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 만난 사람] "한국학 세계화 새 지평 연다"
  • 박성준 기자 (snype0@e-sisa.co.kr)
  • 승인 2001.01.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인문학자가,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곰팡내가 물씬 나는 고전 비평 분야를 전공한 국문학자가 컴퓨터를 이용한 국제적 학술운동의 한국측 '대표 선수'로 나서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고려대 부설민족문화연구원(전 민족문화연구소) 부원장 김흥규 교수는 최근 이해은(동국대·지리학) 심재룡(서울대·종교학) 윤이흠(서울대·종교학) 성효현(이화여대·지리학) 등 뜻을 같이하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인문학 분야에서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첨단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의공모 연구 과제에 채택되어 지난해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전자문화지도 작성 방법론 연구'이다.

전자 문화 지도란 말 그대로 문학·언어학·철학·종교학·고고학·인류학·민속학·지리학 등 인문학의 제반 정보를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으로 재배열하여 이를 전산화함으로써 세계 각국 인문학자들이 쉽게 교환·유통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약 5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세계적 종교학자인 루이스 랭카스터교수가,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학자가보유한 귀중한전산 자료들이 적절한 소통 경로를 찾지못해 사장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아이디어를 냈다. 한마디로 각국에 흩어진 자료를 한데 묶을 '표준 코드'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자는 것이다.

이 운동에 한국은물론 미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와 타이완·일본 등 한자 문화권 국가, 유럽과아프리카 나라의 1급 인문학자 2백여 명이 국적을 초월해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자문화지도 한국'이 바로 국내 학자에게 부여된 과업의 명칭이다.


한국전통문화 DB 개발 등 업적 수두룩

전자문화지도 한국은,올해본격적인 연구 작업에 들어가 2002년 최종 보고서를낼 예정이다. 한국측 연구팀은 1월중순 홍콩에서 같은 주제로 열리는 국제 학술회의에참가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외국의 동료교수들과 나누어 가질 예정이다.

김교수는 학자로서 한창생산력이 왕성하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선 후기 시경론과 시의식〉(1982년) 〈한국현대시를 찾아서〉(1982년) 〈한국 문학의 이해〉(1986년) 등 고금을 넘나드는 국문학관련 저서를잇달아 내놓아 학계의 눈길을모은 실력자였다. 특히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한 〈조선 후기 시경론과 시의식〉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시경〉 해석법을 국내외의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국문학적 관점에서치밀하게 논구해, 당시로서는 선구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역작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전공인 고전 비평은, '국내인문학계 최고의컴퓨터전문가'라는 이름에 가려 있다. 〈조선 후기 시경론…〉이 나온 직후부터 국문학, 나아가 한국학 분야 전반의 전산화 작업에 그가 기울여온 남다른애정과 집념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컴퓨터와 씨름하는 동안 김교수가 쌓아올린 업적은 만만치 않다. 그는 199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우리 옛 시조2만5천 건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또 최근완성된 '고려대장경 DB'(고려대장경연구소) '조선왕조실록 DB'(서울데이터시스템)와 더불어 국내 한국학관련 3대 DB로 꼽히는 '한국전통문화 DB'를개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통신과 손잡고개발한 '한국전통문화 DB'는 6권짜리〈한국민속대관〉(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을 뼈대로, 관혼상제·의식주·놀이 등 민속학 관련 정보를 사진 자료 2만8천장과 동영상·음향·그래픽·텍스트에 담은 것이다. 1999년12월 그는소속 대학동료 교수·대학원생 들과 함께 국어국문학계에서는 역시 처음으로 '영한 기계 번역 엔진'을 개발해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김교수는 컴퓨터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전자맹'이었다. 그를 첨단 매체와 연결해준 주인공은 다름아닌 그의 자녀들. 1982년 자녀들에게 컴퓨터를 선물해주고 '교육에 필요할 테니 알고는 넘어가자'며 잡게 된 초보자용컴퓨터 입문서가그만 그를, 이공계 교수들까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컴퓨터 전문가로 변신케 한 실마리가 되었다.


독학 20년 만에 인문학계 최고 컴퓨터 전문가 올라

제자들은 그를 '한번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독한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한창 바둑에미쳤을 때 바둑책을 수집해 천장까지 쌓아 놓고 독파했다'는 그의 학창 시절 일화는 아직도 제자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진다.끝장을 보는 그의 기질은 컴퓨터를 공부하는데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그는 독학으로컴퓨터 공부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웬만한 프로그램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대학원생제자들을 가르칠정도로 전문가가 되었다.

전도 유망했던 국문학자가 유능한 컴퓨터 전문가로 변신한 데에는 김교수의 기질과 인문학계의 열악한 컴퓨터 환경 외에, 한국학 세계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작용했다. 한창 컴퓨터에 미치기 시작했을 즈음인 1995년께그는 한국학 분야에서 발군의연구 성과를축적해온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일을 맡게되었다.

그 때 김교수의 머리를 스친 생각은 두 가지였다. 당시 그는 한국학도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 바깥 세계로 문을 열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당시는 또 첨단 매체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강조되던 시기였다. 김교수는 "그무렵 우리 연구소는 연구서만1백80종에 이르는 남부럽지 않은 자산이있었지만, 대부분 종이책 형태여서 시대에맞지 않았다.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유일한 대안은 전산화였다"라고 말했다.

김교수에게 지난 20년은 컴퓨터라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또 그에게 전공 공부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컴퓨터와 한국학을 화해시키는 작업으로 돌리는 자기 희생 과정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컴퓨터에 대해 '일가견은 아니지만 약간의 감은 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지론은 거칠게 요약하면 '컴퓨터가 별짓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흉내를 내는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것이다. 인간에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컴퓨터도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농부가 농약을 뿌리기 위해 비행기를 몰 듯, 주부가 쇼핑하기 위해 자동차를 몰 듯, 인문학자가 더 좋은 연구 성과를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그렇게 하도록 권장하는 세상이 바로내가 원하는세상이다"라고 김교수는 말했다. 그는 이같은 세상을 앞당기려는 싸움의 최전선에서아직도 할일이 태산이라며 의욕을 불태우고있다. 그의 나이는 올해 쉰넷이다.


● 프로필 :
1947년 인천 출생.
1979년∼현재 고려대 전임강사·교수.
1995년 고려대 민족문학연구소 소장.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원장 겸 전자텍스트연구소 소장.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