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사회에 '똥침'놓는 잡지들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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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인물과 사상> <이프>, 대안 언론으로 각광
<딴지일보>는 매체라기보다는 현상이 되었다. 지난해 7월 인터넷에 깃발을 꽂은 <딴지일보>를 방문한 독자는 줄잡아 2백만명. 중복 독자를 감안할 때 40만명 이상이 <딴지일보> 사이트를 찾은 셈이다. <딴지일보>가 인기를 끌면서 사이버 공간에는 패러디 열풍이 불고 있다. <패러디 한겨레21> <보일아동> <청기와> <디지털 스키조선> 등 20여 개의 현실 풍자 사이트가 성업 중이다. <딴지일보>(http://ddanji.netsgo.com.)의 성격은 ‘B급 오락 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 코미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라는 자기 소개에 집약되어 있다. ‘사이비(似而非)’ 깃발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딴지일보>는 당당한 대안 미디어로 대접받고 있다. 김창남 교수(성공회대·신방과)는 “비록 젊은층에 한정되어 있지만 이처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것은 그만큼 대안 미디어에 대한 욕구가 컸다는 뜻이다”라고 지적했다.

<딴지일보>가 주로 딴지를 거는 대상은 당나라당(한나라당), 좃선(조선), 삼승(삼성) 등이다. 선풍의 비결을 짐작할 수 있는 기사 한 토막. 제목은 ‘이헤창 일병 구하기’.

‘리인재 똥방위와 기명사미 똥대장이 철제 도시락으로 국민 레이다망을 교란하는 배신을 때려 이헤창 일병이 위기에 처하자, 북쪽 특공대가 분연히 나서 판문점에서 졸라 총 쏴대고… 결국 이헤창 일병을 구해 낸다는 ‘배달의 기수’에 버금가는 장엄한 전쟁 서사시. 이 대작 영화는 북쪽의 까닭 모를 취소로 무산 … 이 소식을 들은 좃선 찌라시 출력소의 관계자는 “씨바 졸라 아깝다. ‘금강산 땜 vs 평화의 땜’ 재난 영화 상영할 때도 찌라시 엄청 찍어 장사 잘했는데…” 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총풍’, 언론의 안보 상업주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80년대 유행했던 방위병에 대한 유머까지 끌어들였다.
<딴지일보>, 풍자 저널리즘 진수 보여

그래픽 패러디와 욕설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기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꽤 넓은 공감대가 필요하다. 발행인 김어준씨(31)는 이를 386세대의 감수성이라고 부른다. 김씨는 “현실에 환멸을 느낄망정 비판 의식을 갖고 있는 30대가 <딴지일보>의 주요 독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형식의 파격이 주는 충격은 쉽게 빛이 바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씨는 요즘 취재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문 지식을 갖춘 자원 봉사자들이 가세하면서 명실 상부한 대안 언론을 꿈꾸게 된 것이다. 조롱 대상은 정치뿐이 아니다. 벤처 기업 지원의 문제점을 지적한 ‘벤처, 한국의 기업인가?’, 삼성그룹 내부 균열을 꼬집은 ‘삼승 맛이 갔어요’,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고 애궂은 시민만 바가지를 씌우는 보증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증을 홀딱 벗긴다’ 등 여느 시사지 못지 않은 기사들을 쏟아낸다. 특종도 심심치 않다.‘김데충 영어 학습법’이라는 기사는 일간지의 칼럼이 고의로 외신을 오독한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제기했다. 김씨는 이 기사 뒤에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외신 원문을 덧붙이기도 했다.

<딴지일보>가 냉철한 비판 정신이 아닌 ‘똥침의 철학’을 역설하는 것도 새겨볼 만하다. 정색을 하고 대들기보다는 약한 자의 무기인 웃음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근엄한 표정 짓지 말라. 너, 구린 거 다 알어.’

물론 <딴지일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독자들의 요구도 부쩍 늘었다. 욕설을 자제하라. 여성을 비하하지 말라 등등. 심지어 <딴지일보>의 ‘똥침’이 주로 야당과 <조선일보>에 집중된다며 여당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딴지일보>가 개인 저널임을 환기한다. 공정성과 책임성에 발목이 잡힌 기성 언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러라도 책임감을 갖지 않을 작정이다. ‘어차피 비주류인데 똥폼 잡지 말자’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중도 우파쯤 될까?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비주류다.”

<딴지일보>의 의미는 풍자 저널리즘을 선보인 데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매체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전문 기자를 공모했지만, 7호까지는 김어준씨 혼자 작업을 도맡았다. 혼자 힘으로 하루 3만 명 이상이 들락거리는 대중 매체를 만든 셈이다.
지식인 필자 거부하는 <인물과 사상>

평소 “나는 투사가 못된다. 비판을 해도 명예 훼손을 하지 않을 만큼만 한다”고 말해 온 강준만 교수(40)는 요즘 명예 훼손 사건에 휘말려 있다. 월간 <인물과 사상> 12월호에 실린 <기자를 사병화한 조선일보>를 보고 해당 기자가 강준만 교수를 제소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월간 <인물과 사상> 1월호에서 소송을 제기한 기자야말로 숱한 명예 훼손을 저질렀다며 조목조목 사례를 든 것을 비롯해 무려 여섯 편의 관련 글을 쏟아 놓은 것이다. 그는 <조선일보> 주요 논객의 글을 논평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조선일보> 보이콧 운동에 가세했다. 특정 출판사를 지목해 ‘40여 개 시민 단체가 벌이고 있는 보이콧 운동에 동참해 진보적 지성의 전범을 보이라’고 호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찍이 문화 평론가 김종엽씨는 그를 일컬어‘한국 언론의 등에’라고 불렀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처지에서 보자면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는 ‘확신범’이어서 좀처럼 멈추지 않을 기세다. “나는 언론학 교수이다. 한국 언론이 제 길을 가도록 할 때만 나는 기생하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가 기성 언론에서 발견한 것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철책이 둘러져 있다는 것이다. 비틀린 언로를 바로잡겠다는 문제 의식으로 97년 1인 저널 <인물과 사상>(개마고원)을 창간한 그는 곧이어 월간 <인물과 사상>(인물과사상사)을 내놓았다.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논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지면을 열어 주기 위해서다. 서점에서 시판하지 않고 정기 독자만으로 꾸려지는 이 잡지의 독자 수는 현재 7천8백 명이다. 연말까지 만 명을 돌파하겠다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빠른 성장이다.

<인물과 사상> 1월호에는 독자 글이 총 열일곱 편 실려 있다. 원고지 몇장짜리 짧은 글에서부터 백장이 넘는 글까지 다양하다. 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데도 원고가 몰려 매번 열편이 넘는 글을 싣지 못하다고 한다.

그가 이처럼 일반 독자의 비중을 높인 데는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그에게는 발언의 내용뿐 아니라 할 말과 못할 말을 ‘지나치게’가리는 지식인들의 행태도 못마땅하다. 술자리의 무성한 말들이 왜 공론의 장으로 떠오르지 않는가?

그는 언론학자답게 한국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문제 삼는다. 그는 한국 사회의 의사 전달 방식이 수레바퀴형이라고 보았다. 모든 발언이 중심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재야 단체건, 지식인이건, 인권 변호사건 간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 집단에 대해 비판하지 않은 채 정권만 나무라는 것이 이상하게 비친다. 정치란 본래 기회주의적이어서 여론을 살피기 마련인데 우리는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턱없이 작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진보 진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예로 준법 서약서 파동을 꼽았다. 진보 진영이 화살을 날려야 할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준법 서약서 없이 양심수를 풀어 줄 경우 정부를 용공 정권으로 몰아갈 야당과 <조선일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눈치를 보느라 할 말 못하는 지식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유로운 시민들에게 펜을 쥐어 주고 있다.
내놓고 여성 편드는 <이프>

<이프>는 드러내 놓고 여성을 편드는 잡지다. 표어는 ‘웃자, 뒤집자, 놀자.’ 97년 여름 출발한 <이프>(도서출판 이프)는 여성학에 접해 보지 않은 보통 여성들과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론·정책 중심의 무거운 여성운동에서 신나는 여성운동으로 전환한 셈이다.

“세대가 바뀌었다. 가시덤불을 헤쳐 온 선배들의 활동 덕에 우리는 더 경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프>의 박미라 편집장(33)은 그간의 활동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뜻깊은 성과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뱃속을 열어 보일 수 있도록 지면을 개방한 것이다. 반쪽짜리 성공인 까닭은 여전히 몇몇 잘난 여자들의 잡지라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책 한두 권으로 한국의 페미니스트를 일별할 수 있는 것은 비극이다. 그만큼 층이 얇다는 뜻이다”라고 아쉬움을 표한다.

<이프>는 문화 예술 전문지로 출발했지만 장르 비평보다는 성 차별적인 일상 문화를 돌아보는 데 주력했다. 한 예로 언론에서 남편 기(氣) 살리기 운동이 한창일 때 <이프>는 ‘여자 기(氣)를 살리자’고 외쳤다. 가정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을 때 오히려 ‘집 떠나는 여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아우, 야하면서도 지적인, 뭐 그런 남자 없나’라는 방자한 제목을 달고 최고의 남자, 최악의 남자를 꼽기도 했다. 만평 제목도 ‘색녀열전’이다. 남자 누드를 표지로 내걸기도 하고, 남성 필자의 옆구리를 찔러 성 경험을 털어놓게도 만든다.

<이프>의 도발성은 98년 겨울호 ‘오르가슴을 찾아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프>는 한국 사회가 여성의 성욕이나 쾌락에 대해 부자유스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 사례로 대학에 순결학과가 신설된 것과 성교육 열풍을 들었다. 순결학과를 신설한 선문대는 ‘퇴폐화하는 성문화를 바로잡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여성 인력을 양성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올해는 여학생만 20명을 뽑는다). <이프>는 구성애씨의 성교육에 대해서도 성차별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아들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딸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순결 운동과 순결학과로 보답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이프> 편집진이 보기에 재미있는 현상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늘고 있는 반면, 여자들은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프>도 예외가 아니었다. 잡지 이름 앞에 ‘페미니스트 저널’이라는 단어를 표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이다. 낡은 깃발은 아닐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였다. 도발적인 잡지치고는 퍽 수세적인 태도였던 셈이다.

일단 싸움꾼을 자인하고 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소설 <선택>의 작가 이문열씨를 비롯해 <나쁜 영화>의 장선우 감독,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신정휴 교수 등에게 지면 서신을 띄웠다. 요즘은 싸움을 걸 만한 대상이 줄어들고 있다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대신 남성들 가운데서도 <이프>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었다. 박미라 편집장은 “과격한 주장도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호소력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이프>의 목표는 살아 남기였다. 창간 1년 만에 가까스로 손익 분기점에 도달했다. 누적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매호 수지를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박편집장은 <이프>와 같은 계간지가 자생력을 갖춘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영역을 막론하고 계간지나 무크는 홀로서기가 어려워 출판사에 더부살이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길거리로 나섰다. 미용실·택시 등에 책을 비치하고 얼굴 알리기에 들어간 것이다. “무심코 <이프>를 접한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나의 제사 격파기’를 싣고,‘호스트 바에도 성차별은 있더라’라고 개탄하고, 여성의 성권(性權)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이 잡지가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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