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하 외무부장관 “서울 통해야 미·북한 관계 개선 가능”
  • 金在日 부장대우 ()
  • 승인 1997.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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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 회담에서 의제를 완벽하게 합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내놓고 하나 둘씩 필요한 것을 토의할 수 있으니까요. 의제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회담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9일부터 이틀간 제네바에서 열린 4자 회담 1차 본회담은 드러난 성과 없이 끝났다. 2차 회담을 98년 3월16일 열기로 합의했을 뿐이다. 회담이 끝난 직후 4자 회담을 입안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도해 온 유종하 외무부장관을 <시사저널> 인터뷰석에 앉혔다. 지난 12일 오후 장관실에서 만난 유장관은 4자 회담에 국한해 질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종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안터뷰에 응한 그는 특히 4자 회담의 실효성에 대한 일각의 회의적인 시각을 단호하게 배격했다.

4자 회담 1차 본회담 결과에 대한 소감과 그것이 성과 없이 끝난 원인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성과가 없었다는 데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현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북한이 이번 회담에 응했고 다음 회담을 약속했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봅니다. 북한과의 회담은 다음 회담에 대한 약속이 없이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 하고 끝나는 게 보통입니다. 다음 회담 날짜를 내년 3월16일로 못박은 그 자체가 큰 성과지요.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미·북한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요 의제로 삼자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과 미국은 92년 남북합의서 실천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회담 추진 주역이신 장관께서 생각하고 있는 의제는 무엇입니까?

남북 간에 영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돕도록 한다는 게 분명하고 확실한 의제입니다. 이제 회담을 시작했으니까 지금부터는 후퇴란 없다, 그러니까 스타팅 포인트를 확실히 하자, 그것이 뭐냐 하면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것부터 하자는 거지요. 그 다음에 남북간 기본합의서가 있으니까 이를 재확인하는 것부터 하자, 이는 우리로 봐서는 아주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북한의 미·북한 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미국이 더 확실히 반대했어요. 한·미 쌍무 협정에 근거해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북한이 상관할 바 아니라는 거지요.

현실적으로 언제쯤 의제가 정해질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제 생각에는 의제를 완벽하게 합의해서 나아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내놓고, 의제를 결정하지 않고도 하나 둘씩 필요한 것을 토의할 수 있으니까요. 의제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회의 진행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담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으리라고 봅니다. 안기부와 통일원이 줄곧 회담 성과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오지 않았습니까.

4자 회담의 중심적인 목표는 남북 대화를 증진한다는 것 아닙니까. 4자가 모여서 남북 대화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외교 문제에서 내부 문제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원 등 다른 부처가 좋아하지 싫어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외무부의 역할이 점점 줄고 통일원이나 다른 부처의 역할이 늘어나는데, 다른 부처가 잘 안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언론이 꼬집어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4자 회담을 수용한 배경이 한국을 성과도 없을 4자 회담 틀로 묶어 놓고 미·북한 간에 다각적인 접촉을 확대하려는 것이 아닌가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본말이 전도됐습니다. 왜냐면 4자 회담은 우리가 제의했거든요. 우리가 왜 제의했느냐 하면, 북한을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한·미·일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응해서 북한이 살아날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그 전체 아이디어가 우리한테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이 왜 그것을 수용했느냐 하면, 탈냉전 시대에 남북한간 긴장이 계속되면 한반도의 장래가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자꾸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50년 동안 깊고 튼튼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것을 훼손하면서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해서 얻을 이익이 무엇입니까?

외무부가 95년 하반기에 4자 회담 제안을 미국과 상의했으나 남북 관계가 여의치 않아 그만둔 뒤 미국은 줄곧 비공식으로 4자 회담 제안을 한국측에 촉구한 것으로 압니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4자 회담을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제안하려고 했는데, 그럴 경우 북한이 받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고, 또 우리 신문에 사전에 다 나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좀 들고 있었습니다. 적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제안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거지요.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이 오니까, 양국 대통령의 공동 명의로 제안하는 것이 더 힘이 있겠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합의 등 정지 작업은 물론 그전에 됐지요.

현재 4자 회담에 대한 미국의 평가와는 별개로, 한국이 4자 회담을 제안했을 당시 미국은 3자 회담을 주장한 것으로 압니다.

미국이 3자 회담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3자 회담을 선호했습니다. 중국이 거북하다는 입장이지요. 그런데 우리 입장은 4자여야 북한과 거래할 때 합의된 사항이 준수가 잘 된다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힘 있는 입회인이 하나보다는 둘이 낫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다음으로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건설적으로 같이 기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면 미·중 관계 개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거지요. 당시만 해도 미국과 중국은 긴장 관계였습니다. 4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중국과 미국을 끌고 간다면 우리가 아시아 평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중국을 꼭 집어넣기로 결정한 거지요. 중국은 처음에는 3자가 다 합의해야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어요. 그러니까 북한이 중국의 참여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했지요. 우리는 중국더러 물러가지 말고 있으라고 했고, 그후 중국은 매우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이 언제쯤 진지하게 4자 회담에 임하리라고 보십니까? 새 정부 출범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북한은 1년반 넘게 생각을 했거든요. 결론은 났다고 봅니다. 4자 회담을 한다는 쪽으로. 그러면 형식적으로 진행하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어떤 성과를 도출하기를 원하느냐인데,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4자 회담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가 북한이 완전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북한이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우리가 상황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미국과 합의한 것은 남북 관계 개선 없이 미·북한 관계 개선이란 없다는 겁니다. 이 메시지를 분명하게 북한에 보내고 있어요. 정권 교체나 새 정부 출범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현재 한·미 관계가 최악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경제 위기는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가 실패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미국이 자동차 협상 등 경제 문제와 안보 관계를 합쳐서 안보 관계에서 신통치 않으면 자동차 협상에서 타격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전혀 관계가 없어요. 그 동안 약간의 잡음은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경수로 문제를 합의할 때 북한에 대해 어떤 양보를 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해서는 양국의 의견이 똑같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로서는 북한과의 핵 회담이 중요한 과제였으므로 한국의 협조에 대해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잠수함 사건 때라든지, 옥타브에 차이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큰 줄거리를 볼 때는 양국이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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