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82년째 건강 해로' 이훈요 · 김봉금 부부의 비결
  • 청원·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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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살아봐, 아흔도 청춘이지"/고기 안먹고 화 안내
인간이라는 종에게 노화란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늙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 결말은 불행하다. 가난과 고독, 질병만이 있을 뿐이다. 불행을 피하는 길은 한 가지이다.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건강은 더욱 그렇다. 82년째 해로하는 이훈요(92)·김봉금(95·충북 청원군 강내면 탑연리) 부부를 만나 반듯하게 오래 사는 비결을 들어 보았다.




노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불안했다. 귀가 어둡거나 눈이 침침해 대화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부부가 살고 있는 강생한의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불안은 새떼처럼 달아났다.


이훈요옹은 침침한 방안에 목침을 베고 누워 있었다. 그는 귀가 어두운지 사람이 들어서는 줄도 몰랐다. 이옹을 깨우려고 '계십니까'하고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가 나달거리는 고서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셋째 아들 성규씨(66)가 다른 방에서 건너왔다. 아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망백(望百·91세)을 넘긴 나이에 그 흔한 돋보기 안경조차 안 쓰고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를 건네며 얼굴부터 살폈다. 곳곳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지만 안색은 좋았다. 아들이 큰 목소리로 손님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자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먼길 오느라 수고했소"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탁했지만 반듯한 말투였다. 그가 읽던 책은 콩알만한 한자가 빼곡이 적혀 있는 〈험방신편(驗方新編)〉이라는 중국 의서였다. 그는 아직도 현직 한의사(76쪽 상자 기사 참조)이기 때문에 틈만 나면 의서를 들여다본다고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옆에 앉았던 둘째딸 단규씨(63)가 대신 나섰다. "아버지는 뭐든 적게 드시고, 채식을 좋아한다." 이옹이 느릿한 말투로 보충 설명을 했다. "의서에 보면 아침에 많이 먹고, 점심에는 덜 먹고, 저녁에는 더 덜 먹으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대로 한 것밖에는 없다." 소식(小食)을 화제로 입을 뗀 이옹은, 곶감 빼주듯 건강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 엄격한 식생활/주식은 '장고기'




이옹은 평생 엄격한 식생활을 해왔다. 평생 돼지고기·닭고기·개고기를 입에 대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내 체질은 소음인이다. 그래서 국수는 좋아하지만, 풍을 일으킬 수 있는 고기는 안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맵고 짠 음식과 술도 멀리했다. 단규씨가 "매끼마다 국물이 있어야 하고, 생선은 가끔 청어만 드신다"라고 거들었다.


이옹이 평소 가장 맛있게 먹는 것은 콩으로 만든 음식이다. 셋째딸 상규씨(60)가 어렸을 적 얘기다. 하루는 이씨가 자녀들에게 '어서 와서 고기 먹으라'고 소리쳤다. 모두들 침을 흘리며 달려갔더니 밥상 위에는 된장국만 푸짐했다. 자식들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이씨가 말했다. "장고기다. 맛도 좋고 몸에 좋으니 많이 먹어라." 요즘도 이옹의 밥상에는 1년 내내 장고기가 올라온다. 콩장·두부·된장국·청국장으로 모양을 바꾼 채. 그는 그 가운데 특히 청국장을 즐긴다.


버섯도 그가 하루도 안 빠지고 즐기는 음식이다. 송이·석이·표고·느타리 등 가리지 않고 먹는다. 물은 둥굴레와 구기자를 넣고 끓인 것을 주로 마신다. 그에 따르면, 둥굴레는 오장육부를 편하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무 이파리로 만든 겉절이는 이옹이 애호하는 별미다. 무씨를 뿌리면 며칠 뒤 떡잎과 함께 이파리 2개가 나오는데, 그것을 식초와 갖은 양념에 버무려 먹는다.


과일도 매일 챙겨서 베어 먹는다. 식사 뒤 후식으로 즐기는데, 토마토를 제일 선호한다. 오디(뽕나무 열매)와 산딸기는 여름철 간식이다. 한 번에 몇 kg씩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놓고 틈틈이 먹는다. 두 열매 모두 신장을 보하고 머리를 검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 가벼운 운동/틈나는 대로 투닥투닥




따로 운동을 해본 적은 없다. 대신 평생 산책을 즐겼다. 망백이 되기 전에는 매일 저녁 밥 숟가락 놓고 2만 보 넘게 산책했다. 특별한 노선이 있지는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맨손체조와 안마는 지금도 열심히 하는, 운동 아닌 운동이다. 아내 김봉금씨와 함께 주먹을 쥔 채 틈나는 대로 무릎·가슴·팔을 투닥투닥 두들기고, 벽에 기대어 허리를 펴는 식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눈운동도 자주 하는 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시로 손바닥을 이용해 눈을 마사지한다. 열이 날 때쯤 멈추면 되는데, 그 덕에 '아직도 환자들에게 침을 놓고, 의서도 거뜬히 읽을 수 있다'고 한다.


■ 절제된 성생활/한 달에 두 번 '합방'


이옹에 따르면, 성이 문란한 남성은 오래 못산다. 성관계가 잦으면 신장이 약해진다. 그리고 호르몬이 메마른다. 그는 "차에 기름이 없으면 굴러갈 수 없듯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활기를 잃고, 뼛속이 비어 골다공증에 걸리기 쉽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한 달에 두 번 정도 합방하며 성생활을 절제해 왔다고 소개했다.


■ 특별한 습관들/1년에 한번 '뽕나무 목욕'




노부부가 20년 넘게 습관처럼 치르는 행사가 있다. 음력 9월23일에 뽕잎을 삶아서 그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이다. 이옹은 〈험방신편〉에 나와 있는 비방이라며 "눈을 씻으면 눈이 좋아지고, 몸을 씻으면 잔병이 준다"라고 말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출입하고, 밤에는 절대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것도 오래된 습관이다. 틈만 나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몸과 마음을 씻는 일을 젊어서부터 해왔다. 요즘은 기력이 달려 그의 생일이 낀 음력 3월과, 아내의 생일이 낀 음력 9월에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 별난 가정 생활/아내에게 평생 존대말


노부부는 신부가 열세 살, 신랑이 열 살 때 결혼했다. 82년간 살아오면서 두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부부 싸움을 안 했다. 그만큼 금실이 좋았다. 비결이 있다면 존대말과 인내였다. 자식들에 따르면, 이옹은 평생 아내에게 말을 높였다. 아이들(5남3녀) 낳고 키운 고생을 생각하면 화를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대신 화가 나면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고 회고했다. 자녀들에게 그 흔한 '놈'이나 '년' 따위 욕을 안한 것도 이옹이 평생 지킨 생활 지침이었다. 체벌할 때는 꼭 회초리를 사용해 종아리를 때렸다. 자녀를 세워두고 회초리를 찾는 동안, 격노한 감정이 사그라지기를 바라는 심정에서였다.




교회에 다닌 적은 없지만, 이옹은 '왼손이 모르게 오른손으로 하라'는 성경 구절을 잘 외우고 있었다. 그만큼 가족 몰래 불우 이웃을 많이 도왔다. 명절 때마다 쌀 몇 가마씩 내놓는 것은 연례 행사이다.


한번은 아내 김봉금씨가 면에 나갔더니 모르는 사람이 달려와 '고맙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남편 이씨가 쌀을 면사무소에다 기증했고, 면에서 그 쌀로 떡을 만들어 불우 이웃에 돌렸는데 그 사람이 그 떡을 받은 것이었다.


■ 결말/겹경사가 열리던 날


이옹의 집안은 장수 집안은 아니다. 두 형님은 예순을 넘긴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그러나 고기를 멀리하고 단아하게 살아온 덕인지 이옹의 피붙이들은 잔병치레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다. 큰아들과 큰딸의 나이가 각각 일흔다섯·일흔하나. 막내인 아들은 올해 쉰한 살이 되었다.


음력 9월9일(10월25일) 이옹 부부는 자녀들과 100 명이 넘는 손주와 함께 큰아들이 사는 충북 진천에 모일 예정이다. 아내 김봉금씨의 아흔다섯 번째 생일인 데다, 결혼 82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노부부는 얼마나 더 해로하고 싶을까. 그는 겸손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지금도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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