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저격병 '밀리칸주' 떴다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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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환자 78%, 1회 주사로 완치…

"3상 임상 시험 끝나야 믿을 수 있다" 신중론도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박종오씨(50·가명)에게 홀뮴166(방사성 동위원소)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1996년부터 되풀이해 나타나고 있는 간암을 이 물질로 퇴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벌써 다섯 번이나 홀뮴 치료를 받았는데,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박씨를 치료한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이종태 교수(진단방사선과)는 "홀뮴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홀뮴을 이용한 간암 치료는 획기적이다"라고 말했다.


밀리칸주 2회 투여, 86% 완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9년 한국의 간암 발병 인구는 9천8백78명이었다. 발생률은 전체 암 발생률의 12%를 차지해 위암(20%)·폐암(12.1%)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그만큼 간암은 꽤 험악하게 한국인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셈이다. 더 무서운 것은 수많은 치료법(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이 있지만 완치율이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 몇몇 과학자의 숨은 노력으로 많은 간암 환자가 몸에 칼 한 번 대지 않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원자력연구소 하나로연구이용단(단장 박경배 박사)과 동화약품이 홀뮴166과 키토산을 결합해, 간암 치료제 밀리칸주를 개발한 덕분이다. 연구를 시작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식품의약안전청(식약청)은 7월6일 이 약을 신약 3호로 승인했다. 식약청 장양욱 약사는 "다른 간암 치료약에 비해 안정성과 유효성이 매우 높아 신약으로 승인했다"라고 밝혔다. 홀뮴166을 개발한 박경배 박사는 "사람에게 해롭다고 소문난 방사선을 이용해 무언가 이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수년간 진행된 임상 실험에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고려대안암병원·가톨릭대강남성모병원·아주대병원이 참여했다. 2기 임상 시험을 마치고 공개된 발표문에는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이 많았다. 임상 시험에 참여하고 있는 이종태 교수에 따르면, 초기 간암 환자 60명에게 밀리칸주를 1회 주사한 결과 환자 78%의 몸에서 암세포가 사멸했다. 비공식적으로 2회 투여한 환자들에게서는 암세포가 86% 궤멸했다.


부작용 있으나 심각하지 않아


이처럼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지만 시술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원자로에서 홀뮴165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홀뮴166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게나 새우 껍질에서 채취한 고분자 키토산을 섞은 뒤, 이 물질을 주사기에 넣고 암세포에 직접 주사하면 끝난다. 이 과정에서 칼로 살을 째는 일은 없다. 주사 뒤에도 발열·통증 등의 부작용이 거의 없어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 물론 초음파나 컴퓨터 단층 촬영 등을 이용해 암세포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는 매우 신중한 작업이 병행된다.


홀뮴166이 암세포를 궤멸할 수 있는 것은 베타(β)선 덕이다. 박경배 박사는 베타선이 암을 녹인다면서 "베타선은 통상 2∼8mm를 투과하기 때문에, 암 덩어리가 크면 그만큼 주사를 여러 대 맞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개 종양의 크기가 2cm 이하면 한 부위에만 주사하고, 종양이 2∼3cm 크기이면 두 군데에 시술한다. 종양이 3cm 이상일 때에는 약물이 골고루 분포되도록 서너 곳에 투여한다.




주역들 : 밀리칸주를 만들고 임상 실험한 이종태 교수(연세대)·박경배 박사(원자력 연구소)·류제만 박사(동화약품·왼쪽부터).


문제는 경피 주사만으로는 큰 종양을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동화약품 중앙연구소 부소장 류제만 박사는 "더 큰 암 덩어리를 퇴치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종태 교수도 공식 발표를 할 수는 없지만, 최근 5cm와 7cm 크기의 암에 밀리칸주를 투여한 결과 "각각 90%·60%가 궤멸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홀뮴166이 다른 혈관으로 흘러들면 뜻밖에 방사능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임상 실험 중 7%나 되는 환자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류제만 박사는 임상 시험에서 혈소판 및 백혈구 감소 현상이 다소 나타났으나, 별다른 조처 없이 60일 뒤 정상 상태로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는 다른 간암 치료법에 비해 부작용이 훨씬 적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허용치가 넘으면 혈관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홀뮴166과 함께 투여하는 키토산은 그같은 돌발 상황에 대비한 '안전 그물'이다. 키토산은 산도(PH) 4 이하에서는 액체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면 중성인 체액과 만나 끈적끈적한 겔 상태가 된다. 이처럼 유동성이 적어진 키토산은 홀뮴166이 다른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렇다면 암세포에 투여한 홀뮴166의 약효는 얼마나 지속될까. 이종태 교수는 26.8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반감된다고 말했다. 그는 "48시간이 지나면 홀뮴의 효력은 거의 끝난 것으로 간주한다"라고 말했다. 이교수의 말대로라면 간암 치료 뒤 사흘 만에 퇴원할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생업 현장에서 바로 활동할 수도 있다.


전이된 간암은 치료 못해


간절히 치료약을 기다려온 간암 환자들에게 밀리칸주는 분명 기적 같은 희망의 싹이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특히 위암이나 대장암에서 전이된 간암 환자는 혜택을 못 받는다.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런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한 결과, 밀리칸주가 종양 속으로 전혀 스며들지 못했다. "간이 지나치게 섬유화한 바람에 홀뮴166은 물론 에탄올까지 흡수되지 않은 채 치솟아 올랐다"라고 이종태 박사는 말했다.


따라서 '적응 환자'는 한정되어 있다. B형·C형 바이러스로 인해 간질환을 앓다가 간암에 걸린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종양의 크기가 3cm 미만, 개수가 3개 미만일 때 가장 완치율이 높다. 그 외 간 기능이 떨어져 암 절제 수술을 못 받는 환자나, 큰 암을 색전 요법으로 치료하다가 주변에 작은 종양이 나타난 환자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직 임상 시험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인지, 일부 의사들은 밀리칸주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 전문의는 "3상 임상 시험(약이 시판되고 5년간 진행)을 통해 장기 생존율이 높아야 그 효과를 믿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삼성병원 백승운 교수(소화기내과)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다른 장기에 위험을 미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백교수는 간동맥 색전술이나 고주파 치료 때 밀리칸주를 함께 사용하면 효과를 높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시판, 약값 2백만원 넘어


밀리칸주의 전망은 밝다. 현재 과학자들은 종양 크기가 7cm 이상 되는 간암도 치료할 수 있도록 밀리칸주를 간동맥을 통해 종양에 주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다른 부작용을 찾는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연구로 작은 간암에 적용되고 있는 에탄올 요법 및 고주파 치료법과, 진행성 간암에 주로 사용되는 색전 요법을 대체할 수 있다면 밀리칸주의 효력과 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동화약품은 중국·일본·유럽 등에 기술 수출을 하면 연간 천만 달러 이상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도 한 가지 문제는 남는다. 2백만∼3백만 원 하는 약값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해법은 정부와 제약회사에 달렸다. 이런 숙제를 안고 밀리칸주는 8월 초 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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