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신 메이저리거, 왜 강할까
  • 기영노 (스포츠 해설가) ()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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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노모 등 일본인 선수 연일 '맹타·호투'…
철저한 연구·사전 준비가 원동력


닌텐도 효과.' 지난해 12월 일본 프로 야구 50여 년을 통틀어 최고 타자로 군림하던 스즈키 이치로(28)가 3천만 달러(약 3백60억원)를 받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자 미국의 매스컴들이 일제히 뽑아낸 기사 제목이었다. 이치로는 메이저 리그 30개 팀을 대상으로 포스팅 시스템(경매 입찰 방식)을 통해 일본 소속팀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는데, 그 조건이 상상을 초월하는 초특급 VIP 대우였다. 미국 매스컴들은 이치로에 대한 구단의 대접이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시애틀 매리너스 팀의 최대 주주가 일본 회사인 닌텐도이기 때문에 이치로가 이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본 것이다.




미국 매스컴들은 일본 프로 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외야수로 활약하다가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 입단한 신조 스요시(29)에게도 혹평을 가했다. 신조의 계약금은 겨우 30만 달러(약 3억6천만원)였고, 연봉은 메이저 리그 최하한선인 20만 달러(약 2억4천만원)였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여가 지난 지금 미국 매스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일 '일본 선수 열풍' 특집 기사를 써대고 있다. 일본 신문들도 메이저 리그 특집 호외를 찍어내기에 바쁘다. NHK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예의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 4 라운드(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오픈) 중계를 취소하고 이치로가 나오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전을 중계 방송했다. 이 경기에서 이치로는 연장 10회에 결승 투런 홈런을 때리고 사사키 가즈히로 투수는 성공적인 마무리를 했다.


아무튼 이치로·신조 두 선수 모두 팀의 주전 외야수로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3할대 타율을 유지하고 있고, 마수걸이 홈런도 때려내 메이저 리그에서 좋은 출발을 했다.


타자들 못지 않게 일본 투수들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한때 박찬호 선수와 함께 LA 다저스에서 활약했던 노모 히데오(33)는 1997년 14승을 고비로 하향길에 접어들면서 저니맨(메이저 리그에서 이 팀 저 팀 옮겨다니는 선수를 비꼬아 부르는 말)으로 전락했다. 일본에서조차 노모는 이제 끝났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노모는 '이래도 내가 한물 간 것처럼 보이느냐'는 듯, 4월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올 시즌 첫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노모는 이제 사이 영·놀란 라이언·짐 버닝 투수에 이어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에서 모두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네 번째 투수로 남게 되었다.




노모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의 노히트 노런으로 아메리칸 리그에서 '이 주일의 선수'로 뽑혔고, 10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다시 만나 6이닝 동안 단 4안타만 허용하며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5일 전 노히트 노런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이치로와 함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사키 가즈히로(33)는 지난해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답게 연일 세이브 행진을 하고 있다. 사사키는 일본에서 활약할 때도 한국의 선동렬을 2년 연속 제치고 세이브왕에 올랐을 정도로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고의 세이브 전문 투수였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스즈키 마코토 선수(26)도 마수걸이에 성공했다. 스즈키 선수는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선수로는 유일하게 일본 프로 야구 출신이 아니다. 스즈키는 미국 마이너 리그에서 기량을 닦았다.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제구력이 일품이다. 일본인들은 스즈키의 나이 와 가능성을 보아 박찬호 이상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밖에 메이저 리그 4년차인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하세가와 시게토시(33)는 중간 계투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오카 도모카스(26)도 한국 김선우 투수와의 경쟁에서 이겨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이라부 히데키(35)는 부상자 명단에 올라 5월 이후에나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체력, 7∼8월 이후가 고비"


비록 초반이기는 하지만 일본 선수들이 일본 프로 야구보다 한 수 위인 메이저 리그에서 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준비 정신이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점을 개업할 때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음식점 주변의 시간대별 이동 인구, 소비 계층 등을 철저히 계산한다. 심지어 이쑤시개 하나까지 원가 분석을 한 후 승산이 섰을 때 개업한다. 그러니 일본 프로 야구보다 한 단계 위인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는 일본 선수들의 준비가 얼마나 철저했을까를 짐작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이치로는 2000년 2월, 일본에서 한창 겨울 훈련에 열중해야 할 때 홀로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그는 약 한 달 동안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들과 합동 훈련을 하며 1년 후에 겨루게 될 메이저 리그 선수들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했다. 이치로는 일본에서 2000년 시즌을 보내며 메이저 리그 투수들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의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이 일본 프로 야구 구장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메이저 리그 경기장에서도 통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타격에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메이저 리그의 투구 속도가 일본보다 휠씬 빠르기 때문에 이에 대처해야 했다. 따라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계추 타법(왼쪽 타자인 이치로가 오른 발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내밀었다 들어올리며 타격을 하는)을 포기했다. 오른 발을 덜 들어올리면 방망이가 최대한 늦게 나와 공을 때리는 지점을 좀더 뒤로 가져올 수 있어 강속구에 대처할 수 있다.


일본의 야구 평론가 스기우라 다다시 씨는 "이치로나 신조 등 우리 선수들 모두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다. 문제는 체력이다. 체력은 기본 베이스가 있어 준비를 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7∼8월 이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선수들 모두 한국 선수들과 맞대결할 가능성이 있다. 이치로가 속해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아메리칸 리그 서부조에 속해 있기 때문에 7월에 있을 인터 리그(페넌트레이스 도중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같은 조에 있는 팀끼리 3∼4 차례 경기를 갖는 것)에서 내셔널 리그 서부조에 속한 한국 투수들(박찬호·김병현)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고, 신조는 내셔널 리그인 뉴욕 메츠 소속이므로 박찬호 김병현 등과 수시로 만나게 된다. 우리로서는 박찬호나 김병현이 일본 선수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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