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욱 삼성인력개발원장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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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욱 원장(59)은 지난 1월 인력개발원으로 발령나기 전, 5년 간이나 삼성종합기술원을 지휘한 최장수 사령탑이었다. 그는 출범 5년 만에 종합기술원을 삼성 기술의 산실이자 총합체로 변모시켰다. 그는 기업 경쟁력
“가치를 창출해야 진짜 기술이다”
변화에 깨어 있어야 경쟁에서 승리…6시그마가 ‘질 경영’의 원천


현대는 무한 경쟁 시대다. 변화의 속도(초경쟁)와 크기(대경쟁), 폭(복잡계)이 가속화하고 급격화하며 다양화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일갈했듯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불가측의 세계다.

1960년대 경영 목표가 무엇(what)을 할 것인가였다면 1980년대는 어떻게(how) 할 것인가였고, 1990년대는 기업 경영의 강조점이 누가(who) 할 것인가로 변화했다. 잘 나가는 기업 치고 인재 경영을 강조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이건희 회장은 한 사람의 인재가 수만·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역설했다. 세상 흐름이나 기술 발전이 현기증 나게 빠르기 때문에 무슨 기술 전략을 어떻게 짜기보다 변화에 척척 대응하는 뛰어난 인재를 발굴해 키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연구 개발의 패러다임도 변화했다. 급진적 혁신과 기술 융합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1세대 R&D 특징은 투자를 통해 기술적 성과를 얻는 데 집중되었지만 50년 전 2세대 R&D는 개발 프로젝트의 효율을 지향했다. 전사적 전략을 통합한 기술 개발이 중시되었던 때가 15년 전 3세대 R&D였다. 1999년 4세대 R&D 개념이 나왔다. 시장 통합을 통한 가치창출형 기술 개발이다. 이 시대에는 기술 개발력은 기본. 기술 융합을 사업화해 시장을 창출하고 부가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일본과 미국의 경쟁사는 곧 기업 혁신의 역사다. 1970년대 후반 ‘메이드 인 저팬’이 물밀듯이 미국으로 진격했다. 미국 기업들은 도산하거나 동남아시아로 생산 거점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왜 그렇게 강해졌을까. 답은 1973년 석유 파동과 같은 위기다. 도요타 자동차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은 가격·품질·생산성 등 경영 활동의 모든 부분을 혁신했다. 이처럼 피를 토하는 도전 끝에 일본은 5년 만에 국민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제조업 최강국이 된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IMF 사태라는 경제 위기가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1년6개월 만에 빚을 다 갚았다며 혁신을 하다 말았다.

일본의 급성장을 보며 미국은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년 동안 미국도 경영 혁신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미국이 일본을 앞서게 된 결정적 동력은 ‘6시그마(6σ)’였다. 생산품 100만개 가운데 불량품을 3.4개(3.4PPM)까지 허용하는 ‘경영 품질’ 활동인데, 모토롤라가 고안해냈다.

6시그마를 꽃피운 것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이라는 GE다. 1996년 잭 웰치 회장은 2000년까지 GE는 경쟁자들보다 1만배 더 좋은 기업이 되고 싶다며 6시그마가 ‘GE의 DNA(유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996년 3.5 시그마 수준이었던 GE는 6시그마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GE나 삼성이 왜 강한 기업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남보다 앞서 혁신에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질 경영이라는 혁신을 주창한 상태였다. 물론 총 5년 가운데 마지막 1년이 경제 위기와 겹치면서 혁신에 가속도가 붙었다. ‘한방에 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기업 가운데 성공한 기업이 손꼽을 만큼 적은 이유는 이순신 장군이 강조한 필사즉생 정신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도 신라도 1천년이 못가 막을 내렸다. 영원히 잘되는 것은 없다. 지금에야 D램(메모리 반도체)이 강하지만 삼성도 5~10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1996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가서 (사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 생산이 달려 서로 달라고 아우성치던 상황이어서 이 회사에는 위기 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1996년 컴퓨터 모니터가 등장하면서 사정이 확 달라졌다. 브라운관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져 가격이 폭락했다. 위기였다. 혁신을 위한 통합 전략을 세워 밀어붙였다. 우선 프로세스를 전면 뜯어고쳤다. 그동안 국내와 말레이시아·멕시코·독일 등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제판 회의라는 것을 했는데 왕왕 ‘개판 회의’가 되어 버렸다. 서로 자기 주문을 먼저 받아야 한다며 싸웠다.

항공기 예약 제도 같은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결과 주문·생산·영업·납기 모든 것이 정상을 찾아갔다. 이후 6시그마에 도전했다. 1998년 말 삼성전관을 떠나기 전까지 6시그마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삼성SDI가 일류 기업 반열에 오른 것은 후임 사장이 6시그마와 프로세스 혁신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에게 6시그마는 질 경영의 실천 도구이자 언어다. 6시그마의 3대 키워드는 올바른 사람·올바른 제품·올바른 (일처리) 과정이다.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자만하면 위기를 부른다. 가득 채우면 사라지고 70%를 채워야 온전하다는 전설의 술잔, (소설<상도>에 나오는)계영배(戒盈盃)를 기억하자. 일하는 방법(프로세스)도 총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잘되는 기업을 들여다보면 95%의 업무가 시스템화되어 있다. 5%의 예외 사항만 사람이 처리한다.

기업의 모든 경영 활동인 프로세스의 수준을 6시그마 단계로 높이는 것이 6시그마 활동이다. 6시그마는 산포에 관한 통계 분석 작업이다. 가령 다트에서 과녁의 중심을 벗어나거나 중구난방으로 분포하는 산포를 없애야 불량을 원천 제거할 수 있다. 산포의 원인을 찾아야 불량을 극소화할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품질 실패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해 6시그마를 완성한 기업은 없다. 생산품 100만개 가운데 불량품이 3.4개밖에 되지 않으려면 양품률이 99.99966%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 수준인 3시그마는 양품률이 93.3%로 제법 높은 것 같지만, 100만개 가운데 불량품이 6만6천8백7개나 된다. 기업들이 6시그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양품률 99%를 99.99966%와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99% 수준은 주당 5천 건의 잘못된 외과 수술이 집도되고 약국에서 매년 20만 건씩 잘못된 처방이 이루어지는 수준이다. 또 매일 두 차례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되며 매달 7시간씩 정전 사태가 일어난다. 하지만 99.99966%는 차원이 달라진다. 잘못된 외과 수술과 약국 처방이 각각 주당 1.7건, 연간 68건으로 줄어든다. 공항에서 비행기 이착륙 지연은 5년마다 한번에 그치며, 정전 사태는 34년마다 1시간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국내선 항공기 사고율은 6시그마 수준에 가장 가깝다는데 여러분 <팔만대장경>이 이 수준에 도달한 것을 알고 있는가? <팔만대장경>에 새겨진 글자 수는 5천2백33만여 자인데, 200자 원고지 25만장 분량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탈자가 하나도 없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인데, 이분은 세계 최초로 6시그마 운동을 전개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6백 년 전에 6시그마를 한 민족이다. 우선 세종대왕은 고객(백성)을 등따습고 배부르게 하기 위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고 애썼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규제를 줄인 것은 바로 프로세스 혁신이었다. 세종대왕은 탁월한 국가 CEO였다.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트라티에프는 50년 주기로 증기기관·전화·텔레비전·컴퓨터·네트워크 혁명 같은 새 기술이 기폭제가 되어 세상이 대변혁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변화에 깨어 있는 사람과 조직만이 미래가 있다. 여러분은 기획·조직·통제하는 매니저가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고 동기를 부여해 변화를 생산하고 지속시키는 ‘변화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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