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순 원장 연세의료원장 “병원 경영 한계점에 왔다”
  • 金 薰 편집국장 직무대행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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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병원의 경영 적자가 누적되면 의료 서비스나 의료 수준은 현저히 낮아질 것입니다. 종합 병원이 적자를 줄이려면 우선 간호사를 줄여나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
사립 대학 병원들은 누적된 재정 적자로 경영 위기에 처해 있다. 보험 수가가 병원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값싼 의료를 전국민에게 공급한다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보험 수가의 통제를 풀지 않고 있다. 정부와 병원의 시각 차이는 크다. 그 틈바구니에서 병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병원의 서비스가 낮아짐에 따라 환자들의 원성도 높아가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앓고 있을 뿐, 병원이 앓는 병이 보이지 않는다. 김일순 연세의료원장이 종합 병원의 병을 진단한다. <편집자>

지금 병원에 대한 환자의 불만은 과거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습니다. 과거의 불만은 주로 병원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고, 의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도리가 없고, 환자를 비인간적으로 관리한다는 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불만은 환자들이 퇴원할 때 물어야 하는 병원비 중에서 본인 부담률이 너무 높다는 점입니다. 의료보험제도의 근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요즘 입원 환자들이 물어야 하는 의료비 중에서 본인 부담률이 45%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의료보험법 규정에 따르면, 본인 부담률은 전체 비용의 20~30% 정도라야 합니다. 그러니 환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병원은 경영 악화에 따른 비용을 환자들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의료보험법 규정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 입원 환자의 밥값을 올리거나 또는 보험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의 시술을 늘려서 환자들에게 보험 외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지요. 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은 30%가 병원의 권위주의나 의료인들의 특권 의식 등 도덕적인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나머지 70%쯤은 근본적으로 의료보험 수가의 비현실성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70년대에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보험 수가는 꾸준히 인상되지 않았습니까 ?

그것은 소비자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상 폭이었습니다. 의료보험 도입 초기에 책정된 보험 수가는 관행 수가의 50% 선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의료보험 시행 초기에는 전국민 중 보험 대상자가 1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의료보험의 수혜자입니다. 그러니 병원의 경영 악화는 이제 한계점에 이른 것입니다. 지난해 전국의 주요 사립 대학 병원의 경영은 거의 대부분이 적자였읍니다. 간신히 적자를 모면한 대학 병원은 대규모 건강진단 같은 수익 사업을 벌여서 적자를 메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 병원의 국민의료적 사명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금년에 책정된 보험 수가 5.8% 인상으로는 전국 대학 병원의 적자 폭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합 병원의 경영 적자가 누적되면 어떤 결과가 예상됩니까?

종합 병원이 경영 적자라는 것은 기업체가 경영 적자라는 말과는 국민 생활에 미치는 의미에서 다릅니다. 정부 당국자나 국민들도 이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합니다. 종합 병원의 경영적자가 누적되면 더 이상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를 공급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병원이 쓰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나 의료 수준은 현저히 낮아질 것입니다. 종합 병원이 적자를 줄이려면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간호사를 줄여나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간병인을 고용해야 합니다. 간병인 비용은 하루에 3만원 정도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환자 부담입니다. 환자들은 보험제도 안에서 전문 인력인 간호사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험제도 밖에서 비전문 인력인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비용을 전적으로 자기가 부담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의료비가 보험제도 밖에서 기형적으로 커지고 있는데도 병원은 병원대로 골병이 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공립 병원의 경우는 경영 적자가 문제가 안되지 않습니까?

국·공립 병원 역시 의료보험제도 아래서 심각한 경영 적자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국·공립 병원은 모든 적자를 국고에서 메워주기 때문에 적자를 극복해야 한다는 동기가 매우 희박합니다. 따라서 적자가 더욱 심해지는 것이지요. 어쨌든 한국의 의료 공급은 전체의 85% 이상이 민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대학 병원의 몫은 매우 큽니다. 따라서 전국 대학 병원들의 경영 적자가 국민 의료에 미칠 악영향은 심각합니다. 보험 수가 정책을 단순히 소비자 물가안정 차원에서만 판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학 병원들은 그동안 특진 제도나 컴퓨터단층촬영 등을 보험외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수입 증대를 꾀해 왔고, 또 그것이 환자와 병원 간에 불신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정리가 됩니까?

정부의 기본 입장은 특진 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컴퓨터단층촬영도 금년부터 보험 수가 적용을 받게 됩니다. 이 두 가지 항목은 사실 병원이 적자 폭을 메우는 데 크게 기여해 왔던 것입니다. 지금 세브란스병원의 경우는 전체 환자의 90%가 특진 환자입니다. 환자들이 대학 병원을 찾아 올 때는 이미 이런저런 의료기관을 거쳐서 왔기 때문에, 무슨 과 아무개 박사에게 가야겠다는 선택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정부나 병원은 환자들의 이같은 선택과 관행을 존중해야 합니다. 또 그것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 관계의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특진료 수입 중에서 의사의 몫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한푼도 없습니다. 모두 다 병원 법인으로 들어와서 재투자에 쓰입니다. 이 제도가 특진에서 제외된 환자들에게 위화감을 주어왔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지 제도 자체를 폐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컴퓨터단층촬영을 의료보험 대상 안에 포함하는 방침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병원이라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러나 실제로 이같은 제도를 통해서 컴퓨터단층촬영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게 하려면 수가를 합리적으로 책정해야 합니다. 병원 경영 자체를 황폐화시키지 말고 고가 의료장비의 혜택을 골고루 나누어 주기 위한 의료 수가를 책정해야 하다는 말입니다.

의료를 시장경제 기능에 맡기자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 의료는 경제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경제 논리와 복지 논리를 종합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의료 수가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그 통제는, 의료 공급의 주체인 병원이 의료를 재생산하고 수준을 향상시켜서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의료 수가를 통제해서 값싼 서비스를 다량으로 골고루 나누어주겠다는 지금까지의 의료보험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이상 기여할 수 없으리라고 봅니다.

최근 사립 대학 병원의 책임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정부 책임자들을 방문했는데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병원측은 금년도 의료보험 수가가 9.9% 정도는 인상되어야 재정 적자를 돌파해 나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공급 주체의 입장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결정권을 갖는 재정경제원은 이 문제를 소비자 물가의 문제 안에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LG 그룹이 연세의료원에 거액을 투자해서 재벌과 의료를 연대하겠다고 한 것은 의료계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했던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이 사업은 그 후 구체적으로 진전이 있었습니까?

그 사업도 지금 매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대학 병원과 재벌그룹과의 인식 차이 때문입니다. LG는 2천억원을 연세의료원에 출연하겠다는 것이 애초의 구상이었는데 협상의 마지막 고비에서 소유와 경영 참여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병원 재산의 일부에 대해 지분을 갖고 대학 병원의 인사나 관리에 일정 비율 참여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재벌이 대학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학으로서는 수용하기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중단되었지요. LG쪽 생각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행 의료보험 체제는 질병 예방 기능이 있는 것입니까?

전혀 없습니다. 모든 의료 행위가 인간이 발병한 다음부터 시작되고, 발병한 이후만이 보험제도의 관리 대상입니다. 예방에 쓰이는 예산은 없습니다. 보험 재정의 단 몇 %만이라도 예방에 쓰인다면 사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입니다. 환자가 들끓어야 돈을 버는 병원은 이상적인 병원이 아닙니다. 병원의 이상은 환자가 없는 병원입니다. 환자가 적을수록 수지가 안정되는 병원을 지향해야 합니다. 예방 급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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