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허 준과 히포크라테스 "손잡고 '암' 몰아내자"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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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방 협진 효과 긍정적…

상호 불신·시스템 부재로 활성환 난망


한·양방 협진요? 말로만 협진이지 어디 제대로 하는 병원 있나요?" 하나한방병원 한의사 방대건씨는 아직까지 한·양방이 협진해 암을 본격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양방 협진을 표방한 병원이 하나둘 늘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암을 치료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방씨는 얼마 전 국내에서 암 협진 치료를 하는 병원들을 돌면서 현장 견학을 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암환자가 해마다 약 10만 명씩 발생한다. 국내 암환자 가운데 30∼35%는 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지만, 상당수는 치료한 보람도 없이 죽는다.


진단을 통해 암환자로 확정되면 수술로 암 조직을 잘라내고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자의 신체가 쇠약해지고 구토나 설사 따위 부작용을 겪는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치료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양의사에게 협진 치료는 '모험'


이러한 서양 의학을 통한 항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의학계 일부에서는 동서양 의학 협진 시스템을 떠올렸다. 항암 치료로 쇠약해진 환자에게 한약을 처방하면 기운을 북돋우고 면역력을 높여 부작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암 작용을 하는 한약 투약까지 병행하면 양방 치료만 했을 때보다 훨씬 높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협진을 지지하는 의학자들의 주장이다. 백상한방·국제병원 배오성 원장은 "한방에도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많기 때문에 서양 의학과 결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암에 효과적인 한방 치료는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101쪽 상자 기사 참조).


실제로 협진 시스템의 효과를 검증한 임상 사례와 논문도 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이종인 교수(혈액종양내과)와 하나한방병원 최서영 원장 등이 실시한 임상 실험이 대표적이다. 양방 치료와 한·양방 협진 치료군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협진 치료를 받은 환자는 양방 치료만 받은 환자에 비해 항암 치료 부작용이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종양 부위 치료 효과 또한 30% 이상 높았다.


임상 사례와 함께 기존 한약재의 항암 성분 분석과 과학적인 검증 작업도 일부 이루어졌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항암 성분을 가진 한약재를 분석해 한약의 항암 효과를 입증했다. 예컨대, 한약재 소목으로부터 항암 활성 성분을 분리해 동물 실험을 했더니 항암 효과가 기존 항암제보다 수십배 이상 높았다. 또 기존 한약을 응용해 암 치료 효과가 높은 한약재와 한방탕제를 일부 개발해 검증하는 작업도 마쳤다. 암 성장과 전이를 30% 이상 억제하는 한방탕제 KBT와 암 처방용으로 특수 조제한 한약재 DB·KS·HK 등을 개발한 것이다. 이 약재들은 서양 의학에서 신약 물질을 실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 효능을 검증했다.




한약의 항암 효과와 양·한방 협진 성공 사례가 조금씩 제시되고 있지만, 암 치료에 협진 시스템이 활성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1차적인 원인은 한의학계와 양의학계가 서로 불신하는 풍토에 있다. 양의학계는 "한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제로 암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면 우리나라 한의사의 상당수는 노벨 의학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빈정댄다. 양의사들은 치료받던 환자들이 한의학 처방을 받은 뒤 간 기능이 더 현격하게 악화하는 등 한의학 부작용이 오히려 치료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반대로 한의학계에서는 "서양 의학이 수십 년 동안 암 정복에 도전했지만, 아직 손도 못 대는 암 환자가 절반을 넘는다"라고 되받아친다. 요란한 폭죽을 터뜨리며 개발한 항암제도 일부 암에만 효능이 있을 뿐이고, 방사선 치료는 환자 스스로의 면역 기능까지 떨어뜨려 수명을 단축한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서로 불신하는 상황에서 협진을 했다가 의료 사고라도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겠냐고 협진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말한다. '한약은 부작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풍토에서는 양의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므로 양의사에게 협진은 '모험'일 수밖에 없다.


동서 의학 양쪽에 불신을 부채질하고 협진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한방 치료에 대한 객관적 검증 자료가 적다는 점이다. 현재 동서 협진 암 치료에 관해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임상 연구는 54편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39편은 중국 과학자들의 연구물이고, 한국 과학자의 연구는 4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4편 모두 인삼의 암 예방 효과에 관한 것뿐이다. 서양 의학에 한계를 느껴 한·양방 협진의 필요성을 느끼는 양의사조차 '치료 효과가 객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아주대병원에서 한·양방 암 협진 치료 교실을 운영하는 전미선 과장(방사선과)은 "현대 의학의 한계를 한방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방을 암 치료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더 객관화한 자료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의학 처방을 토대로 한 치료 성과를 정밀하게 검증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정에서 협진 시스템을 가동하는 병원들조차 협진 치료를 체계화하고 활성화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경희의료원 동서암센터 김진성 교수(한의학)는 "양의에서 포기한 환자라야 우리 암센터를 찾는다. 말기 암 환자에게는 본격적인 치료보다는 한약 처방 등으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거나 항암 치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경희의료원 동서암센터에서 만난 손무섭씨(68·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의 아내가 경희의료원 동서암센터를 처음 찾은 것도 의사가 수술 후 치료를 포기한 뒤였다. 손씨는 "수술한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동서암센터를 찾았다. 수술한 의사는 1년을 못 넘길 거라고 했지만, 병원을 옮겨 한방 치료를 병행한 덕인지 아내는 2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있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처럼 대부분의 양방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기 전에는 한방 치료를 절대 권유하지 않는다. 아예 한방병원에는 얼씬도 말라고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양방 협진 병원에는 양의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만이 찾아들고, 말기 암 환자를 맡은 협진 의사들은 치료다운 치료를 시도해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일부 협진 병원, '구색 맞추려' 양의사 고용




이와는 반대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한·양방 협진을 악용하는 병·의원도 있다. 실제로 한방 병원치고 '동서 의학 협진 치료'를 광고하지 않는 병원은 드물다. 그러나 상당수 병원이 형식적으로 양의사 한두 사람을 고용해 진통제나 소화제 따위 처방만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방 병원에서 협진하는 양의사는 암 치료 전문가인 종양학 전공자가 아니라 가정의학과 의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나한방병원 최서영 원장은 "한의학만으로 암을 치료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의사 혼자 치료를 주도하고 양의는 진통제 처방만 한다고 해서 협진이랄 수 있겠는가. 최소한 환자를 함께 진료하며 치료 방법을 토론해 최선의 치료 방법을 모색해야 협진이다"라고 말했다. 최원장은 과학적 협진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체계화하지 않은 의료 행위는 오히려 많은 폐해를 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약물 과잉 투여로 새로운 약화 사고를 일으키거나, 상대방 학문에 대한 정확한 의료 지식을 체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섣불리 치료함으로써 병세를 더 나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수준에서 '협진 시늉'만 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성현제 박사는 "일단 협진 시스템을 가동하면 상대방 학문에 접근하고 이해할 기회가 마련된다. 또 초보 수준의 협진에서라도 임상 결과를 축적해 가면 이후 과학적인 협진 시스템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협진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곳은 경희의료원 동서암센터·대전대한방병원·하나한방병원 등이다. 하나한방병원은 오는 5월 경기도 부천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종양학 전문가와 함께 '진짜 협진'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아주대병원은 양·한방 전문의가 동시에 암환자를 상담하는 진료실을 열고, 환자가 원하는 경우 항암 및 면역력 증진 효과가 있는 한약을 병행 투여한다. 경기도 양평군에 설립한 백상한방·국제병원도 협진 시스템을 이용하여 암 치료를 할 예정이지만, 현재 개원 허가를 둘러싸고 양평군청과 줄다리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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