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가리탕' 어디 가서 먹나
  • 신경숙(소설가) ()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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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불광시장 초입에 운암집이라는 오모가리탕집이 있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오빠가 어떻게 그 집을 발견하고 그 옛날에 나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매운탕 종류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시무룩한 나에게 전주 한벽루 밑의 오모가리탕 맛과 똑같다고 했다.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한벽루에서 오모가리탕을 먹어본 적이 있어야 맛을 알지. 나는 그저 오모가리? 생선 이름이 특이하네, 생각했다. 매운탕이 냄비에 나오는 게 아니라 고동색 둥근 투가리에 담겨 나왔다. 펄펄 끓은 투가리 속엔 흰 수제비가 동동 떠 있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메기나 쏘가리보다도 나는 실가리(생선 이름이 아니다. 시래기를 내 태생지에서는 실가리라 했다) 맛에 반해 실컷 먹은 이후로 물고기 매운탕이 참 맛있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 일요일에 산행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한번은 그 집엘 갔다. 실가리는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투가리에 담겨 있는 실가리 쟁탈전 때문에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오모가리탕이 얼마나 더 맛있었는지. 문득 누군가 '왜 오모가리냐'라고 질문했다. 나는 생선 이름이다, 누군가는 지역 이름 아니겠느냐, 이런저런 설이 오가는데, 시중을 들던 주인 아저씨가 투가리를 가리키며 그게 오모가리라고 했다. 그릇 이름이었던 게다. 누군가 아, 오목하니 팼다고 오모가리라 하는 모양이다, 하여 실컷 웃었다.


지난번 비 오는 날 저녁에 함께 사는 사람과 외식을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뭘 먹나, 망설이다가 운암집 실가리 맛이 생각 나 거기엘 가자고 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인 여자가 잘 왔다고 반겼다. 이제 칠월팔일이면 이사간다고 했다. 그럼 우린 어딜 가서 오모가리탕을 먹나 싶어 가까운 곳으로라도 갔으면 하고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그건 아직 안 정했단다. 명함을 주었다. 나중에 전화를 하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한 군데 마음에 드는 곳이 있는데 돈의 아귀가 잘 안 맞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현재 집은 틀림없이 비워야 하기 때문에 이사는 간단다.


오모가리탕과 산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앉아 있는 도중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주인 남자와 여자와의 대화를 옆에서 듣다가 알게 된 사실. 새 운암집을 물색하던 그들은 그 날 낮 파주 어디쯤에 매물로 나와 있는 매운탕집을 보고 왔다. 처음에는 세를 놓겠다고 하더니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세 놓는 건 그만두고 팔아야겠다고 한단다.


주인 내외는 그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든단다. 메기를 대주는 사람이 소개한 곳이라 현재 그 집에 매운탕이 몇 그릇 나가는지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알고 있으므로 둘릴 염려는 없단다. 주인 아저씨가 과묵하고 사람이 좋아 이런 행운이 왔단다. 놓치기엔 너무 아깝단다. 봉고차도 있고 주차장도 있고 방도 많은 그 집. 이층에는 한꺼번에 손님을 오십 명도 받을 수 있고 노래방 기계도 있는 그 집. 근처에 골프장도 있고 저수지도 있어서 오모가리탕 하기엔 최고로 좋은 위치인 그 집. 더구나 지금 그 집이 매운탕집을 하고 있으니 인수만 하면 당장 들어갈 수 있다.


동생에게 동업하자고도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돈을 맞추어 보아도, 대출을 받아도 돈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 집으로 못 가면 병이 나겠구나, 싶었다. 한숨을 내쉬는 주인 여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수제비 안 넣었어요, 했다. 내 정신 좀 봐, 하면서 수제비를 가져와 뜯어 넣어주다 주인 여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정말 잘할 자신 있거든요 하면서 주저앉았다. 오모가리탕을 지금처럼만 계속 만든다면 맞는 말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세상의 돈은 다 어디 갔는지.


* 신경숙 음식 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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