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경기도지사 “지지율 16%인 이회창은 결단 내려야"
  • 崔 進 기자 ()
  • 승인 1997.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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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선에서 진 이유는, 경선 구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20,30대 유권자는 50%가 넘는데, 대의원 중 20,30대는 5%였습니다. 남녀 비율이나 지구당 인구 비례도 무시됐어요. 이것이 신한국당의 현실입니다.
혁명. 이인제 경기도지사를 말할 때마다 따라붙는 수사다. 대의원 혁명을 부르짖으며 뒤늦게 신한국당 경선에 뛰어들어 비록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일대 선풍을 일으켰던 이인제. 요즘 그의 주변에서는 다시 혁명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회창 대표에 대한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져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엷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지사가 뭔가 혁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이인제 신당설’까지 나온다. 이지사는 8월15~16일 이틀에 걸친 인터뷰에서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12월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면서, 국민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선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경선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듯이 대다수 국민은 새롭고 큰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대 교체 열망은 식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열망이 그런데도 결국 이대표에게 패하지 않았습니까.

경선 구도 자체가 잘못된 데다 지구당위원장들의 지지가 열세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의원을 5만~6만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30대 유권자는 50%가 넘는데, 대의원 가운데 20,30대는 고작 5% 정도였고, 남녀 비율이나 지구당 인구 비례도 완전히 무시됐어요. 이것이 신한국당의 현실입니다.

경선이 불공정했다는 얘기입니까?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와서 공정성을 얘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다만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실질적인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돈과 조직이 경선 결과를 좌우한다면, 아무리 경선을 치르더라도 당내 민주 발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이회창 위기론’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데, 어느 정도 위기라고 보십니까?

이대표의 지지도가 16%까지 떨어졌다면, 최악의 상황 아닌가요. (이대표는)민심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에 맞는 최선의 대책을 내놓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건 이대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 전체의 문제입니다.

여권의 위기와 맞물려 이지사의 대선 출마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경선에 참여했던 당사자로서 당이 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정치인은 국민의 바람과 시대의 요청을 잘 살펴 가면서 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원칙과 정도를 지켜 나가면서 국민과 역사 앞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여차하면 출마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현시점에서는 뭐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난 8월13일 대통령과 만났을 때 ‘꼼짝 말고 이대표를 도우라’고 하지 않던가요?

대통령께서는 큰 정치를 하는 분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민주 정당은 다양한 세력이 여러 목소리를 내는 정당 아닙니까. 과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은 민주 정당이 아닙니다. 모든 결단은 제 스스로 내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역사와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조직과 돈 없이 국민적 지지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한 뒤)아무래도 정당 배경 없이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국민의 힘으로 못할 일은 없습니다. 국민의 힘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이지사 주변에서는 이대표를 도와 서울시장 공천이나 차차기를 도모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다던데….

(다소 언성을 높이며)아니, 누가 누구에게 어떤 자리를 약속한다는 겁니까. 모든 것은 국민이 선택합니다. 독재 국가라면 몰라도 요즘 시대에 자리 보장이니 하는 말은 애당초 성립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최근 한 일간지가 이지사께서 지사 직을 포기하는 것은 주민에 대한 배신 행위라며 12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는데.

글쎄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배신이라는 말도 한 적이 없고.

이대표가 경선 낙선자들을 끌어안으려는 의지, 즉 포용력이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차차 잘해 나가리라고 기대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은 봉건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네가 졌으니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라는 식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의도에 60평짜리 사무실을 내는 것은 출마를 위한 포석이 아닙니까?

청계 포럼 실무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는 자세히 모르는 일입니다. 정치인이 사무실을 갖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개인 사무실은 아니고 연구소 형태로 꾸며질 겁니다(이지사는 최근 여의도 정우빌딩에 있던 경선 캠프를 폐쇄했다).

이지사의 당 개혁안 제출을 탈당 수순 밟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김대통령이 총재 직을 이양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 우리 당부터 3김 시대가 끝나게 되는데, 거기에 맞추어 우리 정당도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당은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존해 하향식으로 운영돼 왔지만, 앞으로는 당원이 주인이 되는 상향식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지금처럼 공천권이 특정인 한 사람에게 주어져서는 안됩니다.

같은 단체장으로서 조 순 서울시장이 시장 직을 중도에 포기하고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잠시 생각한 뒤)단체장의 경험은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경영하는 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우리나라는 지방 자치 경험이 일천해서 단체장의 대선 출마가 많은 거부감을 가져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단체장이 많아지고 또 자연스러운 추세가 되리라고 전망합니다. 다만 조시장은 시장 직을 도중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도중에 단체장을 그만두지 않고 출마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지사께서는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습니다. 만약 출마한다면 당원과 국민에 대한 약속을 깨는 것 아닙니까?

사람은 평생 의무감 속에 살아 갑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의무에 복종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결단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인은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지사는 인터뷰가 끝나자 뒷짐을 진 채, 심각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박정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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