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잠수함 김병현의 '뉴욕 습격 사건'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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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최고 언더핸드스로 투수 김병현,
뉴욕 양키스 정벌 나서
김병현 선수(22)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김병현은 포스트 시즌이 열리기 전만 해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뉴욕 양키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 여덟 팀 마무리 투수 가운데 일곱 번째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디비전 시리즈·챔피언십 시리즈를 거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김병현은 포스트 시즌 네 경기에 나가 6과 3분의1 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3세이브를 올려 팀을 월드 시리즈에 올려놓으며 특급 마무리 대열에 올랐다. 이제 김병현은 메이저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인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와 동격으로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페넌트 레이스와 포스트 시즌 경기 비중은 하늘과 땅 차이다. 페넌트 레이스는 30개 팀이 하루 최대 열다섯 경기, 적어도 대여섯 경기가 한꺼번에 열리기 때문에 팀의 연고 지역 방송이나 신문만 크게 다룬다. 그래서 타자는 만루 홈런이나 사이클링 히트를, 투수는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 경기를 하지 않으면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가 쉽지 않다. 박찬호가 인터뷰할 때마다 월드 시리즈에서 던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은 다르다. 포스트 시즌에는 하루에 많아야 네 경기가 열린다. 더구나 챔피언십 시리즈는 두 경기뿐이고, 지금 한창 진행중인 월드 시리즈는 단 한 경기가 모든 미국인의 관심 속에 열리기 때문에 인상적인 플레이를 하면 전국적인 스타가 된다. 김병현이 바로 그 경우다. 그는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위력적인 피칭을 했다. 더구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은 전국에 중계 방송되었다.


이 경기에서 보브 브렌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은 선발 투수 랜디 존슨을 7회에 끌어내리고 8회에 김병현을 올렸다. 당시 스코어는 3 대 2, 존슨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김병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2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완벽한 세이브를 따냈다. 당시 경기를 지켜 본 뉴욕 메츠의 보비 발렌타인 감독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김병현이다"라고 말했다. 김병현의 피칭이 미국 야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이다.


최연소·최단신 마무리 투수


김병현은 여러 모로 화제가 될 만한 소지를 갖고 있다. 우선 나이가 어리고 체격이 작다. 만 스물두 살은 메이저 리그 투수 가운데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 그리고 키 176cm는 메이저 리그 마무리 투수 가운데 가장 작다. 또한 투구 폼이 특이하다. 김병현은 전형적인 잠수함 투수다.


메이저 리그에는 잠수함 투수가 20여 명 있다. 대표적인 투수가 신시내티 레즈의 설리 반 투수와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크 베나트로 투수로 모두 중간 계투로 활약하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원포인트 릴리프 투수 마이크 마이어스는 왼손 투수인데도 사이드 암으로 던진다. 현재 메이저 리그에 있는 잠수함 투수들은 대부분 중간 계투나 원포인트 릴리프 또는 셋업맨이다. 이는 마무리 전문인 김병현 선수가 메이저 리그 최고의 잠수함 투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설리 반처럼 김병현보다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도 있고, 싱커·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더 예리하게 구사하는 투수도 있다. 그러나 공 끝의 변화만큼은 김병현을 따를 투수가 없다. 김병현의 공은 평균 시속 141km에 그치고, 변화구도 다른 잠수함 투수와 마찬가지로 슬라이더와 싱커 등을 섞어 던질 뿐이다(체인지업은 가끔 던진다). 그러나 모든 볼의 공 끝이 마치 뱀처럼 휘어져 들어간다. 타자가 볼 때는 도무지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다. 올 시즌 김병현에게 8타수 무안타(5삼진)에 그친 메이저 리그의 대표적인 강타자 새미 소사(시카고 컵스)는 "김병현의 공은 마치 마구 같다. 분명히 타이밍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배트를 휘두르면 헛스윙하기 일쑤다. 나중에 비디오 테이프를 보니까 배트와 볼이 10cm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4년 계약에 2천만 달러 받을 수도


메이저 리그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잠수함 투수가 '희귀 동물'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데니스 에커슬리 선수와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뛰던 벤 키스베리 선수가 대표적인 잠수함 투수였다. 데니스 에커슬리는 199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 리그 최고의 슬라이더를 자랑하며 특급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다. 벤 키스베리는 타자 앞에서 예리하게 떨어지는 싱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잠수함 투수의 공통점은 선발 투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잠수함 투수의 공은 한 바퀴 돌고 나면 타자의 눈에 익어 공략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병현이 선발 투수로 전향하기를 원해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팀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병현은 포스트 시즌에서의 맹활약으로 몸값이 폭등하게 될지 모른다. 김병현은 내년 시즌까지 메이저 리그 최소 연봉인 20만5천 달러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 연봉이 70만 달러를 넘는 것은 계약금 2백25만 달러를 4년 간 나누어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 시리즈가 끝난 이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측이 내년 시즌부터 장기 계약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4년 간 1천5백만∼2천만 달러 사이에서 연봉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현의 메이저 리그 정복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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