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약이 안전하다고?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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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사용하면 치명적…‘사람도 함께 잡을’ 가능성 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으로 각종 감염병이 유행할 것이라는 학자들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모기가 옮기는 질병 확산이 가장 큰 걱정이다. 모기는 기온이 높아지면 알이 부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어 급속히 개체 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기와 대항하기 위한 인간의 방어 수단도 꾸준히 발달해 왔다. 초기에는 국화과 다년초인 제충국에서 추출한 ‘피레드린’ 성분이 주된 화학 무기였다. 이는 제충국 주변에서 곤충들이 맥을 못추고 죽어가는 현상에 착안해 개발된 것이었는데, 제충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피레드린 양이 인해전술을 구사하는 모기를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피레드린의 약효를 발휘하는 ‘피레드로이드’라는 화학 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해냈는데, 이 물질이 오늘날 대부분의 모기약에 사용되고 있다.

코일형 모기향과 최근 보급이 늘어나고 있는 매트형·액체형 전자 모기향에는 피레드로이드계 화합물의 하나인 ‘알레트린’이 들어 있고, 에어로졸형에는 ‘레스메트린’이라는 살충제 성분이 첨가되어 있다. 이들 화학 물질은 모기의 신경계를 손상시켜 신경 마비와 운동 장애를 유발한다. 그런데 이들은 모기만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함께 잡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2003년 미국·중국·말레이시아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코일 형식의 모기향 한 개를 실내에서 다 태웠을 경우 담배 약 100개비를 피웠을 때 발생하는 것과 같은 양의 미세 분진과 50개비 담배 분량의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코일형 모기향을 태울 때 배출되는 직경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 분진은 천식과 같은 호흡기계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고, 포름알데히드는 최근 우리 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새집 증후군’의 대표적 원인 물질로서 동물 실험에서는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된 물질이다.

매트형 모기향이나 액체형 모기향은 코일형 모기향보다는 독성 물질을 적게 내뿜도록 설계되어 있어, 그 피해는 코일형보다 적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장기간 노출될 경우 일부 사람들에게 천식·구토·설사 ·근육 마비·과다 흥분·피로·혼수 상태 같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하루 8시간씩 28일 동안 매트형 모기향에 쥐를 노출시킨 결과 2주 후부터 체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과적혈구의 양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고, 간에 이상을 일으킨 쥐들도 있었다.

‘인체 무해’ 과신은 금물

미국에서는 1986~1999년에 식당의 종업원과 손님이 에어로졸 모기약에 노출된 후 호흡 곤란·두통·어지러움을 호소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미국질병관리센터는 그 원인 물질로 에어로졸 모기약에 포함된 피레드로이드 화합물을 지목했다. 미국의 한 시민단체(Beyond Pesticides)는 피레드로이드계 화합물이 인체 내분비 계통을 교란해 면역기능 저하와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 모기약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체에 무해하다는 제품 회사들의 광고를 맹신해서는 안된다. 만약 모기약을 사용할 경우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모기약 제조회사들은 담배와 같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모기약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경고 문구를 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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