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일방적으로 양보한 적 없다"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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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박재규 통일부장관 : 1944년 경남 마산 출생.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 정치학과 졸업. 경희대 정치학 박사. 경남대학교 총장.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박재규 통일부장관(56)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 30여 년간 주로 학계에서 통일 문제를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그가 바로 통일 정책의 산실인 통일부장관으로 취임한 때가 지난해 12월. 단순히 뜻을 펼칠 기회를 맞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역사의 전환점에 주역으로 참여해 경륜을 펼 기회를 가졌으니 행운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장관 취임 직후 그는 <시사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취임 1년을 앞둔 지난 12월18일 오전 정부종합청사 4층 통일부 장관실에서 또다시 <시사저널>과 만났다. 평양에서 있었던 제4차 장관급 회담의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으나, 그는 최근의 주요 현안에 대해 차분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장관에 취임하신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소회가 어떠합니까?

그동안 남북 간에 큰 일들이 정말 많았는데 큰 과오 없이 치를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밖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나 통일부 직원들 역시 인원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굳게 뭉쳐 최선을 다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12일부터 16일까지 평양에서 있었던 제4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한 해를 결산하는 중요한 회담이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말씀하신 대로 4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올해의 남북관계를 총결산하는 회담이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6·15 공동 선언 이후 남북이 함께 추진해온 협력 사업들을 점검하고 일부 사업의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특히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경협 관련 4개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향후 협력의 틀을 형성했다는 점은 큰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회담 초반에는 긴장감이 감돈 것도 사실 아닌가요? 특히 북한의 전력 지원 요청에 대응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그동안 쌍방 간에 있었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고 앞으로 서로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북측이 전력 50만kW를 요청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도 경제 형편이 좋지 않고 여유 전력도 없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는 대북 사업에 대해 국회에 보고하고 양해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에 어떤 답변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했습니다. 12월26일께 남북경협추진위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전반적인 경협의 틀 속에서 논의하자는 것이지요.

그동안 북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결성될 경협추진위에서 검토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경협추진위가 논의의 창구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은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틀 짜기와 이산가족 상봉이나 식량 지원 등 인도적 사업에 중점을 두었던 게 사실입니다. 경협추진위 결성을 계기로 북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김정일 위원장 방한과 관련해서는 어떤 얘기가 있었는지요.

물론 김위원장 방문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북측은 적절한 기회에 준비가 되면 우리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문 지역은 어디가 되겠습니까? 서울입니까, 제주도입니까?

지난 6월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합의한 만큼 서울이 될 것으로 봅니다.

국군 포로나 납북자 문제 논의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지난 2차 이산가족 상봉 때 동진호 갑판장 강희근씨의 모친 김삼례씨와 강씨의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국군 포로와 납북자를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해 해결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북측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난번에 납북자 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납북자와 국군 포로 송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궁극적 목표이지만, 북측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현상황에서는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4자 회담 재개와 관련해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지난번에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이 북한과 미국 양자 간에 선언이나 협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부의 입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4자 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유용한 협상의 틀입니다. 우리와 미국이 공동으로 제의한 것인 만큼 미국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고 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과는 아직 직접 대화가 없었으나 그동안 여섯 차례나 회담을 했고, 특히 지난 10월 조명록 특사가 미국측과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식으로 4자 회담이 명시되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한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냉전 구조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들 사이에 적대 관계가 해소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양자가 일반 협정이나 선언 등을 채택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큰 변화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우선 미국의 한반도 문제 해법인 페리 보고서의 경우, 의회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것입니다. 또한 미국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대외 정책은 국익 차원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 공화당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 원칙을 적극 지지하고 있고 동맹국과의 유대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도 적극 지지하고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끌려 다닌다, 또는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일부 대북 양보론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그동안 북측의 내부 사정 등을 감안해 우리가 신축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한 것을 두고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또 북한에 많이 퍼줬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식량 지원은 1995년 이후 연례적으로 해오던 것입니다. 또 일부 민간 기업의 경협과 정부 차원의 지원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대북 지원은 남북 관계 상황과 우리의 경제 사정 등을 종합 고려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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