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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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본 골격은 양비론이다"


지난 7월13일 오후, 이문열씨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는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 며칠 사이에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이씨는 제자들과 작설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씨가 〈조선일보〉에서 '기관차 충돌론'(7월2일)을, 〈동아일보〉에서 '홍위병론'(7월9일)을 설파하는 사이, 정치권과 문단을 비롯한 지식인 사회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한바탕 '태풍'이 지나고 있었다. '태풍의 눈은 조용하다'고 말한 이씨와의 인터뷰는 그의 서재에서 진행되었는데, 시종 '기우뚱한 양비론'을 견지했다. 이씨는 "이번 사안에 대한 나의 입장 표명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가 마지막이다. 구상을 마친 소설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소설가 이인화씨가 신문 기고에서 당신을 '소수의 질문자'라며 옹호했는데, 스스로를 소수라고 생각하는가?


이인화씨가 말한 소수는 소수의 대변자라는 의미가 아니고 발언하는 소수일 것이다. 나는 내 의견에 동조하는 다수가 있다는 강한 추측을 갖고 있다.


당신의 홈페이지만 봐도, 강한 반대 의견들이 나왔다.


독자들에게 책을 보내오면 책값을 반환해주겠다고 밝혔을 때를 정점으로 반대가 많았다. 반대가 7, 옹호가 3 정도였는데, 책값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오만이 아니고 최소한의 겸양이라고 해명한 뒤부터는 옹호가 늘어났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를 어떻게 보는가?


지난해 가을에 홈페이지를 열었다. 게시판에는 이번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이번 사태 때 1만6천 건이나 올라왔다. 인터넷은 빨리, 널리 확산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왜곡과 역선전도 빠르고 널리 퍼져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소설가 유시춘씨가 당신은 '사회적 약자들의 집단적 운동에 대해 천래적 거부 반응'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단적 운동은 이미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씨의 글에는 운동권적인 몰아치기가 있다. 〈선택〉을 언급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시인〉을 나쁜 작품이라고 한 것은 실수였다. 〈시인〉은 영어·불어·스페인어·네덜란드어·이탈리아어·그리스어, 그리고 곧 나올 독일어판까지 8개 국어로 번역돼 현지에서 모두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당신을 문화 권력이라고 부르는데.


내 이름과 평판이 힘으로 작용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두고 문화 권력이라고 한다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소박한 의미의 권력은 다른 소설가들도 갖고 있을 것이다. 강준만씨가 말하는 것이 그런 의미의 문화 권력이라면, 강준만씨 자신도 문화 권력이다.


'작가가 국내 정치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독자를 잃어버리는 자해 행위'라고 이인화씨가 말했다. 그 말이 맞다면 왜 신문 칼럼을 쓰는가?


나로서는 이번 글이 특수한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늘 해오던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반응이 격렬한 것이 의아하다. 내가 글을 쓰기 전에 이미 세 신문(조선·중앙·동아)에 나와 비슷한 논조의 글이 적어도 50 편 가까이 실렸는데, 마치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논란이 일었다.


그게 바로 영향력 아닌가?


그건 우호적 해석일 테고, 나쁘게 보면 내 글이 공격 유발성, 즉 취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미애 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위에서 나보고 분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번 사태에서 제일 안된 사람이 추의원이다. 사소한 일로 보이지만 추의원은 정보가 부정확했다. 내가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와 관련 있다고 한 것은 큰 잘못이다. 사실 무근이다.


취중 발언을 보도한 신문들도 흥분한 것 아닌가?


그렇다. 언론의 그같은 태도 때문에 내가 기관차 충돌론을 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권도 언론도 모두 이판사판이 된다. 〈조선일보〉가 서운해 할지 모르지만,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보도한 것은 품위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언론사 세무 조사를 어떻게 보는가?


그걸 말하기 전에 내가 흥분한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리·원칙·대의명분을 악용한 사례들이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박정희와 5공때의 삼청교육대도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번 세무 조사도 그렇다. 세금 내라고 하는 걸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럼에도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도 정부 의도의 순수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한 세무 관리가 국세청이 포착한 혐의를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아직 수사와 재판 과정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왜 세 방송사가 생중계할 상황인가. 그래서 괴벨스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사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지면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정부와 언론과의 싸움을 눈과 석탄 사이의 싸움이라고 보지 않는다. 숯과 석탄의 싸움 정도로 본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 관한 한 나는 언론의 편에 서려는 것이다. 최소한으로 쳐도 언론이 51%, 정권이 49%는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사주 문제나 편집권 침해 문제까지 방어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기자 출신이다.


'빅 3'을 어떻게 보는가?


그 신문들의 도덕성이나 결벽성을 100%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 신문이 갖고 있던 순기능이 쉽게 부인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현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 성의를 잊지 않는' 보수주의자의 시각인가?


일맥 상통한다.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 신문들이 지금과 같은 독자를 확보한 것 아닌가. 여기 라이터가 있다. 더 좋은 라이터를 만들 수 있지만 현재로선 많은 사람이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성의를 기억하자.


라이터, 즉 '현재의 세상'을 만든 노력 가운데에는 민주화운동 세력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뭐든지 쉽게 깨고 바꾸려고 한다.


선배 소설가 황석영씨가 지식인은 권력의 편에서 이득을 취해서는 안된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황석영 선생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권력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권력으로부터 이득을 취한 바는 없다. 최근 신문 보도에서 이번 갈등을 문단으로 옮기려는 좋지 않은 시도가 보여 안타깝다. 한 방송사가 황선생과 토론하라고 했는데 거절했다. 내가 어떻게 황선생을 비판하거나 설득하겠는가. 황선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인들끼리 정치판에 끼어들어 감정만 상할 뿐이다.


이미 정치판에 끼어든 것 아닌가?


나는 특정 정당을 편드는 게 아니다. 내 기본 골격은 양비론이다. 다만, 언론 지지가 51% 이상이 될 뿐이다. 뭔가 불길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지방 선거와 대선이 있는데, 지금 정권과 언론이 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도 무리한 정책 결정을 내린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무난하게 마무리한다면, 역사상 대통령 가운데 인간적으로 이만한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이 없다. 하지만 언론과의 싸움에서 진다면, 당장 통치는 물론 퇴임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피해를 본다. 이것이 내가 7월2일 자에 발표한 '기관차 충돌론'을 쓰게 된 배경이다.


● 프로필 :

1948년 서울 출생. 197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 당선.〈사람의 아들〉〈영웅시대〉〈변경〉〈시인〉 등 작품집 다수. 오늘의작가상·동인문학상·호암예술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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