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칠 전 전기초자 사장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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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기업' 살리고 '소신 사표' /
"대주주만 득 보는 경영은 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의 전문 경영인은 대주주 지시에 따르고 그룹 방침에 순응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경영자라면 대주주의 요구라도 선별해 받아들이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전문 경영인은 대주주 지시에 따르고 그룹 방침에 순응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경영자라면 대주주의 요구라도 선별해 받아들이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회사 경영 전략을 둘러싸고 일본계 대주주와 갈등하다가 지난 7월13일 한국전기초자(전기초자) 사장 자리를 박차버린 서두칠씨(62)의 '전문경영인론'이다


NEG·삼성코닝과 함께 세계 3대 유리 업체인 일본 아사히글라스를 대주주로 둔 한국전기초자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용 유리와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를 생산하는 업체. 지금은 연 매출액 7천억원에 순이익 1천7백억원을 내는 우량 기업이지만 4년 전 상황은 정반대였다. 빚은 많은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은 경쟁 업체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직원 1명도 줄이지 않고 구조 조정 성공


1997년 미국 컨설팅 회사 부즈앨런 해밀턴은 전기초자의 경영 실태를 정밀하게 분석한 뒤 '현재의 경쟁력으로 볼 때 도저히 살아 남을 수 없다'라고 사망 선고를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해 7월 노조가 장기 파업에 들어가 전기초자의 경영은 회복 불능 지경에 이르렀다. 1997년 말 전기초자 매출액은 2천3백억원이었지만 차입금은 3천5백억원. 물건을 팔아도 원금을 갚기는커녕 빌린 돈 이자를 물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전기초자의 '대변신'이 시작된 것은 1998년 한국유리에서 대우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가 대우전자부품 사장이던 서씨가 전기초자의 신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서씨에게는 과다한 차입금에 만성적인 노사 분규로 시달리던 대우전자부품을 알짜 기업으로 키워낸 경험이 있었다. 그가 지휘한 뒤로 전기초자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구조 조정에 성공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용 유리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인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를 양산하면서 제품군을 다양화한 덕분에, 직원을 단 1명도 해고하지 않으면서 매출과 수익성을 동시에 높인 것이다.


1999년 11월 대우그룹으로부터 전기초자 지분 50%+1주를 인수한 아사히글라스도 이러한 서씨의 경영 능력을 인정했다. 사장인 서씨에게 주주들의 대표 격인 이사회 대표이사 자리까지 맡겨 주주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경영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줄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아사히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경기가 침체해 텔레비전 브라운관용 유리와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 수요가 줄자 서씨는 가격을 낮추어 매출액을 늘리려고 했다. 대규모 장치 산업인 유리 제조업의 경우 대량 생산할수록 제품 원가도 낮아지므로 수익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이렇게 서씨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한 반면, 아사히는 가격을 낮추지 않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는 '가격 유지 전략'을 펼치고자 했다. 일단 가격을 낮추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서 내리므로 수익성이 악화한다는 것이 아사히측 생각이었다. 게다가 세계 8개국에 공장 9개를 가진 아사히로서는, 전기초자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다른 공장들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래서 아사히측은 전기초자에 생산량을 줄이라고 요구했지만 서씨는 거절했다.


'고용 사장'인 서씨가 그룹 방침에 따르지 않자 아사히글라스는 말을 듣지 않으면 한국에 영업팀을 파견하겠다는 카드를 내밀어 서씨를 압박했다. 이들의 갈등이 폭발할 지경에 이른 것은 7월 초. 전기초자의 차세대 효자 상품으로 TFT-LCD용 유리를 개발할 계획을 세운 서씨는 아사히의 기술이 아닌 다른 회사 기술을 도입하려고 했다. 아사히측이 보기에 서씨는 도저히 말릴 수 없는 '독불 장군'이었다. 이에 대해 서씨는 "아사히의 기술은 세계 최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라고 항변한다.


서씨의 눈에 아사히는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주주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전기초자는 상장 법인이다. 경영자는 모든 주주를 위해 기업 가치를 높여야지 지배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할 수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아사히측 요구에 따라 생산 물량을 줄이면 회사의 수익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서씨의 믿음이다. 실제로 서씨가 물러난 뒤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아사히의 감산 전략에 따르면 앞으로 전기초자의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경영자와 직원, 3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아사히의 가격 유지 전략은 서씨의 경영 철학인 '고객 감동'에도 맞지 않았다. 유리 제조업과 같은 대규모 장치 산업의 고객 감동은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 서씨의 지론이다. 게다가 생산량을 줄이면 '내부 고객'인 종업원을 잘라내는 인력 구조 조정도 불가피하다. 서씨가 생각하는 진정한 구조 조정은 사람을 '자르기'보다 회사로 하여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영자와 종업원이 경영 비전을 공유하며 일치 단결하는 것이다.


전기초자의 성공담을 그린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에 잘 그려져 있듯이, 전기초자의 성공 비결에 '기적'이란 없었다. 1998년 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서씨는 종업원들을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1998∼2000년 말 3년 동안 전기초자 직원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했다. 휴일·휴가 따위는 남의 이야기였다. 관리직 직원들은 평일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새벽 6시에 출근했다. 고된 노동 강도에 불평하거나 마지못해 따르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서씨는 접대비 등 자신이 쓴 경비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고, 다른 회사 경영자라면 회사 기밀이라며 알리지 않을 경영 정보를 종업원과 공유하는 투명 경영으로 직원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장 취임 후 4년 간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서두칠씨. 경영자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서씨는 일단 연말까지 푹 쉴 계획이다. 몇 군데 회사로부터 최고경영자로 영입하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며 경영자로서 '기초 체력'을 좀더 키우겠다고 한다. 식구들은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은퇴하라고 강권하지만, 서씨는 아직 경영자의 길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사람을 자르지 않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한국적 구조 조정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사람답게, 그의 바람은 규모가 크면서도 경영이 어려운 회사를 맡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워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씨는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붙인다. 대주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회사에는 아무리 많은 보수를 주어도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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