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지침까지 공개하는 인터네트의 무법자들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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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네트에 테러지침·폭탄제조법 등 범람…미국, 통신 예절법 ‘엑슨 수정안’ 채택
‘사탄이 뭐냐?’
인터네트 이용자들의 올 상반기 최대 화제는 ‘사탄’이었다. 사탄(SATAN)은 네트워크 분석용 보안 관리 툴(Security Administrator Tool for Analyzing Networks)의 줄임말로, 시스템의 취약점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소프트웨어이다. 좋은 목적에 쓰인다면, 시스템의 보안상 약점을 일일이 점검할 시간이 없는 관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도구이다. 그러나 그 반대도 성립한다. 나쁜 의도로 쓰인 사탄은 해커가 아닌 일반인들도 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세계의 모든 네트워크를 무방비 상태에 빠뜨리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사탄은 공개되기 전부터 격렬한 찬반 양론에 휩싸여 있었다. 4월5일 인터네트에 사탄이 무료로 공개된 후에도 화제는 끊이지 않았다. 사탄 개발자 중 한 사람인 실리콘그래픽사 컴퓨터 보안담당 전문가 댄 파머가 사탄 공개를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서 회사측과 마찰을 빚어 사표를 썼고, 막상 발표된 사탄이 프로그램 실행 도중 다른 시스템으로부터 침입을 당하는 약점을 노출하는 등 짓궂은 이름 값을 꽤나 한 프로그램이었다.

테러 대상자 신원도 공개

지금 이 사탄은 인터네트 이용자들의 표현대로라면 통신 공간에 ‘둥둥 떠다니고’ 있어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등 국내 대형 통신망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사탄이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보도는 없다. 댄 파머의 주장대로 사탄은 통신인 권리장전 제1조인 ‘정보 공유 원칙’을 충족시켰을 따름인가.

그러나 사탄을 놓고 벌인 논쟁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일반인에게 소름을 돋게 할 파일 하나가 등장했다. 지난 4월29일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가 있은 직후 홍콩 인터네트에 공개된 ‘테러리스트 지침서’라는 파일이 그것이다. <홍콩 스탠더드> 4월30일자는 이 파일이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당시 쓰인 암모니아 질산염 폭탄을 비롯해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니트로셀룰로오스로 만든 폭탄, 군사용 폭약 RDX (강력 고성능 폭약) 등 폭탄 20여 종의 제조법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 수사기관이 추적에 나서는 등 문제가 확산된 때문인지 이 파일은 금세 지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인의 충격과 달리 인터네트 이용자들은 이러한 뉴스에 시큰둥하다. 그 정도의 정보는 인터네트 뉴스그룹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널려 있다는 것이다. 관심 주제만도 수백 항목에 달하는 뉴스그룹에 들어가 보면 실제로 ‘원자폭탄 만드는 법’ 같은 게시물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네트 이용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정보 자체를 즐길 뿐이지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이용해 보려는 마음은 없다.’

문제는 인터네트 이용자 가운데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미 전세계 4천만명 가량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네트에는 이같은 선의의 정보 탐닉자들말고도 협잡꾼·테러리스트·장사치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섞여 있다. 미국인들은 그래서 인터네트를 ‘서부 개척 시대’에 비유한다. 정해진 법도 없고 아주 혼돈스럽다는 것이다.

인터네트에는 ‘버추얼 베이거스’나 ‘카리비언 인터네트 카지노’처럼 판돈을 걸고 이용하게 돼 있는 전문 도박장이 있는가 하면, 신나치주의자들이 자기 주장을 거침없이 개진하고 회합을 꾀하는 게시판도 있다. 태국의 섹스 관광 업소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글, 남의 나라 기밀을 빼내 전세계에 공개하는 글 등 올라오는 게시물의 내용은 무척 다양하다. 지난 3월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해킹으로 알아낸 이스라엘 비밀경찰 책임자의 이름과 집 주소를 공개한 사건도 일어났다. 이스라엘 정부가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는 이미 고질화되다시피 한 골칫거리이며, 인터네트를 통해 물건을 샀다가 사기를 당해 돈을 날린 사람들의 호소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3월23일 미국 상원 상무위원회에서 이른바 ‘엑슨 수정안’이라 불리는 통신 예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채택돼 눈길을 끈다. 엑슨·고튼 두 상원의원이 제안한 이 법률 개정안은 공공의 이익에 반한 정보(음란물), 적대적이거나 불량한 메시지 또는 데이터를 생성·전송했을 경우 최고 10만달러 벌금이나 징역 2년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대상은 인터네트, 사설 전자게시판(BBS), 상용 온라인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전자 통신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법안이 나오게 된 가장 큰 배경은 뭐니뭐니 해도 통신망을 통한 음란물 범람이다. 지난 3월 미국의 대표적인 성인 잡지인 <펜트하우스>와 <플레이보이>가 인터네트를 통해 서비스하기 시작해 한국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지만, 사실 이 잡지들은 매우 ‘점잖은’ 축에 속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고서는 ‘본격적인’ 내용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보다는 ‘에로틱 사이트’ ‘포 유어 아이즈 온리’ ‘에로티카’ 등 인터네트에서 ‘SEX’라는 항목만 선택하면 볼 수 있는 수많은 사설 전자게시판들이 훨씬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도색적인 글들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최근 미연방수사국(FBI)은 미국의 한 PC통신망에 잔혹 포르노 소설을 연재한 혐의로 미시간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던 제이크 베이커를 체포했다. 그의 소설은 여성을 납치해 수간하고, 사지를 절단해 살해하는 등 온갖 가학적인 변태 행위로 가득차 있다. 몸을 옥죄는 기구, 뜨겁게 달군 미용기계, 철사줄 따위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품이다. 더욱이 그는 같은 과 여학생 이름을 작품 속 희생자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성희롱죄에 명예 훼손과 사생활침해죄까지 추가되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린 자녀들을 포르노로부터 보호하자’는 구호로 대변되는 통신 예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의회에서 통과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통신망 사업자와 통신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통신망 사업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이 법안이 정보를 생성한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통신망을 제공한 사업자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신망 사업자가 분배자(disributer)냐 발행자(publisher)냐를 놓고 법조계에서는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통신망 사업자를 ‘발행자’로 보아 통신망에서 사기를 당한 고소인에게 배상금을 물게 한 판례가 있었다.

그러나 상용 컴퓨터 통신망이 아닌 인터네트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네트는 주인도 없고 중앙 통제소도 없다.

95년 4월 현재 전세계적으로 5백70만대의 호스트 컴퓨터가 연결돼 있는 그 속에서(인터네트 소사이어티 집계), 초당 수천 개씩 오르내리는 메시지나 파일을 일일이 통제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 공통의 검열 기준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미국에서 불법인 것이 유럽에서는 합법일 수도 있다. 특히 음란물의 경우 유럽의 규정이 훨씬 ‘너그러운’ 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터네트의 종주국이자 전세계 호스트 컴퓨터의 50∼60%를 점하고 있는 미국이 강력 규제에 나선다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미국 상원의 판단인 듯하다. 이는 ‘인터네트를 구하기 위해 인터네트를 파괴한다’는 한 상원의원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용자들, 범죄 싫지만 검열에는 반대

이에 대한 통신인들의 반발 또한 격렬하다. 이 법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최근 인터네트에서는 ‘정부의 검열(censorship)에 반대한다’는 제목을 내건 토론장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처럼 조직적인 저항 움직임을 보이는 단체도 있다. 이들은 상원 상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항의 편지를 보내자고 촉구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인터네트를 드나들었다는 한국의 한 이용자도 “서명 운동이 있으면 도장을 찍겠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현실은 인터네트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외설스럽다’ ‘사이버 스페이스(가상 공간)를 현실 세계의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인터네트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이 강조하는 ‘사이버 스페이스 주민들의 자정(自淨) 능력’만 믿고 있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발생했으되 그 범죄의 양상이 현실 범죄와 똑같이 닮아 있고, 피해는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한 정보의 보물 창고로서 인터네트가 지닌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래픽 환경으로 간편하게 인터네트를 검색할 수 있는 월드 와이드 웹(www) 서비스가 대중화하면서 인터네트 이용자가 더욱 가파른 상승 곡선으로 늘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 미국의 고민이 더 이상 ‘강 건너 불’ 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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