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은 '현대판 불로초'인가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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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요법, 세포 노와 막아 70대에도 '월경'…
의료계 "부작용 없다고 장담 못해"


당신은 최근 몇 년 동안 피로감을 심하게 느끼고, 체중이 증가했는가. 또 성욕이 감퇴하고 정신력이 저하되었는가. 당신이 중년 이상의 나이이고 다른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 의사는 '노화가 찾아왔다'고 진단할 것이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질병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치료를 시도하느냐는 당신 선택에 달렸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현수준에서 노화 과정을 더디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적게 먹고 적절하게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의학자들은 노화도 질병이라고 인식해 치료하는 길을 찾고 있다.


미국 팜스프링스 생명연장연구소를 설립하고, 종합 호르몬 보충 요법으로 노화를 치료하고 있는 에드먼드 첸 박사가 최전방에 서 있다(아래 인터뷰 참조). 첸 박사는 "부족해진 호르몬을 보충하면 세포 노화를 막아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늙으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칼이 희어지는 것뿐 아니라 신체 내부도 노화한다. 염색체 끝에 붙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보면 세포의 노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길이가 조금씩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닳을 즈음, 세포 분열은 정지하고 노화가 시작된다. 과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해,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억제하거나 다시 길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노화를 막는 길을 찾았다. 그 열쇠는 텔로메라제. 텔로메라제는 텔로미어가 단축되는 길이를 복구해 주는 효소이다. 텔로메라제는 젊은 세포에서만 생성되어, 젊을 때에는 길이가 짧아졌던 텔로미어가 재생된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우리 몸에서 텔로메라제 생성이 멈추어 텔로미어가 짧아지며 노화가 진행된다. 호르몬 치료가 노화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는 까닭은, 호르몬이 텔로메라제 생성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김성천 박사(제노프라(주) 연구소장)는 "그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연계성이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팜스프링스 생명연장연구소의 종합 호르몬 보충 요법이 노화 치료의 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을 수 있었던 이론적 배경이다. 정누시아 원장(서울클리닉·팜스프링스 생명연장연구소 한국지부)은 "나이가 들수록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는데, 호르몬 수치를 젊은 시절 수준으로 보충해 주면 텔로메라제가 생성되어 텔로미어 길이가 복원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노인도 호르몬을 보충하면 25세 정도의 정력과 힘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종합호르몬보충요법으로 치료받은 환자의 상당수가 성욕을 회복하고 흰머리와 잔주름이 사라지는 효과를 보았다.


한 달 치료비 3백만원…보험 적용도 안돼




종합호르몬보충 치료 뒤 갖가지 노인성 질환으로부터 해방된 사례도 있다. 김재순씨(74·경기도 안양시)는 지난해 7월 문을 연 서울클리닉에서 9개월째 종합호르몬보충요법으로 치료를 받아 왔다. 김씨는 "심장병 때문에 걷지도 못하고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다가 호르몬 치료를 받은 뒤 계단이나 산도 잘 오를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다"라고 말했다. 가슴 통증이 사라진 것은 물론 20년 전 끝났던 월경이 다시 시작되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소처럼 호르몬 8개를 종합적으로 처방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일부 병·의원이 갱년기 치료 등에 호르몬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선릉탑 비뇨기과(원장 하태준)는 3∼21개월 동안 남성 호르몬 치료를 받은 42∼67세 중·장년 96명을 치료한 결과를 발표했다. 남성 호르몬을 치료받은 환자의 84%가 호르몬을 보충한 뒤 성 기능을 회복하고 전신 피로가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사들은 호르몬 치료가 노화와 몇몇 질병을 극복하는 '천사의 얼굴'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경환 교수(고려대 안암병원·노인병클리닉)는 "호르몬은 체내 여러 기관에 영향을 미치므로 장기적인 실험과 조사가 필요하다. 겨우 몇 년 동안의 결과만을 놓고 부작용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일부러 보충한 호르몬이 노화 치료에만 활용되고 다른 합병증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치료 비용이 매우 비싸 아직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노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팜스프링스 생명연장연구소의 종합호르몬보충요법으로 치료받을 경우, 한 달에 3백만원 가량 든다. 물론 보험 적용도 안 된다. 노화와 함께 찾아온 다른 합병증 치료에 호르몬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이 역시 싼 편은 아니다. 여성 호르몬은 1회에 2만원 정도, 남성 호르몬은 4만∼5만 원을 환자가 부담한다.


호르몬을 이용한 노화 정복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산이 아닌가 봐' 하며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또 혜택이 일부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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