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철책' 사업, 출발부터 '삐걱'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9.0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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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사업자 삼성 컨소시엄의 계약 불이행으로 차질....방위사업청"공사 기간 연장"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6월 국방부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삼성 컨소시엄(에스원·테크윈·SDS)과 계약한 휴전선 전자 철조망 설치 시범사업(GOP 경계과학화 사업)이 출발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8월31일 방사청의 GOP 사업 담당 책임자는 “오늘 자로 설치를 완료하기로 한 계약을 절반 정도밖에 이행하지 못했다. 삼성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삼성 컨소시엄에 법적 책임을 묻고 지체상금을 물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공사 기간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사업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1천억원대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이 사업은 휴전선 약 2백50km에 걸쳐 설치된 철조망 주변 경계병을 전자 감시·감지 통제 장비로 대체하는 사업으로, 방사청은 지난 5월 공개 입찰을 통해 시범사업자로 삼성 컨소시엄을 선정한 바 있다. 내용은 8월31일까지 41억원을 들여 전방 5사단 지역 15km 구간에 감시·감지 장비를 설치한 뒤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삼성 컨소시엄 밀어주기 의혹으로 업계의 비판과 반발을 샀던 GOP 사업이 이처럼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것은 방사청의 불공정한 사업 진행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방사청은 사실상 삼성 컨소시엄에 본 사업을 계속 맡긴다는 계획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6월 중순 GOP 경계과학화 사업의 장비 선정이 가지는 국가 안보상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공정하고 상식에 부합하는 사업 추진을 촉구한 바 있다. 삼성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된 7월 중순에는 장비의 성능과 허점 등을 지적하며 이 사업자 선정이 삼성컨소시엄 밀어주기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일련의 비판 보도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비록 삼성 제품이 외제라 하지만 국내에서 조립된 장비를 구매하므로 ‘국내 구매’라는 요건을 구비해 사업자 선정에 문제가 없었고, 삼성 컨소시엄 외에 입찰에 참가한 다는 세 개 업체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복합감지 시스템을 제안했기에 특별히 삼성을 밀어주기 위한 특혜는 없었다”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방사청의 이같은 해명에도 이 사업에 심각한 불공정이 개입했다는 본질적인 의혹은 풀리지 않는다. 우선 삼성 에스원이 제안한 핵심 감지 장비는 이스라엘제 광망으로, 국내 공군기지 두 곳에 설치되어 심각한 결함이 드러난 바 있다. 방사청이 이 사업을 맡기 전 육군과 합동참모본부는 각 업체가 제안한 장비들이 국내 현장에 설치된 곳을 방문 조사해 장단점과 허점을 철저히 분석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중간에 돌연 방사청으로 넘어가면서 평가 및 선정 방식은 ‘서류 심사’ 위주로 바뀌었다. 방사청은 각 업체의 제안 서류 위주로 심사 평가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경쟁 업체들 사이에서는 삼성 밀어주기를 위한 포석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삼성 컨소시엄이 군 주요 시설 외곽 감지 장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계약을 위반한 일이 이번만은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에스원은 이미 1999년 공군 비행장 외곽 감지 장비 설치 사업자로 선정되었다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지체상금을 문 전력이 있다. 업계에서는 방사청이 삼성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하자 경력조차 애써 무시했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방사청은 “국가계약령상 지체상금 경력은 1년 이내로 제한한다는 규정을 적용해서 에스원의 8년 전 하자 경력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을 뿐 특혜를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 컨소시엄은 이번에도 또 계약을 지키지 못해 지체상금을 물 처지가 되었다. 방사청은 계약 불이행은 돈으로 책임을 지우면 된다는 식이지만 이 사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휴전선 중장기 안보 문제와 관련한 중기 국방 과제에도 차질을 빚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업 추진을 둘러싼 방사청의 책임은 별도로 남는다.

각종 국내 특허와 국가 공인기관의 인증서, 평가서 등을 구비하고 전국의 주요 시설에 설치되어 성능이 검증된 국산 감지 장비들을 제치고 에스원의 수입 조립 제품을 선정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삼성 컨소시엄이 제안한 감지 장비는 이스라엘·미국 등에 특허와 원천기술이 있다. 방사청은 각 업체에 요구한 제안서 규정에 ‘국내 조달’이라고 했기 때문에 수입 외제라도 국내에서 조립해 조달하면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력 자주화를 내세우는 정부의 국방 목표에 비추어보더라도 경쟁력 있는 국산 감지 장비들을 제치고 수입 외제 조립품을 선정한 것은 명분이 약하다.

심사 평가위원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총 16명의 평가위원 중 13명이 방사청 직원이거나 산하 기관 연구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민간 전문가는 아주대·동양대·카이스트 교수 등 세 명뿐이다. 방사청은 이에 대해 “장비 성능 분야는 군 내에서도 공학박사 학위 취득자를 평가위원으로 위촉했기에 전문성에 문제는 없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렇게 구성된 심사 평가위원이 공정한 장비 선정을 위해 제 역할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방사청이 최근 <시사저널>에 제공한 업체별 감지 시스템의 평가 자료들을 살펴보면 큰 문제점이 발견된다. 삼성 컨소시엄에 이어 2위를 차지해 탈락한 ㅎ사의 경우 감지 시스템으로 순수 국산 광망 제품을 제시했다. 또 다른 ㅅ사 역시 똑같은 제품을 제안했다. 국산은 ‘o’, 수입은 ‘x’, 조립품은 ‘세모’로 표시된 이 평가 기초 자료에 따르면 두 회사는 모두 같은 국산 제품을 제시했으므로 국산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ㅅ사만 국산으로 처리했을 뿐 2위업체인 ㅎ사는 ‘-’ 표시를 해둔 것으로 밝혀졌다.

똑같은 장비를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처리한 것은 당초 유력했던 업체를 2위로 만들기 위한 의도적 조작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이런 결과에 방사청은 “두 회사가 제출한 감지 시스템이 같은 국산품인 것은 맞지만 ㅎ사가 국산이라는 점을 알리는 여러 서류를 내라는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위원들이 잘 몰라서 발생한 문제이다. 모든 책임은 ㅎ사에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불공정한 심사였다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책임을 업체에 떠넘기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방사청이 심사 평가위원의 직무 유기를 감추기에 급급한 변명이다. 방사청이 업체들에 제시한 제안 평가 기준 서류에는 기술 능력 평가위원들의 활동 사항을 규정한 항목이 이렇게 나와 있다. ‘제안 업체의 생산 현장 방문, 제안 물품의 견본품 실사, 업체가 제시한 증빙 자료의 신뢰성 검증’.

2위로 탈락한 ㅎ사측의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인증한 각종 국내 특허 서류와 심사평가서, 인증서 등 모든 증빙 서류를 냈고, 생산 현장에 와서 검증해달라고 전화번호까지 적어넣었는데 이제 와서 국산인지 외제인지 입증할 자료를 업체가 내지 않았다며 잘못 심사한 책임을 ㅎ사에 떠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방사청이 삼성 컨소시엄을 1위로 밀어주기 위해 ㅎ사를 제치려고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의혹 때문에 여야 국회 국방위원들도 자체 입수한 정보와 방사청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이 사업의 문제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업자 선정 초기부터 선정 과정의 불공정성을 집중 추궁해온 열린우리당 원혜영 의원은 “가장 큰 문제는 삼성 컨소시엄이 제안한 이스라엘제 광망과 미국제 광케이블 진동 제품을 조합한 시스템을 국내에 단 한번도 설치한 적이 없고, 따라서 이 감지 시스템은 방사청이 업체에 요구한 필수 항목인 인증서와 시험성적서 등 검증된 서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방사청 규정에 따르면 필수 항목에서 단 한개의 사항이라도 미달하면 이 업체는 탈락하게 되어 있다.

원의원은 이어 이 사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했다. “탐지율 99%에 바람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한 오경보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삼성 컨소시엄의 서류상 답변을 어떻게 증명했느냐고 묻자 방사청은 ‘삼성이 심사위원들과 1 대 1로 면담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해 믿었다’고만 답변하더라.” 이같은 지적에 대해 방사청 GOP 사업 담당 책임자는 “시간이 없어서 우선 서류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온 업체를 선정한 뒤 나중에 검증하려고 사업 추진을 서둘렀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국방위원인 공성진 의원도 GOP 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국감 이슈로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공의원측은 “사업 추진 전반에 걸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방사청에 이 사업 관련 제안서와 최종 평가서, 계약서, 납품 관련 서류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사업자 선정 방식의 허점을 드러낸 GOP 사업은 결국 국회와 감사원 감사로써 문제점이 철저히 규명되고 추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안 업체가 제출한 서류만 믿고서 업체를 평가한 뒤 문제가 생기면 기간을 연장해주겠다는 방사청의 GOP 사업 방식은 특정 업체 밀어주기라는 의혹을 계속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휴전선 안보 측면에서도 안일한 사태인식이라는 지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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