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은 제 얼굴을 믿지 않는다?
  • 서수란 · 황춘화 인턴기자 ()
  • 승인 2006.08.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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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미용 성형수술 빈도 급격히 상승…‘수험생 성형’은 옛말, 주로 고2 때 시술

 
17세 발랄한 여고생 수경(유다인 분)은 여름 방학을 맞아 성형외과를 찾는다. 수경은 몰라보게 예뻐지지만 얼굴이 칼에 베이고 손발이 묶이는 환영을 본다. 결국 자신의 얼굴을 칼로 도려내며 목숨을 끊는다. 이 섬뜩한 이야기는 최근 개봉한 영화 <신데렐라>의 줄거리 중 일부분. 10대들의 성형수술에 대한 열망을 스크린에 담았다.

최근 3년 동안 10대들의 미용 성형수술 빈도가 급속하게 늘었다. 서울 소재 10여 개 성형외과에 문의한 결과 전체 환자의 8%가량 차지하던 10대 성형이 최근 들어 15%에 이른다. 종로에 위치한 ㅈ성형외과는 “고교생은 기본이고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상담받으러 온다”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남학생들의 성형수술도 늘었다.

인문계보다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성형수술을 더 많이 한다. 실업계 고교 학생들은 대부분 졸업 후 바로 취업하고 특히 미용이나 서비스업으로 많이 진출하기 때문에 외모가 중요하다. 지난 2월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추 모양(19)은 “나를 포함해 반 전체 34명 중 20명이 쌍꺼풀 수술을 했다. 선생님께서 ‘누가 제일 예쁘게 됐나’라며 우스갯소리도 했다”라고 말했다.

 10대들의 성형을 부추기는 성형외과도 있다.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ㅋ성형외과는 ‘학생 50% 할인’이라는 파격적 조건으로 10대들을 유혹한다. 이 병원은 1백50만원 대인 코 수술을 75만원에 해주고 있어 10대들에게 인기다.

수술비 마련하려 원조 교제 나서는 학생도

10대들 사이에서는 ‘고2 때 성형수술을 해야 가장 예쁘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성형업계에서는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지만 학생들은 사회 진출이나 대학 진학까지 1년의 유예 기간이 남아 있는 고2 때 수술해야 가장 자연스럽게 얼굴 모양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취재 결과 실제로 고2 때 성형수술을 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이른바 ‘수험생 성형’은 옛말이 됐고 ‘고2 성형’이 대세인 것이다. 고3 봄께 촬영하는 졸업 사진에서 돋보이려고 남들보다 일찍 수술을 하기도 한다.

‘얼짱 열풍’ ‘외모 지상주의’가 성형 부채질

 
‘고2 때는 너무 이르다’며 부모가 반대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수술 비용을 모으기도 한다. 겨울 방학을 맞아 고2 때 쌍꺼풀 수술을 했던 남모양(19)은 지난 2월 실업계 고교를 졸업했다. 평소 쌍꺼풀 없는 눈에 불만이 많았던 남양은 중학교 시절부터 외출할 때마다 쌍꺼풀 풀이나 테이프를 붙이고 다녔다. 고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성형외과를 찾아 상담을 받고 겨울방학 1주일 전쯤 수술을 예약했다. 비용은 약 80만원 들었고 부모님이 반대하자 아르바이트로 수술 비용을 마련했다. 그는 “수술 6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고깃집에서 일했다. 하루에 6만원이면 꽤 큰돈이라 힘들어도 참았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수술 비용을 마련하려는 10대들은 편의점, 고깃집 등에서 서빙이나 허드렛일을 한다. 수술비를 빨리 마련하려고 유흥업소에 나가거나 원조 교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움을 좇는 데 세대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10대들의 성형 문화는 성인들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그들의 성형수술 원칙은 한마디로 ‘비용은 적게, 수술은 빨리, 효과는 크게’다. 쌍꺼풀 수술과 코 수술을 가장 많이 한다. 이른바 ‘수술도 아닌 수술’인 쌍꺼풀 수술은 최하 70만원에 1시간 안에 수술이 끝난다. 회복 기간도 1주일 이내로 다른 수술에 비해 짧다. 최근에는 코 수술이 늘었다. 10대들은 ‘쁘띠코 성형’이라고 불리는 오뚝하고 귀여운 코로 만드는 수술을 좋아한다. 성인들처럼 유방확대술, 지방 흡입술 등으로 몸매를 바꾸기보다는 눈과 코 등 얼굴을 돋보이게 만들 특정 부위 수술을 한다. 또 20대들은 취업, 결혼 등을 위해 성형을 하기도 하지만 10대들은 오로지 ‘자기 만족’을 위해 수술을 감행한다.

 
부모가 앞장서 수술실로 안내하기도

10대들은 대부분 인터넷 e메일을 통해 성형 상담을 하고, 정보도 인터넷 카페에서 얻는다. 일단 수술하기로 마음먹으면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자신이 원하는 수술을 했던 회원에게 e메일로 질문하거나 채팅을 한다. 1318의 미용과 성형수술 커뮤니티 ‘주니어 클리닉’을 운영하는 BK성형외과 서재돈 원장은 “3년 전 ‘얼짱’ 열풍이 일었을 때 10대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형 사이트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의사 못지않게 성형수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10대도 있다”라고 말했다. 10대들에게 또래의 입 소문만큼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없다. 압구정동 한 성형외과에서는 한 고교생이 수술을 받고 ‘그 병원 괜찮다’고 소문을 내자 같은 반 친구 20여 명이 줄줄이 수술받기도 했다.

10대 성형에 불을 댕긴 것은 2003년부터 일어난 얼짱 열풍과 ‘루키즘(외모 지상주의)’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카페의 얼짱 콘테스트 대상은 대부분 20대가 아닌 10대 후반이 다. 압구정동 성형외과 골목에서 만난 10대 중 대다수는 예뻐질 수만 있다면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압구정동 서울성형외과 이민구 원장은 “요즘 10대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촬영해 공개한다. 주로 사진은 눈, 코, 입 중심으로 찍기 때문에 눈과 코 수술에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10대 연예계 준비생들이 또래에게 주는 영향도 크다. 외모가 스타의 성패를 좌우하는 한국 연예계에서 성형은 연예 기획사 소속 준비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심지어 미취학 아역 탤런트 준비생의 부모 가운데서도 오디션에 낙방하는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며 자녀의 성형 상담을 받으러 온 이가 있었다. 10대 연예인들의 성형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또래 청소년들도 성형수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부모 역시 과거보다 관대해졌다. 수술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다수 10대들은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최근에는 부모가 먼저 수술을 예약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한다. 신사동 한 성형외과에서 딸의 수술을 예약하러 온 김모씨는 “젊은 시절 외모 때문에 취직이나 결혼에 무척 힘이 들었다. 딸만은 외모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성형외과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2년 전 TV에서 한국을 ‘성형 공화국’ 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외모도 능력’이라는 한국 사회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성형외과를 찾는 10대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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