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일 야후코리아 대표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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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일 야후코리아 대표(43)는 중학교 1학년 때 인생의 행로를 정했다. 유엔에서 일하는 부친을 따라 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산 그의 꿈은 다국적 기업의 CEO였다. 그는 다국적 기업의 CEO가 되려면 세계뿐 아니라 한
“인터내셔널리스트가 되라”
마케팅, 문화와 결합해야 효력…전략에 충실한 기업이 성공


여기에 나도 배우러 왔다. 내 소개 먼저 하겠다. 아버지가 유엔에서 일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해외 생활을 많이 했다. 1969년 초등학교 3학년 때 네팔 카트만두에 가서 살았다. 전화를 신청하면 전화선을 끌어오는 데 2년이 걸릴 정도로 낙후한 지역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국 가족이 우리뿐이어서 전문 산악인들이 우리 집에서 묵기도 했다.

그 다음 태국·미국으로 이주해 살았다. 부친이 마케팅 교수였고, 나도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 마케팅을 통해 다국적 기업의 CEO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나중에 CEO가 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지겨운 회계학(웃음)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도 마케팅이 강한 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1986년에 졸업했는데, 열여섯 곳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다. 그때 어떤 회사는 2년 뒤에 100만 달러 수입을 보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임금은 적어도 마케팅을 배울 수 있는 직장을 택했다. 그러고 나서 15년 동안 다국적 기업 여섯 군데에서 근무했다.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미국 등 전세계가 내 근무지였다.

얼마 전 야후 본사가 실적 발표를 했는데, 정말 좋았다. 한국에 있는 인터넷 기업과 미국의 인터넷 기업 주가를 비교하면 한국의 인터넷 기업 주가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다. 왜 그럴까? 일단 한국의 시장 규모가 작아 자금의 흐름이 작다. 두 번째, 컨트리 리스크가 있다. 외국 사람에게 물어보면 한국이란 나라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이 기업의 투명성이다. 외국인들은 한국 기업이 투명하지 않다고 본다.

야후코리아 같은 경우 현재 현금을 천억원 이상 갖고 있다. 모두 은행 정기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그것 가지고 아파트를 샀더라면 돈 좀 벌었을 텐데(웃음). 그렇지만 야후는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버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벌이만 추구하는 것은 주주나 야후에 투자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땅을 사거나 건물을 사는 것은 우리의 메인 비즈니스가 아니다. 돈을 확실히 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수익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본다.

우리뿐만 아니다. 외국 기업들은 통상 국내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2년치 임차료를 선불로 지급하고 주택을 제공한다. 주택을 사면 몇 년 뒤 그 돈을 다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메인 비즈니스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야후코리아에도 온라인 게임을 함께 하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거절했다. 터지면 대박이라지만 대박이 터지기 어렵고, 대박 이후 거품이 꺼지는 것도 순간이다. 그것은 비즈니스가 아니고 겜블링이다. 주주 처지에서는 메인 비즈니스를 통해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이 갖고 있는 핵심 역량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가 뚜렷해야 한다. 한국의 재벌 그룹들은 사업 다각화라는 명분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기업 전략이 불확실하면 기업의 포커스를 잃게 된다. 나중에는 자신의 메인 비즈니스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펩시 회사에 있을 때 한국의 한 음료회사의 마케팅이 정말 이해가 안되었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몇 배 이상으로 지사를 내는 것이었다. 결국 부동산 투자였다. 영업소에서 손실이 난다 하더라도 땅값이 몇 배로 오르니까 이득이 나는 것이었다. 결국 그 회사는 부도가 났다. 이런 방식은 아니다. 비즈니스에 정답은 없지만, 여러 경험에 따르면, 기업이 자기 전략을 분명히 세우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온라인 기업이든 오프라인 기업이든 전략에 충실해야 한다. 야후에는 ‘꾸러기’라는 어린이용 서비스가 활발하다. 오프라인 기업으로부터 유치원 프랜차이즈를 통해 온-오프 교육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거절했다. 우리에게는 핵심 사업을 정하고, 거기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전략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생긴다.

기업 공개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야후코리아가 왜 기업 공개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반문한다. 기업을 공개하는 목적이 뭐냐고. 기업 공개의 목적은 펀딩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전략을 지켜갈 수 있는 현금이 풍부하다. 돈이 필요 없으니까 기업 공개를 안 하는 것이다.
기업의 전략도 중요하지만 다국적 기업은 각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에서는 계약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른바 ‘관계’가 중요하다. 베트남은 더 심하다. 펩시콜라에서 일할 때 태국과 베트남 쪽을 맡았다. 당시 펩시는 남 베트남에서 강세였고, 코카콜라는 북쪽에서 강세였다. 관계가 돈독했던 정보기관을 통해 코카콜라 회장이 남 베트남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버스에 펩시 광고로 도배를 했다(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어디를 가나 마케팅 전쟁이 치열하다).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도, 광고로 도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쌓아놓은 관계 때문이었다. 결국 코카콜라측이 그 사실을 알고 회장이 북 베트남 공항에 내려 차를 타고 남 베트남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그만큼 다국적 기업은 각 국가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더나 조직원은 4E를 가져야 한다. 열정(energy)을 갖고 의욕적으로 일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독려(energize)하고 참여하게 하고, 결단력(edge)을 갖고 있어야 하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execute)이 있어야 한다. 독재적 리더십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한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할 때 유럽에서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을 싱가포르에 발령을 냈는데, 본사로 이상한 보고가 자꾸 올라왔다. 본사에서 직접 조사하러 갔더니 신임 CEO가 2대밖에 없는 엘리베이터를 직원용·CEO용으로 구분해 써야 한다고 지시할 정도로 화합에 문제가 있었다. 실적은 우수했지만 회사의 문화에 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조사한 지 이틀 만에 해고되었다. 회사의 처지에서는 리더가 없어 불편해졌지만 직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앞으로는 외국에서 일할 기회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한국 사람이 가장 힘든 게 언어다. 야후코리아는 직원들에게 영어 교육을 전액 지원하는데, 쉽지 않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언어 능력이라고 본다. 영어나 중국어를 잘 하는 것이 필수인 시대가 온다. 그래서 미혼 직원들에게는 내가 농담 삼아 그런다. 외국인 걸 프렌드·보이 프렌드라도 사귀라고. 여러분도 외국어 능력을 부단히 연마하길 바란다. 또한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지역적 안목도 중요하다. 야후코리아에서도 외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을 잘 이해하는 마케팅 전문가를 구했는데, 4개월 동안 적임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이제는 인터내셔널리스트(internationalist)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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