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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선거제도야!”…연동형 비례대표제 급부상

“기존 선거제도 개편해 유권자 표심 제대로 반영해야”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0(Tue) 17:33:00 | 1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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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22일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노태우, 같은 해 12월 전두환,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구속된 4번째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몸을 던졌다. 역대 전직 대통령의 비참한 말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권을 행사해 개헌을 주도하는 것도 개헌을 바라는 국민 여론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내지 정부형태라고 말한다.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을 주요 이슈라 여겨왔다. 그런데 개헌 프레임에 변화가 생겼다. 문 대통령은 4년 연임제를 택했고, 야권은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를 들고나왔다. 현 여권은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 막상 개헌 정국이 도래하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키를 틀었다. 정작 4년 중임제를 요구하던 보수 정당에선 반대로 분권을 얘기하고 있다. 단순히 여야가 뒤바뀐 상황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형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국회에 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고자 하면 국회로 권력을 일부 이전해야 하는데,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불신은 더욱 크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고 싶었지만, 자칫 국회 권한을 키웠다간 국민들이 개헌안을 부결시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야권이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국회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는 등 국민들에게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국회 불신을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을 내놔야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분리해서 논의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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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지키는 거대 양당의 담합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한국갤럽이 3월28일 공개한 ‘주요 기관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 신뢰도는 15%였다. 조사 대상 중 최하위다. 행정부(41%)와의 비교뿐만 아니라, 개혁 1순위로 꼽히는 검찰(31%)에 비해서도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2017년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전국의 만 19세부터 69세 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중앙정부 부처, 국회, 법원, 검찰 등 17개 기관에 대해 맡은 일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지 조사한 결과였다. 3월22일 통계청이 발간한 ‘2017년 한국의 사회지표’ 결과에서도 국회는 신뢰도 4점 만점에 1.8점을 기록했다. 조사 대상 중 유일하게 1점대를 기록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발목을 잡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대통령 개헌안’ 초안을 만든 국민헌법자문특위는 몇 가지 쟁점 사안의 여론 수렴을 위해 3월초에 시민토론회를 열었다. 4개 권역별로 시민 200명씩을 뽑아 기본 자료를 제공하고 한나절 토론을 진행한 뒤 토론 전후의 의견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정책 결정을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열었던 것과 비슷한 숙의형 토론 방식이었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과 ‘대통령의 국무총리 임명권 유지’(국회의 총리 선출권 반대)라는 대통령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여기서 결정됐다.

 

토론을 전후한 시민들의 의견 변화를 살펴보니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됐다. 국회의원 임기 중에 국민이 그 직을 중단시킬 수 있는 ‘국민소환제’에 대해선 토론 전과 후 모두 찬성 의견이 70%를 넘었다. 반면에 국무총리 선임 방식에 대해선, 자유한국당이 요구하는 ‘국회의 총리 선출’에 반대하는 의견이 토론 전보다 토론 후에 월등히 높아졌다. 토론 전엔 48.3%의 시민이 ‘국회의 총리 선출’에 반대했다. 하지만 두 시간 토론 이후엔 그 비율이 68.3%까지 솟았다.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유지하는 게 국회에 권력을 넘기는 것보다 낫다는 시민들의 판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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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력 분산 걸림돌은 국회?

 

대립적인 정치 문화, 그로 인한 정치 불신을 형성했던 근본 원인은 소선거구를 기초로 하는 현행 선거구제다. 소선거구제는 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 후보자 한 명만 당선되는 구조다. 1위를 제외한 다른 후보에게 던진 유권자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된다. 득표율과 상관없이 1등만 선출되는 소선거구제에선 ‘상대방은 최악(最惡), 나는 차악(次惡)’이라는 네거티브 프레임만으로도 당선이 가능하다.

 

소선거구제는 거대 정당의 과대대표 현상을 만든다. 20대 총선 당시 호남·영남 지역에서 거대 정당이 과대대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지역에서 얻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일치 현상이 극심하게 발생했다. 호남 지역에선 국민의당이 46.08%를 득표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의석은 28석 중 23석(82%)을 차지했다. 정의당은 6.85%를 득표해 새누리당 득표율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남 지역에서 의석 1석도 가져가지 못한 반면 새누리당은 2석을 확보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영남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물론 모든 선거제도에선 사표(死票)가 일부분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 제도하에서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역대 총선에서 낙선자에게 투표한 투표수는 각각 17대 1062만9856(49.99%), 18대 810만5059(47.09), 19대 1012만550(46.44%)에 달했다. 20대 총선에선 1225만8430(50.32%)표의 사표가 발생, 그 비율이 과반을 넘기는 일도 발생했다. 유권자 의사의 절반 이상이 그대로 ‘폐기’되는 셈이다.

 

20대 총선에서 소선거구제로 가장 이득을 본 정당은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총 888만1369표를 득표해 전체 득표율 대비 37%를 얻었는데, 이 비율보다 17석이나 더 많은 110명의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했다. 반면 원내 3당을 차지한 국민의당은 지역구 득표율 14.9%(356만5451표)와 대비해 12석 적은 25명의 지역구 의원을 내는 데 그쳤다. 정당 득표율 대비 의석비율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국민의당은 전국 득표율 26.7%로 민주당의 25.54%보다 높았지만 전체 의석비율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정치학회와 선거제도 관련 공동세미나를 진행한 이내영 국회입법조사처장은 “단순다수제에 기반한 선거제도는 여전히 비례성 등의 측면에서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데 한계를 갖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현재의 선거제도로는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반성이 제기됐다”며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표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표성의 문제도 지적된다. 선거구별 다수 후보자의 경쟁으로 30%대 초반 득표율로 당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투표율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유권자 20% 정도의 지지만 얻고 당선된 것이다. 극단적으로 2000년 총선에선 25.2%의 득표율로 당선된 사례도 있었다. 당시 투표율은 64.5%로 해당 지역구 유권자 80%의 의사는 대표되지 못한 셈이다. 비례대표제는 이 같은 의석배분 방식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사표로 계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권자의 표심이 왜곡될 수 있다. 소선거구제 아래선 사표방지 심리를 노린 선거전략이 난무하게 된다. 1~2위를 달리는 후보는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후보를 지지하려는 유권자들의 사표방지 심리를 자극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다른 후보를 지지하려던 유권자들은 흔들렸다. 1~2위 간 득표 차이가 크지 않을 땐 제3후보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단적인 사례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표는 완주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정책보단 후보자 검증에 주력하는 네거티브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1등이 되기 위해선 정책 선거보단 상대 후보를 흠집 내 부동층(浮動層)을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런 네거티브는 꼭 상대 진영만을 겨냥하진 않는다. 특정 정당의 지지율이 높은 지역에선 해당 정당 후보로 출마만 해도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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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가 死票로 전락하는 ‘승자독식 구조’

 

이른바 ‘삼김(三金·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절’에 ‘말뚝만 박아도 당선된다’는 말로 표현되던 지역주의는 여전히 한국 정치를 좌우하고 있다. 그동안 영남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 정당들이 거대 양당을 형성해 왔다. 수도권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한 상황에서 승자독식 구조는 지역주의를 고착화시켰다.

 

선관위는 현행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혼합형 선거구제의 등가성 왜곡을 개선하기 위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 6개 권역별 연동형비례제’를 제안했다. 또 지역구 의원을 당시 246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54명에서 100명으로 늘리자고 했다. 당시 선거구제 협상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연동형비례제에 찬성했지만, 과반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결국 도입이 무산됐다. 심지어 여야는 선관위 제안에 역행하는 협상 결과를 내놨다. 현행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혼합형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역구 의원을 253명으로 늘리고 비례대표는 47명으로 줄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는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명시했다. 현재의 선거제도로는 지역구도를 완화하지 못하고, 과도한 사표로 인해 정당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의 괴리를 극복할 수 없기에 새로운 선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구제 개편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셈이다. 여야 원내대표도 4대 개헌 의제에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포함시켰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심상정 후보가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승민 후보 또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여야 각 당 모두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를 고칠 필요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만 변화시켜도 굉장히 큰 변화가 올 거라고 본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원내 1당으로서 소선거구제의 혜택을 보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전향적인 입장이다. 한국당도 비례성 강화를 조건으로 ‘야4당 개헌 정책협의체’를 제안했다. 한국당은 다른 조항을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야4당 개헌안을 만들어 정부 여당을 상대로 ‘분권대통령-책임총리’ 개헌을 관철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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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변화 발목 잡는 소선거구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 중소 야당은 선거구제 개편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선거의 비례성 원칙이 강조되면 다당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공동 원내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을 구성하면서 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3당과 함께 국회 개헌 논의에 참여했다.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선거구제 개편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게 되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소속 의원들을 설득해 합의해 낼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의회 선거구 문제 논의 과정에선 양당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 3월20일 서울시의회는 선거구 획정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의회 입구는 경찰의 통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은 ‘밥그릇’을 철저히 지켰다.자신들에게 불리한 3~4인 선거구를 애초 35곳에서 0곳으로 없애고, 대부분을 2인 선거구제로 바꿨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양당 또는 다수당의 기득권 프레임은 어김없이 작동했다. 경남은 4인 선거구 14곳, 3인 32곳, 2인 38곳으로 만들었지만 다수당인 한국당이 제동을 걸어 4인 4곳, 3인 28곳으로 대폭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양당 중앙당은 사실상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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