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박상회 회장 "경쟁력 없으면 돕지 않겠다"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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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이후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움도 크게 보면 급격한 국내외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체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중소기업 지원 움직임에 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문제가 온 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기업들이 연이어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고, 정부도 잇달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런 분위기가 5공화국 이래 유례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을 돕자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가 왜 이처럼 갑자기 화제가 되고 있을까. 또 이 논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 나갈까. 올해 3월 취임한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에게 그 배경을 들었다.

중소기업 지원 문제가 최근 들어 최대 현안이 된 것은 김영삼 대통령 방미 당시 박회장이 집중적으로 거론한 데서 비롯됐다는데, 사실입니까?

지난달 26일 대통령께서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 워싱턴 D.C.에서 수행한 경제인과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중소기업의 현황을 설명드리면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중소기업 부도 사태가 너무 심각해 제도와 행정 개선만으로는 못막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통치권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제 얘기를 신중히 받아들이셨는지 저한테 ‘박회장, 서울 가거든 진짜 회의 한번해’ 하시더군요. 그래서 이 문제로 회의가 한번 열리겠구나 하고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지난 9일 대통령께서 30대 기업 총수를 초청하는 오찬 모임이 잡혔습니다. 당시 이례적으로 기협중앙회 회장인 제가 참석해 중소기업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게 된 거죠.

요즘 대기업과 정부 부처가 발표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30대 총수 초청 오찬 간담회 이후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6일에는 재경원이 금융지원 대책을 발표했고, 17일에는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이 모여 지원 협력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곧바로 해결될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만, 정부의 지원 대책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중소기업 지원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은, 경기가 좋은데도 유독 중소기업들은 자금 면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으면서 쓰러지고 있기 때문일 텐데요. 실태는 어떻고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중앙회가 조사한 실태를 보면, 자금 사정이 좋아졌다는 업체는 거의 없는 데 반해, 어렵다는 반응은 절반을 넘습니다. 중소기업의 외상 판매 비중은 65%가 넘는데, 판매 대금 회수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자금난의 큰 원인입니다. 중소기업이 자금난으로 쓰러지는 것은 구조 조정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 문제를 경제 원리나 합리성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 지원 붐이 일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중소기업 자금난의 원인을 주로 금융실명제와 같은 개혁 입법에서 찾는 주장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실명제 이후 중소기업들이 사채시장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고 대출 조건도 불리해져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크게 보면 급격한 국내외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체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소기업을 돕자는 데에 정치적 고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2일 무혐의 판정을 받긴 했지만, 중앙회장 선거 때 5억여 원을 살포했다는 탄원서가 접수돼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다시는 거론하고 싶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선거에서 패한 상대방 진영이 무기명 탄원서를 접수시킨 게 발단이었습니다. 검찰이 자금 추적을 두 달간이나 했는데, 특별히 나온 게 없었습니다. 고문 변호사와 협의한 후에 검찰에 자진 출두했습니다. 검찰이 오히려 놀라더군요. 대통령을 수행하고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고 싶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저는 제 선거 참모들한테 4천5백만원을 썼다는 점은 시인했습니다. 돈을 안주는데 움직일 참모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 돈도 제가 운영하는 기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 개인 돈이고, 탄원서에 돈을 받았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회장에 취임하고도 그 문제 때문에 중앙회의 분위기가 뒤숭숭했습니다. 이제 좀 나아졌습니까?

그 문제로 저 자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거운동 당시 했던 공약을 실천하는 데 차질도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앙회에 서비스 중심의 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이를 위해 지난달에는 조직도 개편했습니다. 또 과거 상공부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부회장 자리에 와 앉는 관례를 깨고 꼭 필요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남들이 되겠느냐던 할부 금융(팩토링)·물류·광고 회사 설립 건에 대해서도 반응이 좋아 곧 성과가 드러날 겁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그러다 보면 산업 구조 조정이 늦어지는 등 부작용도 있는 것 아닙니까?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게 중요합니다. 저도 기업을 하는 처지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도 자질이 부족한 중소기업 사장들이 있습니다. 부도가 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기업들한테까지 지원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전경련과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협력 방안은 어떤 내용입니까?

지금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여러 가지 협력 사업이 추진돼 왔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양자의 협력 문제는 대기업이 동반자적 처지에서 하도급 거래에 대한 공정한 룰을 만들고, 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 분야에 대해서는 과감히 사업을 이양하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중소기업 지원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지난번 30대 총수 초청 간담회 당시에도 말했지만, 30대 그룹만 해도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잘해주는 기업들입니다. 그밖의 중견 대기업들이 문젠데, 그 문제도 하반기에는 짚어야겠고, 또 지금 나오는 중소기업 지원이 실효성이 있는지도 한번 따져봐야 할 겁니다. 또 범국민적인 중소기업 살리기 운동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중앙회가 추진해온 남북경협에는 진전이 있습니까?

다음 달에는 중앙회 실무진이 북측을 접촉하러 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주관이 돼서 중국이나 북한측과 사업 상담을 하자는 얘기는 많았지만 실제로 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포인 그쪽 사람들로부터 사기꾼 소리를 듣기도 했던 겁니다. 물론 정부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중소기업진흥공단과 협의하겠지만, 중앙회는 중소기업들의 북한 진출 창구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 9월에 중소기업남북경제교류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고, 얼마 전에 각 조합으로부터 경협 희망 분야도 조사했습니다. 연말까지는 중소기업인들의 방북이 가능할 겁니다.

그밖에 중앙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일전에 정부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에 중소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했는데, 참여를 희망하는 모든 중소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는 컨소시엄을 중앙회 차원에서 구성할 계획입니다. 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할 때는 전경련이 주관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중앙회가 중심이 되고, 또 희망자는 다 참여시키는 새로운 사례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선거전에서 경쟁했던 전임 회장 박상규씨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을 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정치는 절대 안합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제가 운영하는 기업(미주실업을 포함한 미주 계열사 7개)을 키워서 대기업으로 만들고 전경련 회장 한번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기협중앙회장 하고 전경련 회장 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겁니다(웃음). 회장 재임 동안 사업은 현상 유지 이상은 못하겠지만, 임기 마치고 나서는 기업 키우는 데 전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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