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가는 곳에 '썰렁한 경기'는 없다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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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해설가들의 입담 진기명기/

신문선·허정무·차범근, 축구 3파전…홍수환, 말 실수로 곤욕


스포츠 해설가들은 스포츠 경기 관전에 맛을 더해 주는 조미료 같은 존재이다. 만약 스포츠 캐스터가 해설자 없이 혼자서 중계 방송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들의 존재 가치를 더욱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위성 스포츠와 스포츠 채널이 잇달아 생겨 스포츠 해설가층이 두터워졌다. 스포츠 해설가들은 크게 스타급과 무명, 경기인과 비경기인, 전속과 비전속으로 구분된다.


각 종목 스타 해설가를 꼽는다면, 축구는 신문선 허정무 차범근 이용수(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야구는 하일성 허구연 박노준, 농구는 신동파 최희암, 배구는 오관영, 레슬링은 파테루 아저씨로 더 유명한 김영준, 마라톤은 황영조, 복싱은 오일룡 홍수환 등이다.




신문선씨는 국제상사 직원이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장 갔다가 우연히 MBC 라디오 축구 해설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해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신씨의 해박한 축구 지식과 유려한 말솜씨는 MBC스포츠국과 아나운서실을 흔들어 놓았다. 신씨는 이후 98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을 앞두고 일본 TV가 기획한 한·일 양국의 '캐스터의 세계'코너에서 '꼴 꼴 ∼'하는 모습이 9시 뉴스에 반영되면서 뜨기 시작했다. 허정무와 차범근은 해설가로서가 아니라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기 때문에 스타 해설가로 명명된 경우이다.


야구의 하일성·허구연은 선수 출신이기는 하지만 해설가로 스타가 된 경우. 하일성씨는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선배인 오관영씨가 발탁했고, 허구연씨는 야구인 가운데 정통 법학도인 데다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해설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박노준씨도 아직은 선수 시절 명성 때문에 스타 해설가 소리를 듣는 경우.


농구의 신동파씨는 선수 시절 정통파 슈터로 이름을 날렸을 뿐 아니라, 해설가의 길로 들어선 뒤에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슈팅의 궤적만 보고도 골과 노골을 예상할 정도로 정확한 해설을 하고 있다. 무명 선수 출신인 최희암씨는 1993년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학을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스타가 되었다. 농구 해설가로는 '시청자들이 알아듣기 쉬운 해설'로 일가견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환일고등학교 교장으로 영전했지만, 배구의 오관영씨는 스포츠 해설의 진수(眞髓)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고 구수한 해설을 했다.


레슬링의 김영준씨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심권호 선수가 첫 번째 금메달을 딸 때 시도 때도 없이 "빠떼루를 줘야 함다" "머리 끄덩이를 잡아 댕겨야 함다"라고 해서 스타가 되었다. 당시 주택공사에 근무하던 김영준씨는 지금 경기대 교수로 변신해 있다. 마라톤의 황영조씨도 선수 시절 경험을 살린 생생한 해설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인기를 모았던 프로 복싱은 KBS에서 해설하던 오일룡씨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었다. 오일룡씨의 독특한 해설은 지금도 라디오 시사 프로가 흉내 낼 정도다. '4전5기'의 주인공 홍수환씨는 KBS에서 '화끈한' 해설을 하다가 설화(舌禍)를 겪은 후 지금은 인천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다.


해설가들은 짜인 각본 없이 최소 1시간에서 최대 5시간 정도를 떠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홍수환 씨는 경기 승패를 미리 예측한 바람에 곤욕을 치렀고, 신문선씨는 특정 지역을 가리켜 촌사람이라고 했다가 사과해야 했다.


프리랜서, 3∼4시간 생방송 출연해 10만원 수입


스포츠 해설가들은 선수 생활을 거치게 마련이다. 선수 경험이 없으면 아무래도 살아 있는 해설을 하기 어렵고, 보거나 듣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경험하지 않고도 전문가보다 더 깊이 있게 해설하는 사람도 있다. 복싱 해설가 한보영씨는 기자 출신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한보영씨에 필적할 만한 복싱 해설가는 없다. 한보영씨 대신에 전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씨와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씨가 복싱 해설을 했지만 모두 한씨를 능가하지 못했다. 인천방송에서 프로 야구 해설을 하고 있는 구경백씨는 학창 시절 야구를 약간 한 경험과 OB 베어스에서 오랫동안 행정을 맡아 본 경력을 더해 입체감 있는 해설로 팬을 많이 확보했다. 구경백씨는 기독교방송에서 라디오 해설을 했었는데 인천방송 간부가 그 해설을 듣고 발탁했다. 요즘 메이저 리그 야구 해설가로 각광받고 있는 송재우씨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갔다가 메이저 리그 경기를 2천여 게임을 본 뒤 전문가로 변신했다.


스포츠 해설가는 편의상 해설위원과 해설가로 나뉜다. 해설위원은 방송국이 정식으로 계약금을 주고 상당량의 연봉을 지급한다. 신문선·허정무·차범근·허구연·하일성·박노준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고액 수입이 보장되는 대신 방송국 사원처럼 스포츠국의 지시에 따라야(출연·출장 등) 하고, 다른 방송국의 해설은 물론 유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다. 그러나 해설가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계약금이나 연봉이 없이 경기가 있을 때만 나가 출연료를 받는다. 그 대신 교수나 회사 등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다른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다. 그러나 출연료는 고작 한 경기에 10만∼20만 원(출장비 제외)이어서 아르바이트 정도의 수입에 지나지 않는다. 스타 해설가 외에 거의 모든 해설가들은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한 방송국 축구 해설가는 "축구 한 경기를 해설하기 위해 과거 자료 뒤져보고 인터넷 살펴보고 현장에 나가서 선수와 감독 인터뷰도 해야 하고 적어도 3∼4시간은 초긴장 속에서 생방송을 해야 하는데 출연료가 10여만원인 것은 횡포에 가깝다"라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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