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 동국대 교수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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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의 공격은 수준 낮은 메카시즘"

"김정일 위원장은 6·25에 사법적 책임은 없고 국가 계승자로서 도의적 책임만 있는데 자꾸 사과를 요구하는 의도가 뭡니까. 처음부터 포용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일 뿐입니다."

사진설명 황태연 동국대 교수.ⓒ시사저널 윤무영

황태연 교수는 현정부의 핵심 브레인 중 한 사람이다. 1997년 대선 전부터 DJ와 인연을 맺었고, 지역연합론의 주창자였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강력한 정부론'도 그의 아이디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설화에 휩쓸렸다. '21세기 동북아 포럼' 초청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그 영향'에 대해 강연하던 중 "침략 전쟁·여객기 납치·테러 등은 사과를 받을 사안이 아니라 국제법적 사안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황교수가 발언한 내용이 언론에 비판적으로 보도되자 한나라당·자민련은 즉각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나아가 정치권의 이념 논쟁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사태가 커지자 황교수는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책 사퇴가 아니라 '왜곡 보도와 명예 훼손에 대한 법적 대응에 들어가면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 사퇴의 변이다.

강연 발언에 대해 실언이라는 평도 있고, 의도한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실언도 아니고, 의도한 발언도 아닙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차원에서 일부러 발언했다는 주장은 음모론적인 시각입니다. 여권이 얼마나 넓은데요. 결코 오케스트라처럼 일할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

발언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침략 전쟁은 국제법으로만 단죄할 수 있습니다.일본 천황은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법 단죄를 받았기 때문에 사과한 것입니다. (국제법의 판결을 거친 것도 아닌데) 북한이 사과를 하겠습니까. 불가능한 상황인 줄 뻔히 알면서 사과를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치 공세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민족 화해와 남북 정상회담, 평화 협정을 위해서 (사과 등의 과거 청산을) 유보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황교수의 주장이 논리적일 수 있지만, 국민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 논리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소리는 선입견입니다. 당장 인터넷 여론조사를 보세요. <동아일보>처럼 제 주장을 악랄하게 왜곡한 매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반 이상이 제 의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김정일 위원장은 유아 시절에 발발한 6·25 전쟁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부적절한 것 아닙니까?

유아 시절이었다는 것은 법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저는 법적 추궁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설명했던 겁니다. 사법적인 책임은 없고, 국가 계승자로서 도의적인 책임만 있는데 자꾸 사과를 요구하는 의도가 뭡니까. 처음부터 포용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일 뿐입니다.

KAL기 폭파 같은 테러 사건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김현희의 자백만 있는 미결 사건이죠. 김정일 위원장이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게다가 여객기 테러 같은 국제 범죄는 사과하고 용서할 사안이 아니라 국제 사법 사안입니다. 사과를 받자는 주장은 사과 받고 면죄해 주자는 것을 전제한 황당한 주장이고, 국제법적 무지를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이번 사건이 보수 언론의 '진보 인사 흔들기', 즉 제2의 최장집 파동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수준 낮은 매카시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그러나 최교수와 저는 다릅니다. 제 일을 하는 데 부소장 직함을 갖고 안 갖고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직책을 유지하고서는 소송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퇴한 것뿐입니다.

현재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강한 정부론'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강한 정부가 아니라 강력한 정부입니다. 영어로 하면 '스트롱' 거버먼트가 아니라 '파워풀' 거버먼트죠. 그런 강력한 정부에 대한 구상은 대통령이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취임사를 비롯한 여러 어록에 열대여섯 번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정리한 것뿐입니다. 강력한 정부의 핵심은 박정희식 권위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법치를 하자는 겁니다. 공자도 인(仁)의 정치를 해야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작태에 대해서는 정형(政刑)을 써야 한다고 했어요. 그게 오늘날 법치에 해당하는 겁니다.

레임 덕을 방지하기 위해 강력한 정부론이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원칙대로 헌법에 규정된 의무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레임 덕을 생각할 처지가 아닙니다. 역사에서 평가받으면 됩니다. 지금은 아무도 의약분업을 잘했다고 평가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모두 체감할 것입니다. 그렇게 단기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하게 가겠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개혁 작업은 언제나 그 시대에는 좋은 평가를 못 받았습니다.

민심의 동향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민심에는 포퓰러 오피니언(속론)과 퍼블릭 오피니언(여론)이 있습니다. 민심이라고 해서 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성적이고 공개된 자리에서 떳떳하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가령 뒷전에서 뇌동 심리로 뒷공론만 하는 의견들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죠. 언론이 왜곡 보도를 통해 속론을 생산하는 경우는 언론의 자유를 넘어서 오용과 남용에 속하는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국민의 기본권이죠. 그것을 남용하면 안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언론 개혁은 어떻게 보십니까?

언론 개혁은 시민 사회와 뜻 있는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문제죠. 정부가 나서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말씀은 단지 화두를 던진 것뿐이지, 확대 해석할 이유는 없습니다.

강력한 정부론이 등장한 이후 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 3당 정책 연합 등 정계 개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라틴어로 울티마 라찌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학적인 개념인데, 최후의 이성이라고 번역하죠. 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최후의 이성을 발휘한 것뿐입니다.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합리한 것도 아니죠. 그걸로 법을 어겼습니까, 국회가 파행으로 갔습니까. 만약 그런 최후의 이성조차도 발휘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국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3당 정책 연합도 국회의 안정 의석을 위해 필요했다고 봅니다.

민주당 차기 후보는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까?

기본적으로 민주당의 정치 이념과 김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후보여야 할 것입니다. 당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사람이 후보가 된다면 당내에서 미리 정권 교체를 당한 채 선거를 시작하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누라 걸고 노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프로필 :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치학 박사.
동국대 정외과 교수.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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