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논쟁’ 선생님의 끝없는 투쟁 일지
  • 김은남 기자 ()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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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서 이른바 ‘교사 월급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성낙주씨(46·서울 노원중학교). 주변 사람들은 그를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일컫는다. 소설가·환경운동가·재야 사학자. 다양한 직함만큼이나 그의 이력은 파란만장하다. 사춘기에 전형적인 ‘학교 부적응아’로 공고를 간신히 졸업한 그가 뒤늦게 4년제 대학을 나와 교단에 서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성씨가 처음 취임한 사립 고등학교는 ‘사학 비리의 종합 선물 세트’ 같았다. 그는 평교사협의회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고, 그 결과 남들은 돈 써도 가기 어렵다는 공립 학교로 ‘운 좋게’ 쫓겨갔다. 그러나 1989년 전교조 교사로 찍혀 해직되면서 그의 인생은 새롭게 개화했다.

먼저 그는 대학 시절부터 구상했던 소설 <차크라바르틴>을 완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석가족의 성자 싯다르타와 석가족을 멸망시키려는 코살라국의 청년왕 비유리의 갈등을 주축으로 삼은 이 소설로 그는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기존 공모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독특한 작품’이라며 그의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반대하는 운동에 나선 것도 그즈음이었다. 동네 청년들과 함께 자경대를 조직하고, 경춘가도며 남양주경찰서 마당을 점거하는 극한 투쟁을 불사한 결과 골프장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영광에 따른 상처였다. 죽고 싶냐는 골프장 업주의 협박은 흘려 들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문학상을 주었던 출판사가 문단내 주류 세력과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곳에서 등단한 성씨조차 ‘왕따’가 되어야 하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른바 ‘문화 권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첫 표적은 ‘영향력에 비해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유홍준 교수였다. 그는 유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언급된 석굴암이며 동해 수중왕릉을 발로 누비며 ‘문화 전사 유홍준의 미덕과 해악’을 낱낱이 고발했다. 하다못해 공격당한 당사자조차 상대해 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 그렇지만 그는 문화 권력에 꿋꿋이 맞섰고, 끝내는 석굴암의 건축 철학과 건축 양식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개마고원).

최근 그는 ‘지식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한 작업을 잠시 접었다. 정부와 전교조 사이에 단체협상이 파기된 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기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무력해진 채 7차 교육 과정이 시행되면 학교 공동체는 끝장이라고 생각한 그는 전교조 홈페이지에 할 말을 쏟아놓았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만에 그는 ‘인터넷 최대의 논객’이라는 직함을 또 하나 접수했다. 최근 23호봉인 자신의 월급을 공개했다가 수당 2개를 고의로 빠뜨린 것 아니냐는 한 서무직원의 ‘날카롭고도 악의적인’ 반박에 부딪쳐 곤경에 처한 일도 있지만 ‘교육 파탄 5적(김대중·이해찬·이돈희·서영훈·교육 관료) 시리즈’ 같은 그의 속시원한 글에 평교사 대다수는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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