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야구, 한국에는 '적자'
  • 허행량(세종대 교수·신문방송학) ()
  • 승인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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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권료·광고출연료 등 자본 유출 많아…
미국 정부·메이저 리그만 '남는 장사'


박찬호는 말 그대로 국민의 스타이다. 우리는 메이저 리그의 홈런 타자들을 삼진 아웃시키는 통쾌한 장면을 보면서 IMF의 고통을 달랬으며, 올해 연봉을 9백90만 달러로 계약했다는 사실에 마치 내 월급이 오른 것처럼 기뻐했다. 그가 박세리와 함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는 소식도 있었다.

미국에 진출한 지 7년, 이제 박찬호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때가 되었다. 모든 일에 빛과 그늘이 있듯이 박찬호 증후군에도 냉정히 따져 볼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재 유출은 단순히 사람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함께 그가 지닌 지식과 부가 동시에 빠져나가는 것이다.

먼저 미국 프로 야구 방송 중계권료. 1997년 30만 달러(KBS)이던 중계권료는 이듬해 경인방송(iTV)이 독점권을 얻으면서부터 중계 경기 수가 많아지고 값도 계속 올라 지난해까지 3년간 5백50만 달러가 지출되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MBC는 올해부터 4년간 3천2백만 달러를 지불한다(도표 참조).

박찬호에게 열광하는 국민들은 그가 소속된 팀의 모자·유니폼·가방 같은 라이센싱 상품을 샀다. 국내에서 판매된 미국 메이저 리그의 라이센싱 상품은 1998년 16억원어치가 조금 넘었으나 2000년에는 15배가 넘는 2백50억원어치로 늘어났다. 3년 간의 총매출 규모는 4백15억원을 넘는다. 통상 로열티가 5%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21억원(약 1백75만 달러)이 미국 메이저 리그로 유출되었다고 추산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 박찬호 관련 상품은 아니지만 박찬호가 국민 스타로 떠오르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박찬호는 국내외 여러 기업의 광고 모델로 출연했다. 그가 삼보컴퓨터(16억원) 제일제당(8억원) 동양제과(7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6억원) 등 국내 기업 네 곳으로부터 받은 출연료는 모두 37억원이다. 이 돈은 그가 미국 법인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에는 세금을 내지 않고 고스란히 미국으로 유출되었다.

한편 나이키·스프린트 등 미국 기업의 광고에 출연해 벌어들인 돈은 3백47만 달러이다. 하지만 그 광고의 주요 타깃이 재미 교포나 우리 국민이라고 할 때 박찬호 증후군은 결과적으로 미국 기업들의 국내 인지도를 높이는 등 그들의 한국내 장사를 도와준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 관중은 갈수록 줄어



박찬호가 1994년 미국에 진출해서 지난해까지 받은 연봉은 첫해에 받은 계약금 1백20만 달러를 포함해 모두 8백90만5천 달러이다. 여기에 올해 연봉 9백90만 달러를 합하면 1천8백80만3천여 달러가 되는데, 에이전트에게 내는 비용이 5%, 세금이 45%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수중에 들어가는 돈은 그 절반이다. 그 돈으로 미국에서 집을 사거나 미국 은행에 저축하거나 주식 투자를 하거나, 아니면 한푼도 안 쓰고 한국으로 송금하거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마음이다. 그의 수입은 미국 돈도 될 수 있고 한국 돈도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박찬호 증후군을 순전히 자본 유출입 문제로만 따진다면 손익계산서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계권료만 해도 지난해까지 5백80만 달러가 지출되었으며, MBC가 앞으로 4년 간 지불하기로 한 3천2백만 달러를 단순 평균해도 연간 8백만 달러이다. 박찬호가 올해까지 7년 간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천만 달러가 채 안 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 방송국이 메이저 리그에 낸 중계권료는 1천3백80만 달러이니, 이것만으로도 적자가 엄청나다(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방송사끼리 '박 터지게' 싸우는 과열 경쟁의 폐해는 그만큼 심각하다).

여기에 라이센싱 상품에 대한 로열티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광고 출연료를 합한다면 적자 폭은 훨씬 더 커진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미국 정부(세금)와 메이저 리그(중계권료·로열티 등)가 챙겼다.

물론 모든 가치를 돈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그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IMF 시절, 졸지에 3류 국가로 전락한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 또한 박찬호였다. 심리적 이득이 크므로 경제적 손실 따위는 얼마든지 벌충하고도 남는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박찬호와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이 유출된 증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출전하는 야구 경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비근한 예로 경인방송이 지난해 박찬호가 출전한 경기를 중계한 것은 재방송까지 포함해 76 경기이다(케이블 텔레비전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난 양이 브라운관을 채웠을 것이다). 경인방송 시청률은 통상 1% 대에 불과하지만 박찬호 경기 생중계 시청률은 평균 3.43%, 재방송은 2.21%였다.

박찬호가 미국에 간 뒤 미국 메이저 리그는 국민들의 인기를 얻은 반면 한국 프로 야구는 뒷전으로 밀렸다. 언론 보도가 그것을 증명한다. 박찬호가 미국에 진출한 1994년 방송 3사는 한국 프로 야구를 59 경기 중계했지만 지난해에는 고작 12 경기에 그쳤다. 메이저 리그에 대한 신문 기사는 1994년 20건에서 지난해에는 그 50배인 천 건으로 늘어났다.

그런 탓일까? 1994년 한 경기 평균 8천3백명을 기록했던 국내 프로 야구 관중 수는 지난해 그 절반 선인 4천7백 명으로 줄었다. 국내 프로 야구에 스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박찬호 열풍의 그늘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국민 정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커


박찬호 증후군이 국민 전체의 정서에 미치는 부정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국민 타자라고 하는 이승엽마저 연봉이 3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판이니, 가능성 있는 선수가 기회만 오면 한국을 떠나려 하고, 남아 있는 선수는 도매금으로 무능력자 취급을 받게 되는 서글픈 현상이 나타났다(만약 박찬호가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연봉 100억원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 선수라면 어쩌면 이쯤은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능력을 발휘하려면,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으려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면, 결국 내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나라 탓'이라는 당치 않은 원망이 모든 국민의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생긴다.

박찬호로 인한 심리적 효과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가 출전하는 게임은 두 팀이 벌이는 것이다. 박찬호 팬은 환호하지만 상대 팀 팬은 그를 원망할 것이다. 국내의 용병 선수를 보고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미국내 수많은 외국인 선수 가운데 박찬호 때문에 미국인이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국위 선양 효과는 측정하기도 어렵지만 효과조차 미지수이다.

한국의 슈퍼 스타가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고 막대한 부를 얻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대차대조표를 따져 보면서 환호할 때가 아닌가 싶다. 스포츠가 철저한 비즈니스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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