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 펼치는 농사꾼 전우익씨
  • 경북 봉화·宋 俊 기자 ()
  • 승인 1997.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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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풀을 뽑는 일이기도 합니다. 곡식은 씨를 뿌려야 나지만, 풀은 옛날부터 지난해까지 땅에 떨어진 풀씨에서 수없이 돋아납니다. 부정적인 역사의 유물과 유습들이 얼마나 끈질기고 뿌리가 억센가를 말해주는 듯합니다.’--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 중에서.

전우익(全遇翊·72)씨는 농사꾼이다. 57년께부터 경상북도 봉화에서 농사를 지어 왔다. 흙과 바람이 온몸에 남겨준 흔적과 세월의 자취는 전씨가 농투성이임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위의 글이 말해주듯, 전씨의 작업은 농지 경작에 한정되지 않는다. 규정하기 좋아하는 세태의 기준에는 미흡할지 몰라도, 넓은 의미에서 전씨는 문필가이고 사색가이며 또 생명운동가이다.
공교롭게도 생명의 경이를 보여준 논과 밭은, 한편으로 전씨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기도 하였다. 전씨는 오랜 세월 논·밭에 갇혀 살아야 했다. 광복 후 ‘민청’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된 때문이었다. 6년 남짓 옥살이를 마치고 57년 대대로 터잡고 살아온 고택으로 낙향한 뒤에도, 전씨는 보호 관찰 대상자로서 80년대 후반까지 주거 제한을 당했다.

이 ‘싱싱한 감옥’에서 전씨는 삶의 틀을 완전히 바꾸었다. 지식인의 길, 엘리트의 영예를 버리고 일하는 삶, 생산자의 땀을 택한 것이다. “안 해본 농사를 지으려니, 처음 2~3년 내내 몸 구석구석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데. 뼈 마디마디가 새로 자리를 잡더라고.”

고생 속에서도 낙이 있었다. 1년에 한번 떠나는 ‘책 사냥’이었다. 어렵사리 추수를 마친 뒤, 목돈을 싸들고 (요시찰 담당자 몰래) 상경하여 1년간 읽을 책을 사서 귀향하는 것이다.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었다. 모처럼의 상경은 격조했던 지우를 만나는 은밀한 기회이기도 했다. “책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한 덕분에 안 미쳤지, 그 고된 시절….”

주경야독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다만 달라진 것은 독서의 취향이다. 묘한 것은 비슷한 시기에 작물의 종류도 바뀐 점이다. “70년대 후반, 잡탕으로 읽기 시작했지. 독서도 편식은 안좋은 것 같아서. 그 무렵 논 농사를 줄이고 밭 농사를 늘렸어. 논 농사는 머스마 키우는 것 같고, 밭 농사는 가시나 키우는 것 같애. 아기자기한 맛이. 밭 농사 재미에 함뿍 빠졌지.”

최근 전씨는 나무와 사랑에 빠졌다. 여기저기 나무 씨를 뿌려 싹을 틔우거나, 묘목을 구해다 심었다가 조금 자라면 마당·들·냇둑 등에 옮겨 심는데, 나무 크는 것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매실·모과·단풍·물푸레 등 나무마다 풍기는 개성과 매력이 그렇게 각별할 수 없다.
폭넓게 교우…열 번 찾아간 끝에 사귀기도

처음에는 큰 느티나무 옆에 무더기로 돋은 모종을 캐다가 옮겨 심었는데, 그 모종을 찾느라고 십리 근방 느티나무 그늘은 안 뒤져본 곳이 없다. 어느덧 마을에는 고목부터 애둥이까지 느티나무가 백여 그루가 넘는다.

여가를 이용하여 취미로 시작한 식목이, 어느덧 일과가 되었다. 슬하의 여섯 자녀가 장성하여 대처로 나가고 부인과 사별한 후 나무는 전씨의 일상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90년대부터 전씨는 임업시험장으로 묘목 시장으로 부리나케 나무를 구하러 다녔다. 지금은 구상나무 가죽나무 생강나무 오갈피나무 주목 층층나무 화살나무 회나무 등 31종 수백 그루가 마당과 텃밭, 길섶 등지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이 다음에 이 나무들이 우거져, 큰 길에서 동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히 들어차는 것이 전씨의 소원이다.

전에는 밭 둘레에 듬성듬성 서 있던 나무들이 이제는 밭 가운데를 차지했다. 묵정밭을 아예 숲으로 만들기로 작심한 것이다. ‘묵는 논밭이 늘어갑니다. 묵밭이 보기 싫어 나무를 심기로 했어요. 그것도 한 일이백년 자라서 아름드리로 클 나무를요’(<호박이…> 중에서). 묘목은 이웃과 근동의 학교 등에 나눠주고, 남는 것을 묵정밭에 옮긴다.

전씨의 나무 사랑은 목숨이 떠난 나무토막을 주워다 다듬어, 생명의 정령이 깃든 멋진 조형물을 만드는 데서도 나타난다. 해묵어 풍염한 향기며, 수백년 세월이 빚은 나이테의 은은한 기품이 풍기는 조형물은 평소 지인에게 나누어줄 훌륭한 선물이 된다. 전씨의 고택은 크고 작은 나무등걸과 곱게 켠 아름드리 줄기들로 가득하다. 3평 남짓한 서재도, 앉을 자리를 빼고는 온통 서적과 나무토막들이 차지했다.

새로운 취미에 흠뻑 취한 전씨는 전기톱에 대패·그라인더까지 들여놓았다. 이렇게 만든 책상과 탁자, 목침, 필통 등을 가지고 전씨는 나들이를 간다. 몸피 큰 선물은 배달을 시키고, 아기자기한 것들은 보따리에 넣는다. 콩 깨 도라지 등 밭작물도 함께다. 그가 찾아다니는 벗들은 스님 법연·현기, 신부 정호경·유강하 , 출소 장기수 신영복·김진계, 동화작가 권정생·이현주, 화가 이철수·김광주, 시인 신경림·김용택, 교수 염무웅·안동림 등 경계가 따로 없다.

전씨가 이들을 사귄 사연도 후덕하다.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 이들의 글이나 그림이, 혹은 인품과 사유가 자신의 마음에 맞으면 편지를 띄우거나 찾아간다. 못 만나면 미련없이 돌아왔다가 시간 날 때 다시 간다. 그렇게 10여 차례 방문해 사귄 사람도 있다. 선물 주러 가는 나들이도 마찬가지다. 만나면 반갑고, 못보면 다음으로 미룰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여전히 책이 한보따리다.
옷·신발 등 남이 쓰다 버린 것 사용

전씨는 40여 년 동안 땅을 일구며 느낀 감동과 성찰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93년)와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95년)이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 연작 형식의 두 책은 자연의 섭리와 농촌살이의 소소함들을 소재로 삼아 삶과 사회에 대한 느꺼운 통찰을 질박하게 전해준다.

이 책들은, 지인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으로 <녹색평론>과 <대승불교> 등의 잡지에 실렸던 글을 한데 묶은 것이다. 두 책은 글의 형식과 품격에 비추어, 80년대 중반 출간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옥중 서간 모음)과 닮아 있다. 이를테면 ‘논밭으로부터의 사색’인 셈이다.

전우익씨는 고색창연한 기와집에서 혼자 생활한다. 그의 생활에 파고든 현대 문명의 이기란 작업 공구 몇 가지와 라디오·전화기가 전부다. 조금 먹고 많이 일한다. 옷·신발 등은 남이 쓰다 버린 것으로 충당한다. 지인들도 전씨의 뜻을 기려 쓸 만한 옷가지 따위를 모아준다.

‘최소한으로 소비하기’는 자연을 섬기는 전씨의 신념이고 신앙이다. 소비는, 어느 정도 필연일지라도 어차피 파괴(소모)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씨는 이 신념을 묵묵히 실천할 뿐 깃발을 내걸지 않는다. ‘환경주의’가 구호로 구현될 때 또 다른 무력의 형태를 띨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의 뜨락에 송진 향기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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