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한나라당 의원] “총격 요청, 의혹 있다면 나를 수사하라”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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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부산 동래 출생. 동아대 정치과 졸업. 11·12·13·14·15대 국회의원, 남북 국회회담 대표,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통일외무위원장, 신한국당 사무총장.
박관용 한나라당 의원은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언론으로부터‘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었다. <시사저널>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처음에는 ‘언론을 믿을 수 없다’며 거절하다가 자기의 주장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응했다. 인터뷰에서 박의원은 총풍 사건의 주역으로 알려진 오정은씨는 생질이고, 그의 소개로 한성기씨를 작년 봄에 한 차례, 장석중씨를 작년 봄과 올해 1월에 한 번씩 만났을 뿐 자신은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의원이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선 오정은 전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이 저의 생질인 데다가 그 아이가 작년 봄에 한성기씨와 장석중씨를 저에게 데려와 인사를 시켜서 한두 번인가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장석중씨와 한성기씨를 만난 시점과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작년 봄 외무통일위원장인가 (신한국당) 사무총장인가를 할 때 정은이가 장씨와 한씨를 데려와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장씨와 한씨가 서로 아는 사이인 것은 모르고 저는 조카가 데려온다니까 만났던 것 뿐입니다. 정은이가 한씨를 데려왔는데 당시 한씨가 밝힌 신분은 SBS PD도 아니고 프리랜서 비슷한 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그가 ‘내년이 건국 50주년이니 알프스 등반 중계 같은 큰 이벤트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은이가 ‘안기부에서 돈을 받고 북한에 왔다갔다 한다’는 장석중씨를 데려온 시점도 작년 봄인데 아마 한씨보다 먼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로 장씨와 한씨를 다시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 후로 한씨를 만난 적은 없지만 장씨의 경우 다시 한 번 만났습니다. 정은이가 지난 1월에 옥수수 박사 김순권씨와 장씨를 데려와서 만났는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김박사가 북한에 가기 전에 인사차 온 것이었어요. 그러나 장씨가 왜 함께 왔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때 장씨가 매달 2천 달러를 안기부로부터 받고 있다는 말을 정은이로부터 들었습니다.

장씨와 한씨로부터 받은 인상은 어땠습니까?

한씨가 작년 봄에 저를 만나서 했던 말이 제게 스폰서를 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기꾼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그 후에 정은이에게 ‘그런 사람 만나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씨는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행동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오씨가 대선 때 이회창 후보에게 보고서를 올렸다는데,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당시 저는 그 애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애는 그럴 만한 경험이 전혀 없어요. 정치력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어떻게 오씨가 93년부터 청와대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까?

그 애는 부산고를 거쳐 연대 법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나온 뒤 프랑스에서 10년간 공부하다가 90년에 귀국했습니다. 그 뒤 무슨 회사엔가 잠시 있다가 어느 학교로 가려고 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93년 초에 직장을 구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민정수석실에서 사람이 없다기에 제가 그 애에게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총무수석(홍인길 전 총무수석)에게 추천했어요.

그렇다면 ‘총격 요청 사건’의 주역으로 알려진 세 사람을 알고 있거나 만난 적이 있는데도 이번 사건을 전혀 몰랐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모릅니다. 저는 정은이 처가 9월 초인가 중순인가 제게 남편이 안기부에 끌려갔다고 해서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당시 저는 안기부에 끌려갔으면 국가보안법 관련일 텐데 뭐냐고 물으니 정은이 처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종찬 안기부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자리에 없어 통화를 못했어요. 그 때까지는 그 놈(오씨 지칭)은 고기 한 마리도 제대로 잡을 놈이 아니니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신문에 대서 특필된 것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수사 당국이 한씨와 장씨가 지난해 12월10일 베이징에서 북한측 인사들을 만나서‘판문점 총격 요청 건이 잘 되면 박관용 의원이 비료를 지원해 줄 것’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한 물증을 포착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당시가 대선 때니까 그 때 저는 평의원 신분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비료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설령 보낼 수 있다고 쳐도 당시에 한씨를 만난 적이 있어야 보내든 말든 할 것 아닙니까. 비료라는 이야기는 현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올해 초 전금철과의 베이징 비료회담에서 처음 나온 것입니다. 작년에는 비료 얘기가 없었어요.

검찰과 안기부 등 수사 당국이 조사하겠다고 소환하면 응하시겠습니까?

의혹이 있으면 저한테 물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작년 봄에 한씨를 만난 것이 전부인데 그것이 제가 이번 사건의 배후라는 근거가 된다면 왜 저를 조사하지 않는 겁니까?

박의원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 부위원장인 전금철과 막후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가 박의원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는 설의 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85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국회회담 예비회담에 제가 대표로 갔어요. 그래서 한 차례 예비회담과 열한 차례 공식 회담을 통해 북한측 대표인 전금철을 모두 열두 번 만났습니다. 그리고 89년에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수행해 모스크바에 갔을 때 김총재와 북한 허 담과의 회담을 위해 저와 정재문 의원이 전금철과 안병수를 만난 적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91년 5월에 평양에서 열린 국제의원연맹(IPU) 총회에서 전금철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조세형·박정수·정재문 의원 등과 함께 만났어요. 그러다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남북한 차관급 비료회담에 전금철이 북한측 대표로 나온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전금철이 아직 살아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북한 문제에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박의원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오해를 받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85년 남북 국회회담 대표를 할 때부터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당시는 야당 의원이었고 판문점에서의 회담 외에는 상당히 조심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따른 피해가 두려워 회담 이외에 오해 받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제가 93년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면서부터는 대북 문제에 신경을 안 썼고 개혁에만 신경을 썼어요. 그러다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갔다 와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정해졌을 때 이제는 남북 문제에 신경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가 김일성이 죽어서 그것으로 끝났어요.

그렇다면 박의원은 북한에 판문점에서 총격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권력을 가지면 북한 당국과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정말 잘못입니다. 저도 실제로 전금철을 만날 때 긴장이 됐어요. 이용당할까 봐 뭘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권력을 잡으면 오히려 더 긴장이 되는데, 총격 요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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