를 예로 들자면 유해 문제와 같은 것이 있겠지요. 평화 정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해요.

북한에서 소수, 혹은 다수가 굶어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제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확인해 줄 수는 없어요.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을 분석해 보면 북한의 사정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일제 시대 때처럼 초근 목피로 연명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몇 명인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굶어서 죽은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남북 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머지 않아 가능하다고 봅니다. 잘 되겠지요.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주석이 죽었을 때 김대통령이 조문하지 않은 데 대해 자주 말하는데, 이제 그 불평은 그만 해야지요. 한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한국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남북 대화가 가까운 시일에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국 전문가로서 남북한 통일에 대해 전망해 주십시오.

제 의견보다는 한국인들의 의견이 중요하겠지요. 제 생각에는 통일이 언젠가 불가피하게 된다고 봅니다. 50년의 공산주의보다도 5천년의 역사와 같은 문화가 훨씬 뿌리 깊고 중요합니다. 북한을 왔다갔다 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 사람들은 역시 같다는 점입니다. 이야기하고 교제하는 방법이 너무 똑같아요. 이것은 굉장히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법과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단일 민족이니까 언젠가 통일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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