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
  • 워싱턴· 김재일 특파원 ()
  • 승인 199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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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조금이라도 북한을 도우려고 손을 뻗치는 것이 한국과 관계를 끊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방어적이거나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길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을 격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국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 연구에 관한 한 외국인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한국 전쟁의 기원>은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잊혀진 한국 전쟁을 학문 대상으로 되살려 놓았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북한이 팽창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소련의 사주를 받아 6·25 전쟁을 일으켰다는 일반적 해석에 대해 모순을 지적하고, 오히려 그 반대적 요소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즉 한국 전쟁은 50년 6월25일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전 한반도 내외의 역학 관계 속에서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5월30일 코리아 홍보교육원과 워싱턴 D.C. 한국청년연합이 공동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에 왔다. 인터뷰는 그가 강연을 마치고 덜레스 국제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몇 달 전 기밀 해제된 국무부 문서를 보았습니까?

전부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시사저널>이 커버 스토리로 다룬 기사도 영문으로 읽었습니다.

1989년 미국 정부는 이른바 ‘화이트 페이퍼(white paper)’에서 80년 5월 공수부대가 이동한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국무부 문서를 보면 미국이 공수부대의 동향을 꿰뚫어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까 ?

저는 국무부의 화이트 페이퍼(백서)가 사실을 말하기 위해 작성됐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미국 정책과 국무부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작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제가 판단하는 것은 별개 문제지요. 좀더 이야기하자면, 국무부는 신군부가 광주에 공수부대를 파견한 사실을 미국이 몰랐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수한 국무부 문서는 한국에서 근무했던 국무부 사람들이 공수부대 파견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공수부대의 무자비함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무부·국방부·8군·국방정보기관·중앙정보국(CIA)과 그밖에 다른 기관들의 문서를 입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카터 행정부가 80년 5월22일 백악관 고위참모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긴급 대책을 승인했는데, 이같은 결정이 전두환 장군이 주도한 5·17 조처를 공식 승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렇다,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카터 행정부의 인권 외교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됐습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는 79년과 80년 한국에서 한국의 안보와 태평양에서 미국의 안보, 그리고 안정을 인권이나 민주화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안정을 추구했고, 북한의 동향에 대해 걱정했기 때문에 전씨를 지원했지요. 국무부 문서로는 전씨의 조처를 공식 승인했는지 입증할 수 없으나 만약 공식 허가했다면 그것은 미국 정부의 하급 연락책을 통해서 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문서에 나타난 사실은 글라이스틴이 전씨를 만나러 갔을 때 그가 훈령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원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지요. 따라서 전씨는 그것을 공식 승인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전씨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내게는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무부는 아직 화이트 페이퍼의 내용과 결론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미국 정부는 광주 학살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는데요.

국무부가 화이트 페이퍼의 내용을 지지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만약 갑자기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발표한다면 조사를 다시 해 또 다른 화이트 페이퍼를 작성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전씨가 조종했습니다. 미국은 광주 봉기 전·후에 안정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전씨를 지원한 데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도덕적 책임이므로 미국 시민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미국이 광주 학살에 대해 비난 받을 이유는 없으나, 전씨가 조종한 학살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은 도덕적인 책임이 있고 그 점은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거꾸로 전씨를 백악관에 초청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처럼 대접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광주로부터 손에 피를 묻혔고,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미국이 공수부대의 광주 이동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특히 한국 대학가에는 반미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당시 광주 봉기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라고 규정했고, 항쟁 진압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은 지금 대부분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미국이 당시 한국에서의 조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미국은 전두환을 지지한 데 대해, 그리고 전씨를 백악관에 초청해 환영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같은 일이 중국 같은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홀브루크 같은 사람들은 정부에서 면직됐을 것입니다. 홀브루크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80년 6월 한국을 방문해 한국 당국이 안보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광주 문제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홀브루크는 이렇게 말한 데 대해 한국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79년 12·12 쿠데타와 80년 5월 광주 유혈 진압, 그리고 전두환·노태우 씨의 부정 부패에 대한 조사가 한국에서 폭넓게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와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정부를 도와야 합니다.

미국의 도덕적 책임과 관련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봅니까?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참모들이 져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지미 카터는 광주와 전두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공개해야 합니다.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글라이스틴은 79년과 80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죄를 범했습니다. 미국 정치 맥락으로 볼 때 그는 자유주의자로서 전씨의 인간 됨됨이와 그의 권력 장악, 그리고 전씨가 광주에서 저지른 일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킨 저 같은 사람을 비난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82년 <뉴욕 타임스>에 광주 사건 은폐로 인한 한국에서의 위기에 대해 말하고, 전씨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2주 후 글라이스틴은 이 신문에 제 견해가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는 80년 이후 미국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보려고 하는 사람이면 누구거나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서에 따르면, 글라이스틴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보다도 독재를 지원한 죄를 저지른 데 대해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12·12와 5·17 당시 미국이 신군부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보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한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을 훼손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반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저는 카터 정부가 79년 왜 전두환씨가 한미연합사의 틀을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79년·80년 전두환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게 됐고, 미국인들을 미워하게 됐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와 미국인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면 전두환을 지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컴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한국인을 어떤 지도자에 대해서도 복종하는 들쥐 같은 국민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국무부 문서를 보면 미국대사관과 미국 정부야말로 힘을 가진 사람을, 그가 비록 독재자일지라도, 지원하고 그의 논리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요.

위컴 장군은 80년 4월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한국군이 정치적 안정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80년 8월 광주 양민 학살에 대해 말하는 대신 한국 국민은 지도자를 따르는 들쥐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권력을 잡은 어떤 한국 독재자라도 인정했던 위컴 같은 사람이 들쥐였습니다. 반면 한국 국민은 전두환 같은 지도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매우 분명한 입장을 취했고, 그를 매우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따라서 미국 국민들은 전두환에 대한 폭넓은 반대 감정을 가졌던 반면, 들쥐처럼 전씨를 따르고 지원하고 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위컴 같은 지도자도 있었지요. 한국에서 위컴의 역할은 매우 논란거리입니다.

당시 카터 행정부의 인권 외교에 대해 평가해 줄 수 있습니까?

73년 지미 카터가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할 때 인권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진실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취임한 지 1년이 못돼 브레진스키와 다른 관료들이 한국과 필리핀이 인권 정책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그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카터는 미국과 직접적인 안보 이해가 걸리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에 우선적으로 인권 정책을 적용했습니다. 필리핀이나 이란의 샤 정권,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정권에게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카터는 이란 혁명의 와중에서 샤의 정권을 지키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어 버린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클린턴 행정부의 지배적인 외교 성향은 대외 경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요즘 대부분의 미국 외교 정책은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아태경제협력체(APEC), 유럽연합(EU), 세계무역기구(WTO) 등 대외 경제 정책과 연관돼 있습니다. 클린턴은 이같은 대외 경제 문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요. 한국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은 북한의 핵 문제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클린턴은 북한 핵 문제와 다른 문제들을 분리시키고, 양자간 고위급 협상을 통해 북한을 다루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의 핵 시설을 넘어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태를 깊이 관찰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외교적 해결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좋은 외교적 성과를 달성할 것으로 봅니다. 미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북한·한국 간에 심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려는 시도는 한국 전쟁 후 처음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북한과 협상하여 북한 정권의 성격을 점차로 바꿈으로써, 한국은 통일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점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정책을 지지합니다.

미국, 남·북한 관계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발목을 잡고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한국이 미국과 북한간 관계 발전을 방해하고 있지 않느냐는 당신의 질문에, 저는 한국이 방어적이며, 나쁜 정책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북한에 비해 경제적·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강합니다. 미국이 조금이라도 북한을 도우려고 손을 뻗치는 것이 한국과 관계를 끊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북한이 어떻게 하든지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을 격리시키려 한다고 불평합니다. 한국은 방어적이거나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길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을 격리된 상태로부터 끌어내는 것이 더 좋은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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