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형보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
  • 장영희기자 (mtviesisapress.comkr)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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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형보 사장(62)의 이력은 특이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항공기 만드는 회사이기는 하지만, 그가 사성 장군, 그것도 공군이 아닌 육군 참모총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 1학기 한양대 기계공학부에서 현대자동차 김상권 사장(연구개발 부문)과 함께 ‘기계 및 항공산업의 미래’ 과목을 가르친다.

4월29일 첫 강의에 나선 그를 이 대학 기계공학부 조진수 학부장이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고 소개하자 2백여 학생들의 탄성이 터졌다. 군복을 벗은 길사장은 기업 경영에서도 ‘작전 통제권’을 잃지 않았다. 취임 이듬해인 2002년부터 경영 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았고 KT-1과 T-50 개발에 성공해 한국 항공산업 역사를 새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T50 개발은 기적 같은 일…2010년에 세계 10위권 진입 목표


최초 비행 장치를 고안해낸 이는 이탈리아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사람이 날기 위해 필요한 비행기 형태를 그렸는데,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박쥐같이 보이는데 지금의 헬리콥터 같다. 15세기 일이다. 본격 비행 시대를 연 것은 지금으로부터 1백1년 전인 190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나서면서 동력 비행 시대를 열었다. 지난 1세기 동안 항공산업만큼 발전한 산업은 없다.

항공산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막대한 개발비가 든다. 보잉777 개발에 50억 달러, 최신예 전투기인 프랑스의 라팔에는 74억 달러, 지금 생산되고 있는 미국 F22에는 1백30억 달러가 들었다. 투자비를 회수하는 데도 통상 15~20년이 걸린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며 국제 협력이 보편화한 글로벌 산업이다.

항공기는 30만 개의 부품이 장착되는 첨단 기술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한다. 부가 가치가 매우 높은 산업이기도 하다. 섬유·기계·자동차의 부가 가치는 각각 11%, 15%, 25%에 그치지만, 항공기는 44%나 된다(2000년 통계).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방위 산업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이 현대전에서 항공기는 가장 중요한 무기 체계이다.

G7 국가들은 항공산업을 육성해 왔다. 미국은 항공산업을 육성함으로써 미래 첨단 산업을 선점할 수 있었고, 국제 사회 최강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의 최대 무역 흑자 품목이 항공기라는 사실을 아는가. 유럽도 미국에 뒤지지 않았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군용기 독자 개발을 추진했고 그 결과 미라주와 라팔 전투기 개발에 성공했다. 유럽은 미국의 여객기 시장 독점에 맞서기 위해 1970년대 초 보잉에 대적할 에어버스를 설립했다. 일본은 기술 민족주의와 군사대국 복귀를 꾀하며 독자 기종인 F2를 개발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3위인 한국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항공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1950~1960년대 B707이라는 민간 제트 여객기가 등장하면서 항공산업은 크게 발전했다. B747은 대량 수송 시대를 열었다. 1970~1980년대에는 연료가 적게 드는 항공기와 디지털 기술을 장착한 고성능 중대형기가 등장했다. 1990년대 이후 초음속기가 개발되었다.

세계 1, 2차 대전은 항공산업에 호기를 제공했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과잉 공급의 폐해를 낳았다. 구조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항공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 미국은 1993년 6개 사였던 항공산업 회사를 현재 보잉(여객기)과 록히드마틴(전투기) 2개로 줄였다. 영국은 BAE 한 회사만 살아 남았다. 프랑스와 독일은 양국의 회사를 모두 합쳐 EADS 1개 사로 통합했다.

한국도 1999년까지 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이라는 세 회사가 각축했다. 비슷한 회사가 각자 경쟁하다 보니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다. 산업계와 학계에서 통합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1999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이라는 통합 법인이 출범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100석 이상 되는 민간 여객기를 만드는 회사는 보잉과 에어버스밖에 없다. 보잉과 에어버스는 각각 B7E7(2백50석)과 A380(6백석)을 개발하고 있다. 2002년 영국에 가서 에어버스 실물 모형을 보니 어머어마했다. 2010년께 나올 텐데 에어버스 사장에게 라이트 형제가 살아 있다면 에어버스 380을 보고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마 괴물로 여길 것이라고 말해 웃었다. 사운을 건 싸움에 돌입한 보잉과 에어버스 가운데 누가 성공하느냐는 두고봐야 한다.

전투기 시장도 미국과 유럽의 각축전이다. 1970~1980년대 미국은 한국군이 이미 보유했거나 내년부터 들여오는 F16과 F15에 주력했다. 2000년대 새 기종은 F22, F35(JSF)이다. 프랑스는 미라주에서 라팔 전투기로, 영국·독일·이탈리아는 토르나도에서 유로파이터로 진화하고 있다. F22와 라팔, 유로파이터는 고등 훈련기 겸 경공격기이다.
우리 얘기를 해보자. 항공기 정비 수준에 그쳤던 한국은 1980년대 중반 들어서야 비로소 조립 생산에 들어갔다. 항공산업이 본격 발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한국군 주력 전투기인 KF16은 비록 면허 생산이었지만, 한국 항공 역사상 우리 공장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전투기다. 기본 훈련기 KT1은 국방과학연구원이 최초로 독자 개발한 항공기다. 대한민국 공군이 타고 있는 KT1은 1999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는데, 지난해 4월25일 인도네시아 공군 참모총장이 사천 공장에 와 KT1을 7대 인수했다. 수출 활성화를 위해 로켓과 기관포를 장착한 KT1 무장기도 개발하고 있는데 멕시코가 24대를 주문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가는 한국 최초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개발에 성공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일부 외국 기술(록히드마틴)을 빌렸지만, 한국 항공기 엔지니어들이 10년간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막바지 개발 과정을 진두 지휘했는데,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한국은 지난해 2월18일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한 나라가 되었다(이 대목에서 길사장은 자못 감회가 서린 듯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T50은 세계 시장에서 호평받고 있다. 그랑프리 기종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아랍에미리트연합과 협상을 했는데 구매 의사가 강해 처음 도입하는(40~60대) 국가가 될 것 같다.

여러분은 우리가 기체 부품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B737 꼬리날개, 가장 무서운 경쟁력을 가졌다는 아파치 헬리콥터의 동체, 전세계에서 팔리는 F15 전투기의 날개를 공급하고 있다. 에어버스 기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물론 항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기 설계 능력은 뒤떨어져 있다. 1980년대 17%였던 설계 기술 능력은 1990년대 40%로 올랐고 현재 70~80%에 이른다. 현재 내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선진국 수준의 설계 개발·생산·시험 평가 인프라 구축이다. 2001년 10월31일 T50 시제 1호기 롤아웃(출고식) 행사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2015년까지 한국형 전투기(KFX)를 개발하자고 선언했다. KFX와 다목적 헬기(KMH)가 개발되는 2015년께 95% 이상의 설계 능력을 갖는 독자 개발 시대를 열기 위해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03년, 2010년 세계 10대 항공우주업체로 성장한다는 이른바 ‘더블텐’을 중장기 비전으로 설정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동안 적자 사업, 공장 매각 등의 자구 노력과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출범 3년 만에 경영 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았고, 세계 항공산업이 불황인 와중에서도 3년 연속 흑자가 기대되는 것도 그런 결과로 생각한다(앞자리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강의실을 빠져 나가는 길사장을 한양대 기계공학부 2백여 학생들이 기립 박수와 환호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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