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유전공학은 '식량 구세주'인가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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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장대 지도 완성' 계기로 본 국내 연구 현황/벼·배추 등 수준급…"생태 교란" 비판도

사진설명 '식량 주건'을 위하여 : 한국의 식물 게놈 연구는 벼·고추·배추 등 몇몇 풍종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추 게놈을 연구하는 서울대 김병동 교수

지난해 12월 초미국·일본·유럽이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이 식물 유전자지도를 세계 최초로 완성함으로써 식물 유전공학의 물꼬가 터졌다. 이들이 염기 서열을 밝힌 애기장대는배추·무·브로콜리·유채꽃처럼십자화(十字花)과에 속하는 전형적인 쌍떡잎 식물이다. 유전자 수가 비교적 적고 유전 암호가 단순한 데다 다른 쌍떡잎 식물의 유전 암호를 푸는 데도 응용할 수 있어 식물 유전학의 연구 모델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제 식물 유전공학은애기장대의 유전자 지도를 발판삼아 도약할 채비에 나섰다.

선진국들이 인간게놈 연구와별도로 식물 유전공학 연구에 경쟁적으로뛰어드는 까닭은 그것의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우선 식물 유전공학은 인류 최대의 골칫거리인 식량 문제를 해결할 '구세주'로 기대된다. 의약품 등 신기능성 물질을 생산하는 종합적인 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도 매우 크다(76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도 1990년대부터 중요성을인식하고 식물 유전공학 연구에 뛰어들었다.벼·배추·고추를 중심으로 한 몇몇분야에서는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다.

벼 게놈 연구는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1994년에 시작되었다. 밀양 23호와 기호벼를 교배해 유전자지도 작성용 집단을 만들었고, 분자 표지 기술을 이용해 DNA 유전자 표지 천여 개가집적된 유전자 지도를 작성했다. 벼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유전자1백61개의 자리도 확인했다.


고추 연구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최근에는 이 유전자 지도를 이용해 생산량·병충해 저항성·밥맛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 특징을 탐색하고 있다. 1단계 개발에 성공한 제초제 저항성 벼는 앞으로 4∼5년 뒤 상용화할 예정이다. 또 1998년부터는 연구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일본을 비롯한 10개국이주도하는 벼게놈해독국제공동연구 컨소시엄에 참여해 1번 염색체 일부의 염기 서열을 분석했다.

농업과학기술원과는 별도로 벼게놈의 기능을 분석하기 위해 포항공대안진홍 교수가 돌연변이 식물체를 대량으로 제작하고 있고, 경상대 한창덕교수는 바이러스를이용해 새로운 유전자를 찾고 있다.

벼는 전세계 인구 절반의 주요 식량이다.12개 염색체에 염기쌍 약 4억 개를 갖고 있는 벼는 인간 게놈 크기의7분의 1 수준으로,식량 작물 가운데 게놈 크기가 가장 작다. 이에 비해 옥수수는 벼의 6배, 밀은 37배에 달하는 게놈을 갖고 있어 가장적은 돈으로 가장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벼 게놈 연구이다. 이런점에 비추어볼 때 한국이 일찍부터 벼를 특성화하여 게놈 연구를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하지만 아직은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미국 몬산토 사가 지난해 4월에 1차적으로 벼 게놈 서열분석을 완료해한국으로서는 다급한 상황이다.

고추는 한국에서 벼 다음으로 중요한 작물이다. 한국은 육종을 통한 고추 종자 생산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한국 종묘회사들이 고추 종자를 세계 시장에 수출할 정도이다.

고추 게놈 연구는서울대 SRC분자유전육종센터(소장 김병동)를 중심으로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고추는 인간 게놈 크기에 맞먹을정도로 염기쌍이 방대해연구하기가 쉽지않지만, 연구가 성공하면 토마토·가지·감자등 응용할 분야가 많다. 게다가 고추는 진통·항암성분을 함유하고있어 의약품으로응용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현재 3백개 이상의표지를 갖는 고추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유전자 지도를 바탕으로 고추의 우량 형질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분리하고 있는데, 그 동안 고추의매운 맛과 관련된 캡사이신함량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 색깔을 조절하는 카르테노이드 함량 관련 유전자, 세균성점무늬병 저항성형질과 관련된 유전자를 골라내는개가를 올렸다.또 패랭이꽃에서 찾아낸 유전적 특성을 이용한 웅성 불임 기술로 병충해에강하고 생산량이 튼실한 종자를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담배·벼에 응용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불임이 되지 않는유전자, 병에 저항하는 유전자,생산량과 관련된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원예연구소·생명공학연구소·고려대 등은 병에 강한 유전자를 탐색하기위해 DNA칩을 제작하고 있고, 병에 강한 내병성 품종 육성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대 김병동 교수는 "고추는 미국·프랑스·헝가리가 먼저 연구했지만 한국이가장 앞선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국 시장 규모가 약 1조원에 달하고, 매년 1억 달러 이상 수출하는 배추의 경우 한국은 유전공학 연구 분야에서 상당한수준에 올라 있다. 염기를 5억여 쌍 갖고 있는 배추는옥수수나 밀에 비해 게놈 크기가 작아 연구비 측면에서 경제적이다. 게놈 연구도 벼보다 빠른1992년부터 시작했다. 충남대 임용표 교수는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남방형 배추와 북방형 배추를 교배해 1백33개 집단의 계통을 확보했고, 3백여 개가 표시된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

배추의 유전자 조각을 찾는 연구도 농업과학기술원, 포항공대남홍길교수, 서울대 최양도·이종섭 교수 등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이미 2천8백개가 넘는유전자 조각을해석했다. 경상대는 배추 유전자은행을 설립해총 8천개를 분석했다. 임용표 교수도 표준 품종을이용해 배추 유전자 2천개 정도를 해석했다.

인간 게놈과마찬가지로 식물게놈 연구도 전체 염기 서열의 정보를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애기장대 염기 서열을 밝히는데 9년이라는 긴 시간과 수천억원이투입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염기 서열 정보를 확보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육종 연구 노하우와 유전 자원이 뒤를 받쳐 주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과학자들은 유전자원이 풍부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몇몇 품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몇몇 선진국 기업에만 이익 안길 뿐"


그러나 생태학자와 시민단체는유전자 조작 식품의 불안전성, 유전자 조작이 생태계에 미칠 영향, 유전자 특허와 기술을 확보한 자본의횡포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식물 유전공학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시민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을 반대해정부는 오는 3월1일부터 콩·콩나물·옥수수에 대해 유전자변형농산물 표시제를 실시한다. 소비자에게선택할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나 유전자 기술을 소유한 몇몇 유전공학 회사의 횡포 가능성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안이 나오지 않은 채 논쟁만 되풀이되고 있다.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유전자는 환경 변화에 따라 다르게 발현할 수 있고, 다음 세대에도 전달되기 때문에 식물유전공학은 돌이킬 수 없는위험을 초래할지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예컨대 퇴비를 빨리만들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박테리아가 토양 미생물을 몰살시키고, 제초제 저항성 곡물이 그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는 슈퍼잡초를 발생시킨 사례 등은 유전자 조작의위험성을 웅변해 준다는 것이다.

또 식물유전공학이 식량에굶주린 세계에 해결책을 주기보다는유전자 특허및 기술을 가진 몇몇 선진국 기업에만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망도 식물 유전공학에 대한 희망을 반감시킨다. 식물 유전공학이 발달할수록종자와 화학 약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농부들은 특정한 작물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제초제를 생산하는화학 약품회사들이 주요한 종자 회사를 소유하고, 제초제 저항성이 있는 작물의종자와 제초제를동시에 팔아서 이익을 남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 식물 유전공학자들은 몇몇 선진국 기업이 전세계 식탁을점령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식물 유전공학연구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인구가매년 9천만명씩 증가하고 있는데 비해농경지 소실·병충해·공해·기후 변화로 인해작물 생산은 둔화하는 추세여서 식량이점차 안보 성격을 띠게 될것이라고 과학자들은전망한다. 식량이 무기로 돌변할 때, 곡물 식량자급도가 30%에 불과한 한국으로서는자칫 '식량주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것이다. 농업과학기술원 은무영 생물자원부장은 "선진국들이 주요 식량 작물의 유전자를 모두 장악하기 전에 몇 종 또는 몇몇 유전자만이라도특허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식물 유전공학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될지 '파우스트의 선택'이 될지는 더두고볼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공학의 바퀴는브레이크 없이 굴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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