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인간 열린당은 장기 내어주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7.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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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개편 ‘태풍의 눈’이 된 민주당 한화갑 대표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모처럼 크게 웃었다. 1백30여 명의 의원을 거느린 집권 여당 대표에서 원내 교섭 단체도 못 만드는 미니 정당 대표로 급전직하한 뒤 마음고생이 심했던 터다. 7·26 재·보선 내내 “민주당이 정계 개편의 주역이 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조순형 당선의 견인차 역할을 한 그를 7월27일 당사에서 만났다.

이번 성북 을 승리를 어떻게 자평하나?
민주당이 수도권에 진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수도권 진출은 과거 민주당 전통적 지지자들이 다시 결집했음을 뜻한다. 이제 민주당이 정계 개편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할 능력을 부여받았다.

조순형 당선자는 탄핵의 정당성을 확인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시대 상황이 변했다 해도 조당선자가 탄핵을 주도한 분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탄핵 얘기를 먼저 꺼낸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이 여전히 의원 12명을 가진 ‘불임 정당’이라고 평가절하하는데.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의원 수 가지고 따질 상황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얼마나 많이 지지를 받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원 수로는 일등이지만, 국민의 지지로 볼 때는 이미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산소 호흡기를 떼면 연명이 어려운 집단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정계 개편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다소 과장되게 들린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지지를 잃었기 때문에 다시 등장할 수 없고, 한나라당 독무대가 되면 그건 일당독재이다. 따라서 그걸 견제할 세력은 민주당뿐이다. 한국 정치를 회생시키려면 열린당이 이제는 장기이식을 (민주당에) 해주어야 한다. 그런 각오로 판을 다시 짜는 데 협력해야 한다.

정대철 고문과 만나서 나눈 얘기를 보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제3의 지대로 나와 세력을 합하자는 의미던데, 맞는가?
정고문과 얘기할 때 내가 내건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민주당의 정통성과 역사성, 정체성이 승계되는 한 민주당의 당명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거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분당 주도 세력은 여전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같이 할 수도 없지만, 같이 하려고도 안 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어떤 사람은 ‘정치박물관’에 모셔야 할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새로운 정치 변혁기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려고 하니 못마땅한 것이다.

그 자체가 노대통령의 뺄셈 정치식 논리 아닌가?
절대로 아니다. 이건 감성이 아니라 원칙이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해서는 결속력이 떨어지고 국민들의 지지도 못 받는다. 세상에는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세를 좇는 사람이 있다. 분당 세력은 대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보따리 싸들고 어디 세가 강한가 그런 것만 노리는 사람들은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기 희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공존하기 어렵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열린우리당에 얼마나 되나?
너무 세부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일의 성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막상 그 일에 부닥치게 되면 내 원칙만 내세울 게 아니라 당내 토론에 부쳐야 한다.

정계 개편 움직임이 본격화할 시점이 언제라고 보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런데 우리가 접촉한 바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먼저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따라서 결단을 내리려면 계기가 와야 한다.

그 계기가 무엇인가?
나는 노대통령이 탈당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대철 고문은 대통령이 탈당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

열린우리당의 협상 창구는 지도부가 되나?
지도부는 리더십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당과 미래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개별 접촉이나 그룹 단위로 접촉하며 의견을 공유해갈 것이다.

열린우리당 중진들이 움직일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보나?
민주당의 의욕은 강한데 낙관만은 할 수 없다. 우리가 이겼다 해도 내일모레 당장 정계개편이 되는 것도, 내일모레 누가 민주당에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계기를 만들 것인지 고민 중이다.

민주당의 유인력보다 열린우리당 내부의 원심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민주당의 역할이나 열린우리당 내부의 움직임이나 둘 다 변수다. 다만 이번에 성북 을에서 승리해 대세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갈 사람은 없지만,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으로 올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광주, 전남·북에서 ‘좋아, 이 다음에 느그들 국회의원 하려면 갈 데가 워디여’ 이걸 보여준 것이다. 이건 대세다. 분당할 때 민주당더러 부패 세력, 지역당이라고 했다. 그런데 분당의 주역이 전부 전라도 사람들이다. 정동영·장영달·이강래·신기남·천정배·정동채… 신기남(서울)을 빼면 전부 전라도에 선거구가 있다. 자기도 지역구가 전라도면서 어떻게 민주당을 지역당이라고 할 수 있나.

호남 의원들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지역 의원들도 영향을 받겠는가?
전에는 수도권 여론이 지방에 영향을 미쳤는데, 민주당에 관한 한 전라도 여론이 바로 중앙에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전라도라는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 의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권주자도 잘 받아야 30% 인데, 민주당 자산이 지금 수도권에만 30% 있다는 얘기 아닌가? 2008년 총선에서는 그것이 다 민주당 지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산실이었던 호남이 이처럼 노대통령을 버리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호남이 노대통령을 버린 게 아니다. 노대통령이 민심대로 일을 안 해준 것이지, 그 민심이 노대통령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노대통령은 “호남 사람들은 내가 예뻐서가 아니라 이회창 싫어서 지지한 것이다” “호남당 소리 듣기 싫어서 분당한 것이다”라고 하지 않나. 그것도 모자라 한나라당에 권력을 다 줄 테니 연정을 하자고 했다. 그 얘기는 결국 다음 정권을 한나라당에 주겠다는 건데, 그 이유는 현 상태에서 임기가 끝나면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환영을 못 받기 때문에, 영남에 권력을 주고 영남에 가서 환영받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자기를 위해서 연정을 하자는 것이지 국가를 위해서 하자는 뜻은 아니다.

최근 당에 복귀한 천정배 전 장관이 ‘한화갑 대표를 껴안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라고 일종의 구애를 보냈다.
파이를 자기들끼리 먹겠다고 하더니, 자기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못 먹게 해놓고는 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인가. 나도 5년 여당을 해본 사람인데, 한때는 우리 세상인 것처럼 ‘실세’라고들 했는데, 지금 얼마나 초라해졌나. 이게 권력의 사이클이다.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알겠는데) 결코 ‘노’를 둘러싼 직계 세력에서 후계자는 못 나온다.

고건 전 총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명백하다. 민주당에 들어오시든지, 민주당과 연대해서 좋은 정치를 만들어가든지. 그러나 고 전 총리 산하에 민주당이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데, 내년 대선에서 반(反)한나라당 세력이 또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승리는 쟁취하려고 노력했을 때 다가오는 것이지, 앉아서 기다리면 절대 오지 않는다. 유·불리를 떠나서 주체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를 반대하느냐보다 누가 더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을 것인가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반 한나라당’이라기보다 ‘비 한나라당’이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

한대표와 조순형 당선자가 과거 생각을 달리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내분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어느 집단이나 대립도 있고 심하면 반목도 생기는 것이다. 당내 의원 12명이 다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똑같이 가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조순형 당선자가 한대표보다 선수도 높고 나이도 많아서, 당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데.
먹을 것이 많아야 내 몫도 많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조순형 아니면 당권 도전자 없겠나. 내가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민주당을 살려내야 한다고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선 자금을 이유로 노무현·정동영·김근태는 다 놔두고 나만 기소했다. 나를 죽이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이렇게 죽느니, 끝까지 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하나는 내가 전라도 태생이 아니었다면 이 짓 안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제 구실 못하면 전라도 사람은 공무원부터 서럽다. 전라북도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했지만 열린우리당 덕 봤다고 하는 사람 없다.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내 자식을 길러야 하고, 그 때문에 내가 총대를 멘 것이다 내가 무슨 대통령되겠다고, 대표되겠다고 이 짓 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의원직 상실로 나올 경우 민주당 로드맵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닌가?
5·31 지방선거 때 ‘내일이라도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한화갑이 불쌍하다 그러지 말고 내 시체를 넘고 가서 끝까지 승리하라’고 유세하고 다녔다. 성북 을 유세 때도 ‘내가 내일 끝나더라도 민주당에 열 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조순형 당선되면 뭐가 걱정이냐’고 했다. 하나도 두렵지 않다. 노무현 정부 임기 끝나면 그때부터 공소시효 시작되니까 검찰에서 기소 안 하면 내가 고발하겠다. 내가 처벌받으면 노무현도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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