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엽이도 없고, 상훈이도 없고’ 관중 없는 프로야구
  • 이용균 (<굿데이> 기자) ()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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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스타 없는 프로 야구, 관중도 없어
프로 야구가 경기마다 불꽃을 튀기고 있다. 7월9일 현재 2위 현대와 7위 한화의 승차는 겨우 일곱 경기. 시즌 초반 ‘강력한’ 꼴찌 후보로 찍혔던 두산은 6월 한 달 동안 17승6패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며 1위로 치고올라섰다. 꼴찌 롯데도 승률 3할9푼7리를 기록하며 지난해(3할)보다 확실하게 도약했다. 삼성 현대 기아 SK LG 한화 여섯 팀은 포스트 시즌 진출을 놓고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야구가 정말 재미있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관중석은 썰렁하다. 올 시즌 관중 동원은 월드컵 때문에 최악이었다는 2002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7월8일 현재 야구장을 찾은 팬은 모두 1백50만6천7백9명.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 줄었다. 야구판에서 느끼는 재미는 야구를 하는 사람들의 몫일 뿐 팬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삼성, ‘탈 이승엽 후유증’ 심각

무엇보다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히어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라운드에서 치열한 승부는 펼쳐지지만 드라마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지난해까지 한국 프로 야구를 대표하던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뒤 팬들을 흥분시키는 스타가 사라졌다. ‘포스트 이승엽’이 없다는 얘기다.

이승엽이 뛰었던 삼성은 올 시즌 ‘탈 이승엽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다. 삼성은 이승엽이라는 대형 스타의 부재를 국보 투수 선동렬을 코치로 영입함으로써 메워보려 했지만, 팬들은 코치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지는 않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구구장을 찾은 팬은 19만6천8백83명. 그러나 올 시즌에는 겨우 10만6천6백6명이다. 관중이 46%나 줄었다. 삼성은 박종호가 시즌 초반 39경기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관중 동원에 큰 힘이 되지는 못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성적인 데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이제 막 삼성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승엽 후유증을 겪지 않기 위해 시즌 개막부터 지금껏 금기로 치부되어 온 학연 마케팅까지 동원했다. 대구구장을 찾은 팬들로 하여금 야구장에 올 때마다 자신의 출신 고교에 투표해 1위를 차지한 학교에 장학금 1천만원을 전달하는 이벤트였다. 대구의 사회 경제를 양분하는 경북고와 상원고(옛 대구상고)의 경쟁 심리를 자극해 관중을 모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전반기 내내 치러진 장학금 이벤트에서 중앙정보고가 겨우 1천7백4표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1천3백51표를 얻은 상원고. 이승엽의 모교인 경북고는 8백61표로 5위에 그쳤다.

스타가 없는 팀의 관중 동원력은 비참할 지경이다. SK는 연봉 6억원을 주고 이상훈을 영입하며 과감한 스타마케팅을 펼쳤지만, 이상훈은 성적 부진 스트레스로 돌연 은퇴를 선언해 버렸다.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격인 SK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관중이 23%나 줄었다. ‘괴물 투수’ 김진우가 부상으로 빠지고 이종범이 전성기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기아 또한 지난해보다 관중이 31%나 줄었다.

포스트 이승엽 후보 1순위는 단연 현대 심정수였다. 심정수는 2003년 46개, 2004년 53개를 때리며 홈런 부문에서 이승엽을 위협한 유일한 존재였다. 심정수의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지난해 이승엽이 세웠던 55홈런 기록도 갈아치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라이벌을 잃은 헤라클레스는 기운이 빠졌다. 시즌 전 했던 라식 수술의 후유증이 길어진 데다 허리와 무릎 등 몸 컨디션마저 엉망이 되었다. 게다가 시즌 초반 모자랐던 경기 수를 채우며 일찌감치 FA 자격을 따내는 바람에 심정수의 의욕은 한층 더 가라앉았다. 독일에서 무릎을 치료하겠다고 주장하던 심정수는 현대 구단의 설득에 따라 다시 경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타율 2할7푼2리에 홈런은 겨우 9개뿐이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며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이는 프로 4년차인 한화 김태균. 변화구를 가장 잘 치기로 소문난 김태균은 지난 3년 동안 홈런 58개를 때려내 이승엽이 데뷔 3년 동안 친 54개를 넘어섰다. 김태균은 이승엽이 가진 최연소 홈런 기록들을 모두 갈아치울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올 시즌 홈런 9개에 그치고 있다. 타율을 높이는 데 재미를 들인 김태균은 힘껏 당겨치는 홈런 스윙보다는 공을 좌우로 날리는 안타 스윙에 치중하고 있다. 덕분에 타율은 3할3푼을 오르내리며 5위권이다.

시즌 초반 3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프로 야구를 잠시 달구었던 삼성 박종호는 수비 좋고 성실한 타자에 머물러 있다. 개막전 이후 4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포수 홈런왕을 예감케 했던 SK 박경완 또한 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40홈런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 ‘국민 스타’ 부재는 프로 야구 전체 흥행에 적신호로 이어지고 있다.

두산 박명환과 현대 브룸바가 후반기 투·타에서 3관왕을 노리며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3관왕은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 투수·최고 타자임을 증명하는 훈장이다.

박명환은 8승으로 다승 1위보다 1승 적다. 탈삼진은 1백5개를 잡아내 독보적인 1위, 좀처럼 추월될 가능성이 적다. 방어율 또한 3.09로 4위권. 다승·방어율·탈삼진 타이틀을 모두 잡아낸다면 선동렬에 이어 두 번째로 투수 3관왕을 달성하게 된다.

현대 브룸바는 타격에서 3관왕을 노린다. 브룸바는 현재 타격 2위(0.346), 타점 2위(72개), 홈런 1위(25개)로 언제든지 3관왕을 사냥할 준비를 갖춘 상태. 그러나 둘 다 올 시즌을 마치고 일본행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스타 자격에 의문이 남는다. 올 시즌을 마치면 일곱 시즌을 채워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 박명환은 “내년에 이승엽형과 일본에서 함께 뛰고 싶다”라며 일본행을 선언한 상태다. 또 두산에서 요코하마로 자리를 옮긴 타이론 우즈의 성공 신화가 브룸바의 공공연한 목표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합병 등을 통한 구단 줄이기에 나섰다. 한국 프로 야구도 매년 팀마다 1백60억원 가까이 적자를 감수하며 운영하고 있다. 국민적인 스타 없이 그들만의 고만고만한 야구만 계속한다면 프로 야구는 실업 야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최근 체육 복권인 ‘스포츠 토토’를 야구장에 끌어들여 반전을 꾀하지만 드라마 없는 흥행 전략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게 된다. 팬들은 그라운드에서 ‘영웅들의 서사시’가 펼쳐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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