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뉴욕행이냐 시애틀행이냐
  • 민훈기(〈스포츠 조선〉로스앤젤레스 특파원) ()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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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쟁탈전 '불꽃' 튈 듯…애틀랜타·시카고도 유력 후보
올겨울 국내 야구팬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박찬호의 거취이다. 박찬호는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 리그 생활 만 6년을 채우고, 어떤 팀과도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는 '프리 에이전트' 자격을 얻었다.


박찬호가 프리 에이전트 시장의 최고 투수임은 이미 올해 초부터 공인된 사실이다. 올 시즌 후반기에 허리 통증으로 인한 체력 저하와 코칭 스태프와의 마찰로 기복이 심했지만, 지난 5년간 해마다 평균 15승씩 거둔 투수임을 감안하면 어느 팀에서도 대환영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연평균 2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봉과 본인의 팀 선호도이다.


투수진 붕괴한 다저스, 박찬호 쉽게 포기 못해




과연 어떤 팀들이 박찬호를 원하고, 박찬호에게 유리할까? 우선 박찬호를 스카우트하고 키워준 LA 다저스가 박찬호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는 것은 시기 상조다. 올해 에이스 케빈 브라운을 비롯한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투수 왕국'이라는 전통에 먹칠을 한 다저스 투수진에서 올 시즌 가장 뛰어난 공로자는 누가 뭐래도 박찬호다. 등판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타선 지원이 빈약한데도 15승을 거두어 막판까지 팀의 플레이오프 희망을 이어 갔다.


다저스는 브라운·애시비·드라이포트가 모두 수술대에 올라, 지난 5년간 연평균 15승에 네번이나 팀내 최다승을 거둔 박찬호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다소 관계가 불편해졌지만 박찬호로서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팀에 대한 보은과, 제2의 고향인 LA에 머무를 수 있다는 실리 때문에 다저스 잔류가 썩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 문제는 다저스가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원하는 만큼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여부다.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면 지난해까지 월드 시리즈를 3연패한 메이저 리그 대표 구단 뉴욕 양키스와, 올 시즌 최다승을 거둔 시애틀 매리너스를 선택할 수 있다. 사실 양키스는 투타에서 노쇠화가 두드러져, 정규 시즌에서는 보스턴의 몰락에 따른 어부지리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젊은 팀' 오클랜드에 끌려 다니는 경기를 했다. 재력은 메이저 리그 최고여서 프리 에이전트 최대어인 1루수 제이슨 지암비와 선발 투수 박찬호를 잡으면 물갈이가 가능해진다. 다만 예민한 박찬호가 악명 높기로 유명한 뉴욕의 언론과 팬들에게 시달리게 될 경우, 연착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 시즌 1백16승을 거둔 시애틀 매리너스는 박찬호가 귀국 인터뷰에서 '매리너스 같은 강팀에서 뛰고 싶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매리너스가 그를 잡을 가능성은 적다. 프레디 가르시아를 주축으로 젊은 투수 위주인 매리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기둥 투수가 될 수 있는 입증된 노장 에이스급'이 필요한데, 박찬호의 이력서와는 조금 어긋난다. 1백41 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최고를 기록한 2루수 브레트 분과 15승 투수 아론 실리가 프리 에이전트가 되는데, 실리를 포기한다면 박찬호 쟁탈전에 뛰어들 가능성은 있다. 만약 이적한다면 박찬호에게는 유리할 것 같다. 소유주가 일본 회사 닌텐도여서 인종 차별이 적기 때문이다.


그밖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뉴욕 메츠·시카고 컵스·텍사스 레인저스도 박찬호가 이적할 수 있는 팀으로 꼽힌다. 애틀랜타는 정규 시즌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간신히 제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부동의 에이스인 우완 그레그 매덕스(17승)와 좌완 톰 글래빈(16승)이 모두 30대 중반을 넘겼다. 거기에다 차세대 에이스로 지목되던 케빈 밀우드(7승7패)가 부진해 박찬호를 점찍을 가능성도 있다. 넉넉한 재정과 보비 콕스 감독의 박찬호 사랑, 그리고 날로 번창하고 있는 애틀랜타의 한인 사회도 플러스 요인이다.


박찬호와 각별한 관계인 뉴욕 메츠의 보비 발렌타인 감독은 올 시즌 에이스가 없는 어려움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외야수의 펀치력 부재도 문제로 지적되어, 다저스가 트레이드를 고려하는 게리 셰필드와 박찬호를 동시에 잡는다면 내셔널 리그 챔피언 자리에 재도전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못지 않은 교민의 열성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공동 구단주 두 사람이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려 박찬호에게 거액을 투자할지는 미지수이다.


올해도 플레이오프 도전에 실패한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 리그에서 투수력이 네 번째로 좋다. 거기에 정상급 투수를 한 사람 보강한다는 것은 시즌 막바지의 좌절을 환희로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박찬호는 컵스와의 역대 대결에서 항상 인상적인 승부를 펼쳐 왔다. 덕분에 컵스 구단의 눈길도 호의적이다. 박찬호 본인이 시카고를 좋아하고 교민 사회도 비교적 넓어 끝까지 유력 후보가 될 전망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텍사스 레인저스는 박찬호에게 그리 매력적인 팀이 아니다. 클리블랜드는 한국인 박찬호가 가기에는 너무 외지이며, 텍사스는 교민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40℃를 넘는 날씨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다. 양팀 모두 투수력이 달리는 데다, 재정이 탄탄해 박찬호를 잡을 조건은 갖추고 있다.


클리블랜드의 타격은 올해 아메리칸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막강하지만, 늘 강력한 선발 투수가 없어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현재 에이스인 바톨로 콜론(14승12패)은 기복이 너무 심하고, 루키 사바티아가 17승을 거두는 활약을 펼쳤지만 아직 신인이어서 숙원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강력한 선발 투수 영입이 필수 조건이다.


빠르면 12월 중순 '윈터 미팅'에서 진로 결정


텍사스 레인저스도 아메리칸 리그 3위 타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 꼴찌인 투수력 때문에 쩔쩔 매고 있다. 2000년에 10년간 2억5천2백만 달러를 주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한 데서 보듯 과감하게 투자하기 때문에, 프리 에이전트가 되는 에이스 릭 헬링(12승11패)을 포기하고, 박찬호에게 투자할 가능성은 있다.


월드 시리즈가 끝나는 11월 초 박찬호가 프리 에이전트 등록을 하면 첫 2주 간은 다저스가 독점 협상권을 갖고, 그 뒤 모든 팀이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스콧 보라스의 스타일로 볼 때 박찬호의 계약은 빨라야 12월 중순 '윈터 미팅'이 열리는 보스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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