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난 김운용과 달라"
  • 기형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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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FIFA 회장 선거에서 당선 유력


그동안 세계 스포츠 양대 산맥인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최고직은 모두 유럽이 독식해 왔다. 국제축구연맹은 브라질의 주앙 아벨란제 전 회장에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미국의 브런디지에게 단 한번 수장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다.




지난 7월17일,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위원장 선거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조직적인 반대 운동에 막혀 낙선하고 말았다. 그에 비해 정몽준 대한체육회장 겸 국제축구연맹 아시아 지역 부회장은 국제축구연맹 회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제축구연맹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서슴없이 그렇게 말한다.


김운용 위원이 낙선한 또 다른 이유는 2002 레이크플레시드 겨울 올림픽 뇌물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에게 5만 달러씩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때문이었다(본인은 이를 부인했다). 반면에 정몽준 회장은 깨끗하고, 젊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이끌어 냈고, 4선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럽측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회장 선거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선거 못지 않게 흑색 선전이 난무하고, 뇌물이 자주 오간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


현회장인 제프 블레터 회장이 당선되었던 1998년 만 해도, 선거가 있던 5월까지도 요한슨 유럽연맹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당선될 것처럼 보였다. 유럽쪽 51표가 이미 요한슨 지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4년간 국제축구연맹을 좌지우지해 오던 당시 회장 주앙 아벨란제가 블레터를 적극 밀자 상황이 바뀌었다. 아벨란제는 다루기 힘든 요한슨보다, 자기와 잘 맞는 블레터 사무총장을 회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공작을 폈다.


유일한 걸림돌은 '아벨란제·블레터 동맹'




1997년 10월, 아벨란제는 스위스 노이차델 대학에서 열린 12일 간의 연수 과정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축구 행정가와 사무총장 등 22명을 초청했다. 아벨란제는 연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수료증을 수여했고, 호화 칵테일 파티에 초대했다. 이 행사를 위해 들인 비용이 25만 달러나 되었다.


아벨란제는 블레터가 회장이 되면 자신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아벨란제는 국제축구연맹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다. 벌여놓은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월드컵 대회의 텔레비전 중계권을 자신이 좋아하는 독일의 언론 재벌 타우르스 필름과 키르히 그루페, 스위스의 스포리스 사가 결성한 컨소시엄에 넘겼다. 아벨란제는 계약 사실을 국제축구연맹 재정위원회에 일부만 알렸고, 다른 위원회에는 아예 자문조차 하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는 물론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의 중계권을 20억 달러에 팔아 넘긴 것이다. 그 바람에 월드컵 대회 텔레비전 중계권은 2006년이 지나야 재계약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무튼 텔레비전 중계료 20억 달러는 1998년 6월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에서 블레터를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그 증거로 1998년 초 아벨란제의 세계 순방을 들 수 있다. 아벨란제는 투표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설득했다. 아벨란제는 1백91개 회원국에 모두 팩시밀리기 한 대씩을 기증했다. 그리고 모든 회원국에 100만 달러씩을 주었고, 6대륙 연맹에는 천만 달러씩 지급했다. 아벨란제가 직접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블레터는 국제축구연맹 사무총장이라는 지위를 십분 활용해 정기적으로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밀었다. 물론 1백98개 회원국 협회 간부들과 긴밀한 관계도 다져갔다. 블레터는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 등록 마감 시한인 1998년 4월7일을 불과 열흘 정도 앞두고, 회장 선거에 출마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5월에 요한슨을 111 대 90으로 물리치고 축구 대권을 쥐는 데 성공했다.




2002년 6월, 한·일 공동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5월 서울에서 열리는 차기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에는 현회장인 블레터 외에도 후보가 여럿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 겸 국제축구연맹 부회장, 렌나르트 요한슨 유럽축구연맹 회장, 정몽준 회장 등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블레터 회장은 아벨란제의 입김이 많이 약해진 데다, 국제축구연맹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ISL이 파산해 입지가 많이 좁아져 있는 상태다. 요한슨은 건강 문제로 일찌감치 출마를 포기했다. 정회장의 적들이 힘이 약해지거나 사라진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1백20장 안팎의 표 가운데, 유럽이 57표나 되기 때문에 유럽이 결속해서 밀면 상대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은 2백4개 회원국 모두 한 표씩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 몰표가 거의 불가능하다. 정몽준 회장은 우선 아시아 표 45장과 요한슨이 사퇴해 어부지리를 얻게 되는 유럽 표(51장) 대부분을 얻을 수 있다. 정회장과 유럽 그리고 요한슨의 관계로 볼 때 유럽 표가 정회장에게 올 확률은 상당히 높다.


따라서 정회장은 유럽에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면 모를까, 현회장인 블레터 등 어느 상대와 싸워도 유리하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벨란제와 블레터의 이해 관계가 새로운 회장 선거에 어떻게 작용하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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