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기를 배달하는 여행가 최성민씨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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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샘 등 살아있는 자연 소개…“자연의 생기는 훌륭한 보약”
 
자연주의 여행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최성민씨(42)와 함께 경기도 연천에 있는 옻샘을 다녀오는 동안 그의 핸드폰에서는 연신 발신음이 났다. 잡지·방송 등 매스컴을 비롯해 기업체 사보까지 최씨를 찾기에 바빴다. 그들이 최씨를 찾는 까닭은, 그가 개척하고 있는 자연주의 여행이 독자와 시청자의 갈증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 속에 사는 현대인은 없다. 현대인의 삶의 터는 이제 ‘인공 낙원’이다.

최씨가 말하는 자연주의 여행은 ‘자연으로 가서 우리 몸과 마음의 생명력을 전이 받는 여행’이다. 흙이나 풀 내음, 새나 물 소리와 차단된 도시 환경은 인간에게 심각한 억압이다. 이같은 부자연한 환경에서 생기는 스트레스 또한 부자연스런 것이어서 심신을 무너뜨린다. 자연주의 여행은, 이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병원을 찾지 말고 자연의 품에 안기라는 충고이다. 자연주의 여행이란 개념은, 93년 한 월간지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강사 최영묵씨가 최성민씨의 <그곳에 다녀오면 살맛이 난다> 서평을 쓰면서 만들어냈는데, 최씨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 듯한 명명이어서 그 후 ‘명함’으로 삼았다.
자연주의 여행가에게 한국인의 휴가 행태는 당연히 못마땅하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 사람 가운데 54%가 동해안을 여름 휴양지로 꼽았다. 최씨는 이처럼 도시인들이 특정 휴양지로 몰리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시인이 몰려드는 이름난 휴양지에는 자연이 없고 ‘휴양지로 이동한 도시’만 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여행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여행 소재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안내하는 곳은 널리 알려진 명승지나 역사·문화 유적지, 휴양지나 드라이브 코스가 아니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덕에 훼손되지도 않아서 자연의 생기가 활발하게 살아 있는 곳들이다. 최씨가 섬이나 샘을 섭렵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 결과 그는 섬이나 샘에 관한 한 독보적인 여행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여행 안내를 할 때 사실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번째 특징이다. 과장을 피하는 대신 흔히 놓치기 쉬운 감상 포인트나 흥미있는 일화를 곁들여 사람과 자연이 느껴지게 한다. 가령 91년에 나온 그의 첫 여행 안내서 〈그곳에…〉에서, 철새 도래지인 주남 저수지를 묘사한 글을 한 도막 읽어보자.

‘주남 저수지의 새들은 이른 겨울 논에 몇알 남아 있는 벼이삭을 주워 먹지만, 그 이후 겨울 내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니다가 봄볕에 눈이 녹을 무렵에는 보리싹을 뜯어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때부터 농민들과 싸움을 벌이게 된다. 기러기떼가 한번 훑고 지나간 밭에는 새똥만 남는다고 농민들은 푸념하고, 청산가리가 든 콩이나 볍씨를 주워 먹은 오리들이 주남 저수지에 돌아와 물을 마시고 지독한 배앓이를 하다가 갈대 그늘에서 수십 마리씩 죽어갈 때도 있다.’

최씨는 원래 유별나게 여행을 즐기던 사람은 아니다. 돌아다니기는 좋아했지만 그 행적을 보건대 여행이라기보다 방랑에 가까웠다. 그는 54년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서 태어난 섬 출신이다. 목포 문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3년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할 때까지 그는 압해도와 목포를 오가며 때묻지 않은 자연을 벗하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뒤로 그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의 몸과 마음은 서울이란 거대 도시를 거부했다. 그는 걸핏하면 뚜렷한 목적 없이 버스나 기차를 잡아 타고 전국 어느 곳이든 종점이나 종착역까지 갔다가 바로 돌아오는 기이한 방랑을 되풀이했다. 도시만 떠나면 그곳이 어디든 좋았다. 그를 자연주의자로 만든 ‘주범’은 역설적이게도 서울이란 도시였다.

원칙 거스르지 않는 ‘살맛 나는 세상’ 위해

 
최씨는 자연주의 여행가이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모난 데와 부딪쳐온 원칙주의자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는 79년 12월 KBS 공채 6기로 입사했으나, 8개월 만에 언론계 숙정이라는 급류에 휘말려 최연소 기자로 강제 해직되었다. 그후 삼성전자·유한킴벌리 등을 거쳐 프랑스대사관에서 5년간 근무했다. 프랑스대사관에 재직할 때 그는 외국 공관 중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해 한국인을 홀대하는 외국 고용주에 저항하다가 해직되고 말았다.

그는 <한겨레신문> 창간 발의인 5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88년 10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로 돌아갔다. 그는 체육부에 배치되어 레저·골프를 담당했다. 자신의 희망과 무관한 자리였지만, 그는 직업적 오기를 발동해, 그동안 형식적으로 메워지던 여행 고정란 <가볼 만한 곳>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 칼럼으로 바꾸었다. 빚낸 돈으로 자동차까지 사서 전국을 헤집고 다닌 집념의 결과였다. 이 때 쌓은 노하우가 훗날 여행가로 변신하는 데 큰 밑천이 되었다.

90년 2월 그는 한겨레신문사 제2기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년간 활동했고, 여론매체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93년 8월 신문사에서 해임되었다. 회사 안팎에서 회사 개혁을 주장하고 근무지를 이탈해 해사(害社) 행위를 했다는 것이 주된 해임 사유였다. 현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이기도 한 최씨는 한겨레신문사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사에서 나온 직후 그는 ‘화’를 ‘복’으로 전환시켰다. 전문 여행가로 나선 것이다. 자연의 품속에서 사는 지락(至樂)을 맛보면서, 그 경험을 세상에 알려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최씨가 그동안 펴낸 ‘최성민의 바른 여행 길라잡이’ 시리즈(<그곳에 다녀오면 살맛이 난다〉 〈섬 섬 섬〉 〈우리 샘 맛난 물〉)가 좋은 반응을 얻자, 지난해부터 세권짜리 시리즈 여행 안내서를 두 차례 더 냈고, 곧 〈도시 탈출, 우리 땅 살 만한 곳 쉴 만한 곳〉 시리즈도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원칙대로 살려고 애써 온 최씨에게 ‘원칙주의’와 ‘자연주의’는 거의 같은 말이다. 자연은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 ‘살 맛 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최씨가 늘 자연을 그리워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전하는 까닭은, 원칙은 있되 원칙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공 낙원 문명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여행을 다니며 축적한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역시 기존 틀에 전혀 구애 받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설을 쓸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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