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신문, 화려한 시절 끝났는가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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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매 50% 줄어 월급 못 주기도…일부는 무료 배포 ‘승부수’ 띄울 듯
한스포츠 신문의 부장은 지난해 송년회 자리에서 부서원들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언제 월급이 안 나올지 모르니 돈을 아껴 쓰고 다른 길이 있으면 찾아 나서라. 스포츠 신문 쪽은 절대 돌아보지 말라.” 부장의 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올 들어 스포츠 신문은 사상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 신문 판매와 광고가 50% 가까이 줄어들면서 신문을 찍을수록 손해가 나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져버렸다. 신문사들은 32면에서 28면으로 면수를 줄이고 뼈를 깎는 구조 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회복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월급과 취재비가 제때 나오지 않는 신문사도 있다. 한 신문사 미국 특파원은 출장비가 안 나와 텔레비전을 보고 기사를 쓸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가을이 오면 스포츠 신문이 불황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스포츠 신문이 살아 남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이 더 많다. 한 스포츠 신문의 국장은 “스포츠 신문은 권투 선수로 치자면 그로기 상태다. 스치는 주먹에도 다운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신문사 경영담당 임원은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기를 지나 스포츠 신문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아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신문은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슬럼프일까.

점유율과 판매율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포츠 서울. 코스닥에 등록된 ‘스포츠서울21’의 주가는 6월5일 현재 2천1백15원. 액면가 5천원은 물론 연중 최고치 4천5백8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5월에는 간판 만화인 <용하다 무대리>를 일간 스포츠에 빼앗겨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스포츠 서울은 부수를 4만부 가량 줄이고, 부장급 이상의 사표를 받아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스포츠 서울이 위기 해결책으로 빼어든 카드는 무가지 굿모닝 서울 창간. 하지만 아랫돌 빼어내 윗돌 괴는 격이라는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다른 신문사의 상황은 좀더 심각하다. 일간 스포츠 편집국의 한 기자는 “스포츠 서울은 1년치 연봉을 주고 명예퇴직을 시킬 여력이라도 있지만 다른 신문사는 돈이 없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장이 광고를 따려고 하루 저녁에 네 곳의 술자리에 나선다는 소리가 편집국 내에 돈다”라고 말했다. 일간 스포츠는 한국일보에서 분사하면서 정기 독자를 30% 이상 잃어 시름이 깊다. 제휴한 중앙일보에 윤전기 사용료와 종이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어 중앙일보의 입김이 더욱 세지는 형편이다.

스포츠 투데이는 스포츠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수입 다각화를 위해 LPGA 개최권을 사들였다. 지난해 사업 수익만 76억여원을 올린 기반을 토대로 올해부터는 문화 공연에서도 단순 투자의 개념을 넘어 직접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하지만 히트 상품이 없다. 스포츠 투데이는 유재준 사장을 영입해 코스닥 등록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유사장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감사원 감사를 받으면서 코스닥에 등록하려는 미련을 접은 상태다.

자기 사옥이 있고 조선일보의 탄탄한 보급망을 끼고 있는 스포츠 조선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구조 조정은 혹독하다. 지난 2월 1년치 연봉을 주는 조건으로 간부 사원 20여 명을 명예퇴직시켰다. 한 편집국 기자는 “조선일보 간부가 내려오면 젊은 기자 두셋을 내보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생지인 굿데이는 가장 강도 높은 구조 조정으로 힘을 비축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급여의 30%를 주식으로 지급하고 있다. 아울러 편집국 기자는 1개월, 비편집국 사원은 3개월 무급 휴직을 쓰게 하고 있다.

스포츠 신문이 이토록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독자가 신문을 인터넷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스포츠 신문은 인터넷에서 거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 스포츠 신문 인터넷 팀장은 “지난해 말부터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스포츠 신문을 읽고 있어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신문사 콘텐츠를 쉽게 가져가는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스포츠 신문사에 지급하는 월 콘텐츠 사용료는 천만원 가량. 포털 사이트 뉴스가 스포츠 신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여기에서 10배 이상의 수익을 내는 점을 감안하면, 신문사가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박찬호·김병현 등 메이저 리거들의 동반 부진도 스포츠 신문의 한숨을 깊게 하고 있다. 박찬호 중계를 보고 스포츠 신문에서 ‘복기’하는 마니아 수만명이 떨어져 나갔다. 월드컵 이후 프로 야구의 퇴조도 스포츠 신문에는 악재다.

스포츠 신문을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주범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무료 신문이다. 무료 신문이 나오면서 지하철 가판이 무너졌고, 이는 도미노처럼 스포츠 신문 광고 시장을 쓰러뜨렸다. 경제난으로 광고비를 줄이고자 하는 광고주에게 스포츠 신문의 50%인 광고 단가로 부수가 많은 무료 신문에 광고할 수 있다는 것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신문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스포츠 신문 광고는 35~50% 가량 급감했다. 한 신문사 광고국장은 “지난해 5~6월 스포츠 신문의 광고 매출 평균은 월 40억~50억 원이었다. 하지만 올 5월에는 30억원 넘는 신문사가 없고 10억~20억 원대에 머물렀다”라고 말했다. 6월부터 선정적인 700 광고를 못하게 되는 것도 치명타이다. 신문사당 한 달 2억원 이상의 광고비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무료 신문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하다. 2002년 5월 창간한 최초의 무료 신문 메트로는 첫해에 한 달 평균 5억원 가량의 광고를 수주했다. 2003년 10억원 가량이었으나 포커스 창간 이후 15억원 수준까지 올랐다. 올 3월 굿모닝서울 창간 이후에는 20억원 가량의 광고료를 수주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포커스도 20여억원, AM7의 경우 12억~13억 원, 굿모닝서울 7억~8억 원의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광고계의 정설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무료 신문이 모두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4월1일 창간한 메가 스포츠는 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신문사는 물론 제조업 회사까지도 무료 신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무료 스포츠 신문·무료 만화 신문·무료 경제 신문 등 틈새 시장 위주로 무료 신문 출현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깊어지자 5월27일 5개 스포츠 신문 발행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스포츠 신문의 당면 과제와 위기 해결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조만간 스포츠 신문 업계는 24면으로 감면하고 주5일제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신문 인터넷 사이트는 만화와 사진 등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강화해 포털 사이트에 맞선다는 전략도 짰다. 일각에서는 편집국 기자를 줄여 2백원짜리 신문을 만들거나 무료 신문화하는 등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판매를 포기하고 무가지로 갈 가능성이 있는 매체도 있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6월14일 만화 무료 신문 데일리줌(Daily Zoom)이 선보인다. 50만부 발간 예정인 데일리줌은 이현세·고우영·한희작·강철수 등 유명 만화가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가독성과 열독률 에서 스포츠 신문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일보사 계열사인 서울경제신문은 6월 중순께 무료 신문 ‘스포츠 한국’(가제)을 창간한다. 신문 형태는 스포츠 신문과 똑같다. 무료 신문 ‘타임 투데이’도 창간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 스포츠 신문 경영 담당 상무는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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