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민주당 의원
  • 이문재 편집위원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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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 지식인들이 판친다"
"이문열씨에게 폭언을 한 적은 있지만, 야당 총재에게 폭언한 적은 없었다. 실수한 내가 잘못이지만 허탈했다. 지식인들로 하여금 자기 본색을 드러내게 한 '곡학아세'의 본질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네시간이 넘게 인터뷰하는 동안 추미애 의원은 '오프 더 레코드'라는 전제를 단 한 번만 달았다. 정치인 인터뷰치고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소신파였고 원칙주의자였다. 곡학아세하는 지식인을 비판한 의원답게 양비론을 비판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7월20일 오후 5시, 〈시사저널〉 편집국 회의실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본사 근처 음식점에서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추의원은 "한 차례 실수를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란다. 친일을 한 것도 아니고 독재 정권을 찬양한 것도 아니고 조세를 포탈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고 다시 한번 취중 폭언을 사과하면서 양비론을 구사하는 지식인들을 '야만적 지식인'이라고 공격했다.

이문열씨가 정권과 언론에 대해 양비론을 구사했다. 양비론을 어떻게 보는가?
이번 언론사 세무 조사는 조세 행정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것이다. 조세는 국가를 구성하는 원리이며 철학이고 가장 도덕적인 것이다. 유력 기업 못지 않게 성장한 언론사의 탈세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시기와 액수를 거론하며 '재집권 음모다, 언론 탄압이다'라는 막연한 논리로 그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양비론이라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 20세기 초, 당시 중국 지식인들은 민족혼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쑨원(孫文)은 약육강식·적자생존의 편에 서는 지식인을 일갈해서 '야만적 지식인'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바로 야만적 지식인이다. 어떻게 양비론이 가능한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게 어디 있는가. 양비론은 적당히 살아 남으려는 비열함이다.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 논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시기와 액수의 문제다. 시기 문제는 IMF라는 절박한 문제에 치중하느라 사회를 개혁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복지·정의 사회를 위한 개혁의 핵심이 조세 정의다. 의약분업 사태 때, 정부가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국민들은 정부가 거대 언론 기업을 상대로 힘든 일을 벌이는 것을 보고 이제야 강자에게 제대로 맞선다는 정의로움을 봤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불편부당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두 번째, 액수 문제인데, 그분(언론인)들이 늘상 유전무죄·무전유죄라며 비판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이번에는 자신들이 유명한 변호사 내세워서 겨루겠다고 하지 않는가. 바로 그거다. 민주 사회·법치 국가에서는 법대로 하면 된다. 여태까지 친일·독재 정권과 잘 지내 왔으니까 잘 나가는 변호사들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뭐가 겁나는지 모르겠다.

추위원을 대통령 '홍위병'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우선 내가 언론 개혁 일정을 잘 모르고 있다. 내가 대통령의 '전위'로 보인다면 나의 젊은 이미지를 차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보았겠지만, 대통령께서 토론회에 나가면 정동영·김민석·추미애가 보이지 않았는가. 한때 총재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단명했고, 지금 당 4역이지만 뜨끈뜨끈한 정국 현안에 개입할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누가 현안에 관해 질문할 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모른다고 할 수가 없다. 시민들도 알고 있는 것을 총재 비서실장 출신 당 4역이 모른다니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나온다.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확신이 서는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이렇게 손해보는 일도 많지만.

언론사들은 미국 하원의원의 견해까지 동원해, 세무 비리 조사를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CNN이나 〈워싱턴 포스트〉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일, 미국 신문들이 무가지와 경품으로 발행 부수를 늘리는 것을 보고, 미국 행정부가 제재를 가한다면, 미국 의원들이 그걸 언론 탄압이라고 하겠는가. 동북아에 있는 한 나라의 행정에 대해 외국 국회의원들이 소상히 알 리가 없다. 알고 있다면 한국으로부터 왜곡된 정보를 받았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 취임식 때 워싱턴에 가서 미국 정치인들의 한국 인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하나같이 왜 황장엽씨의 인권을 무시하느냐고 질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의견과 똑 같았다.

7월5일 밤,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마셨는가?
(추의원은 '곡학아세론'이 보도된 이후부터 취중 폭언이 있기까지 전개된 상황, 즉 〈동아일보〉 기자와 전화로 오갔던 '논란'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시사저널〉 제612호 참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황이 아니었다. 기자들이 더 잘 알겠지만 브리핑 자리도 아니었다. 1차에서 폭탄주 석 잔에 맥주 두 잔이 돈 것이 전부다. 취중 폭언이 문제가 된 2차 자리에서는 술을 받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았다. 내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 다음날인 7월6일 취중 폭언이 〈조선일보〉 1면에 난 것을 보았을 때 심경이 어떠했는가?
나는 신문을 못 보았다. 집에 오는 〈조선일보〉 배달판을 끊은 지 오래됐다. 흐름을 알기 위해 전날 저녁에 가판을 구해 본다. 다음 날, 평상시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 밥을 지었다. 우리집은 파출부가 없다. 올려놓은 국이 끓고 있는데 〈문화일보〉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조선일보〉 보았느냐,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신문을 못 본 상태였지만, 황당했다. 전날 자리에 같이 있던 의원에게 전화로 확인해보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문열씨에게 폭언을 한 적은 있지만, 야당 총재에게 폭언한 적은 없었다. 실수한 내가 잘못이지만 허탈했다. 지식인들로 하여금 자기 본색을 드러내게 한 '곡학아세'의 본질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식인보다 정치인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정치권에도 문제가 있다. 언론이 취약할 때 외부 필진을 활용하듯이, 정치인들도 자기 소신을 밝히기 힘드니까 국가혁신위나 자문위 같은 기구를 통해 지식인을 동원해 자기 논리를 내세운다. 정치인들도 자기 논리를 확실히 세워야 한다.

이문열씨의 역사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내가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듯이 이문열씨가 시론과 같은 정치 공간에서 얘기한다면, 내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겠다. 그분은 1994년 12월1일자 〈조선일보〉 아침 논단 '때늦은 12·12 시비'에서 12·12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통성을 쌓아왔고, 아직도 1980년 헌법의 골격이 유지되었다면서 12·12 관련자 처벌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문열씨는 12·12 반란자들을 기소한 이후에도 그 논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두 번째, 1993년 3월7일자 〈조선일보〉 특별문화대담 '시대 변화'에서 그분은 대동아 공영권이 방법상 실패일 뿐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걸 제대로 했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대동아 공영권이 뭔가. 2천년 간 중국의 지배를 받아 왔던 일본이 한반도를 교량 삼아 중국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대동아 공영이 제대로 됐어야 한다니, 대체 역사 의식이 있는 것인가?

7월6일 아침, 원래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고 알려졌는데.
정신이 없었다. 아뜩했다. 나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많았던 분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지만, 이문열씨에 대해서도 사과한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두 가지 질문을 했듯이 논리로서는 얼마든지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언성이 높아지고 직선적이 되는가?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그러자고 술 마시는 것 아닌가. 술을 통해 솔직해지고 인격적으로 서로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지식인들이 정당에 가입해 정치적 의사를 밝히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런데 지면에 시론을 발표할 때는 자기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밝히지 않으면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평소 기자들을 멀리한다고 들었다. 언론관에 대해 듣고 싶다.
언론을 이용하려고 하지도 않고 언론에 잘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당 부대변인을 맡은 지 1주일쯤 되었을 때 당총재인 대통령께서 따로 불러 격려하면서, 추부대변인이 열심히 하면 언론도 옳게 평가할 것이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언론에게 잘 보이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당부하셨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느끼는 한계가 있을 텐데.
여성의 활동 공간이 적다. 판사 시절에도 여성 영역을 넓히기 위해 도전적으로 일했다. 여성도 조직에서 어떤 자리에 오르면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자기 할 일 끝났다고 집에 가버리면 누가 여성을 리더로 여기겠는가. 내 사생활을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도 분위기에 어울리곤 한다. 그게 정치하는 기본이다. 여자든 남자든 꽁생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술자리에 잘 어울리면 잘 어울린다고, 또 안 어울리면 안 어울린다고 지적하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있지 않은가?
있다. 나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던 것도 그런 것 아니냐. 기본적으로 나는 술자리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은 처세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 말하진 않는다. 자기가 만든 약점도 약점이지만, 사회가 자꾸 약점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약점이 된다. 나 여자니까 봐 달라고 하는 편에 서 본 적은 없다.

지식인에 대해 언급을 많이 했는데, 우리 시대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또 나보고 편 가르기 한다고 할 것 아닌가. 지식인은 분명 있다. 〈한겨레〉 칼럼에서 말했듯이 지식인 사회에서 '아름다운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여태까지 분열을 혼란이라고 공식화했었지만, 이제 지식인들이 자기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전에는 누가 양인지 늑대인지 모르지 않았는가.

술자리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폭언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럼 이총재를 어떻게 보는가?
그분의 경력, 여정을 보면 우리 사회의 최상층부다. 그건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이다. 그 혜택을 사회적 약자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정치인으로서 희망·비전을 만들어 주는 데는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 어제(19일)도 절차법을 무시하고 서울 국세청을 점거했다. 일부러 혼란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권 주자로 나서겠다는 정치인 대부분이 판사 출신이다. 일각에서 판사 출신들은 현실 감각이 부족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판사 출신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 표현대로 판사들은 '다락방 속의 엘리트'다. 법전을 통해서, 엘리트로서 세상의 껍데기만 아는 것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들은 온실에서 혜택만 받았다. 나는 판사 시절 시국 재판을 할 때 학생과 사회를 알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했다. 다락방 속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주무른다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 프로필 :
1958년 출생. 한양대 법대 졸. 광주고법판사. 제15·16대 국회의원. 현 민주당 지방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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