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리티지 재단 에드윈 풀너 회장 “개혁은 빠르고 강력하게 추진하라”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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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시장을 더 개방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 경제 개혁을 이루어야 합니다. 셋째, 외국인의 시장 참여나 투자는 침입이 아니라 한국에 득이 되는 일
헤리티지 재단 에드윈 풀너 회장이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오랜 친구인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취임식 다음날인 2월26일 풀너 회장은 출국을 앞두고 시사저널사를 방문해 ‘경제 위기 극복 방안과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73년 설립된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 최대 공공 연구기관이다. 정부 보조를 일절 받지 않고 개인·재단·법인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정치·경제·안보를 비롯해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고, 연구 결과물은 미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풀너 회장은 20년 넘게 헤리티지 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이다.

이번 방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한국을 얼마나 자주 방문하십니까?

지난해는 네댓 차례 한국을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60여 번 넘게 방문해 한국에 친구가 많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도 절친합니다. 김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웃음). 이번에 방문한 것은 김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월25일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김대통령이 임기 동안 정책을 수행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당장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김대통령은 먼저 정책의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안보 여건이 김대통령으로 하여금 많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강요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시급한 것이 무엇이고 나중에 처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 실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김대통령은 그가 제시한 개혁 과제를 아주 빠르면서도 강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개혁의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외국인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명쾌하게 개혁을 진행해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 김대통령은 매우 높은 국민 지지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김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솔직하게 대화하고, 필요한 경우 국민을 적극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달에 있었던 국민과의 텔레비전 대화는 유효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이룰 때 김대통령은 한국 역사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외환 위기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첫 발걸음은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멉니다. 한국의 경제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고 새로운 도전이 닥칠 때마다 그 고비를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김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한국인들은 더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방향은 제대로 잡았으나 고비는 아직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당장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선 내수 시장을 더 개방해야 합니다. 동시에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기업 구조와 사업 방식을 국제 기준에 맞추어 외국인 투자가들이 의혹을 갖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김대통령도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의 역동적인 리더십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과감한 경제 개혁이 필요합니다. 개혁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한국인은 이 고통을 감내하면서 개혁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세 번째로, 외국인 투자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이 변해야 합니다. 외국인의 시장 참여나 투자는 침입이 아니라 한국 경제에 좋은 것입니다. 시장 개방은 우리(외국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좋은 일입니다.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이므로 제품을 수출하는 데만 치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국 제품을 수입하는 데 인색해서도 안됩니다. 요약하면, 시장을 더 개방하고 투명성을 높이면서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함께 움직이면 경제 위기를 넘어서리라고 봅니다.

아시아의 일부 지식인은 외환 위기와 관련해 ‘음모론’을 제기합니다. 즉,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을 비롯한 세계 금융기관과 헤리티지 재단이 구미식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전파하기 위해 아시아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모론은 틀린 것입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재단이 창립된 이후 지난 25년 동안 음모를 꾸민다거나 함정을 파는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지금도 미국과 한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호 이익을 높이려고 합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오래 전부터 한국의 경제 개발과 한국인의 자유를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방금 하신 질문은 헤리티지 재단이 경제 음모를 꾸몄다는 서류가 있다는 말입니까?
확신할 수 없으나 그것을 입증할 만한 관련 서류를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음모론)은 난센스입니다.

앞으로 한국인은 40년 전부터 한반도에 정착된 냉전 구조를 없애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선 김대통령이 제시한 대북 정책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봅니다. 취임사에서 김대통령은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특임 대사를 임명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91년 남북한 사이에 체결된 기본합의서를 언급하면서 그 합의문이 다시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남북한 회담을 빠른 시간 안에 열어야 하고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김대통령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나는 한국인의 친구입니다. 미국인 대부분이 한국의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울과 평양 사이에 놓을 평화의 다리는 남북한 당사자가 직접 세워야 합니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같은 주변 국가들은 남북한의 노력에 대해 도움말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남북한 관계를 개선할 주인공은 한민족입니다. 이렇게 볼 때 김대통령은 올바른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민간 기업들이 추진하는 ‘북한 어린이 돕기’ 대형 콘서트가 10월에 열릴 예정입니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세계 인기 연예인들이 이 콘서트에 참여할 것이며, 이 공연에서 나오는 수익은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이러한 민간의 노력이 남북 관계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십니까?

콘서트는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이 행사가 북한에도 방송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이 이 행사를 방송하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국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북한 어린이들이 겪는 굶주림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 어린이의 기아는 인류의 비극입니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세계 유명 연예인들이 한국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여하겠다는 이유도 바로 그것 아닐까요? 이것은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과 한국의 정치·경제·안보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남북한 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이 행사에도 당연히 관심이 큽니다. 하지만 콘서트 자체는 미국내 대형 홍보업체인 컬럼비아 그룹이 관심을 갖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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