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이 동동 뜬 ‘단물’을 먹는 즐거움
  •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 ()
  • 승인 2006.09.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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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식혜

 
요즘처럼 먹을 것이 흔하지 않던 때에, 추석과 설날은 평소 못 먹던 것을 먹을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였다. 식혜를 먹어보는 것도 이런 명절의 즐거움이었다. 식혜가 상품화되어 팔리게 될 줄 누가 짐작했으랴. 탄산음료 일변도의 음료 시장을 대대적으로 바꾼 이 엄청난 변화를 보면, 의외로 우리의 입맛은 완고하다.

시중에서 파는 식혜를 먹으면서 생기는 아쉬움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엿기름 냄새가 덜 나는 것. 엿기름으로 밥을 발효시켜 단맛을 내기보다는 설탕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집에서 만들 때에도 설탕을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엿기름으로 삭힌 맛이 강하다. 극성스러운 집에서는, 삭힐 때에 밥을 좀 많이 넣고, 밥알이 불어 지나치게 뻑뻑하게 되면 밥알을 건져내 버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설탕보다는 삭힌 단맛을 많이 내고자 노력한 것이다.

다른 불만은 밥알이다. 상품화된 식혜의 밥알은 촉감이 좀 까끌까끌하다. 재료로 찹쌀을 썼기 때문이다. 찹쌀로 식혜를 하면 삭히기가 쉽지만 밥알의 감촉이 부드럽지 않다. 대신 멥쌀밥을 지어 식혜를 하면 식혜밥이 부드럽지만, 밥알 속의 녹말기가 쏙 빠지도록 잘 삭히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다 삭힌 식혜밥은 건져서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 식혜물에는 설탕을 넣어 맛을 내어 따로 둔다. 상에 올릴 때 식혜물에 식혜밥을 띄우면, 식혜밥이 동동 뜬다. 하지만 10분만 지나면 밥알이 단물을 다 빨아들여 가라앉는다. 맛이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하얀 밥알이 동동 뜬 식혜를 먹는 즐거움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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