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프라이머리'가 대권 좌우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9.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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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후보 선출권을 100% 국민에게 넘기는 ‘완전 국민경선제’가 도입되면 대선 판도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광주 이변!’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경험한 여권 인사들은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고 한다. 2002년 3월16일 치러진 광주 경선에서 이른바 ‘노풍’이 몰아쳤고, 이것이 결국 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는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변방의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고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민경선’ 때문이었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일반 국민에게도 대선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 아래 도입한 국민경선이 ‘이변’과 ‘흥행’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찬성” 82.5%

그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난 요즘, 열린우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라는 새로운 경선 방식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경선’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패색이 짙은 여당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주기를 바라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말 그대로 대선 후보 선출권을 100% 국민에게 넘기는 개방형 국민 참여 경선제다. 2002년 국민경선이 당원 50%, 일반 국민 50%로 선거인단을 꾸려 민심 반영률을 사실상 절반으로 제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일반 국민에게 문호를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전도사’를 자처하는 열린우리당 백원우 의원은 “신분만 확인되면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1백만명이 참여하는 대축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정계 개편 없이’ 정계 개편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현재 여권 내부에는 “이런 식으로 가면 정권 재창출은 어렵다”라는 패배 의식이 짙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반한나라당 연합군’을 만드는 정계 개편이 필요한데, 방식이 마땅치 않다.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할 경우 당 안에서부터 또다시 ‘빽바지’ 대 ‘난닝구’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다분한 데다, 상대방인 민주당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장외 블루칩’으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하는 일도 여의치 않다. 고 전 총리가 여당 주자들의 기득권이 보장된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경선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면 그런 기득권이 모두 배제된다. 오히려 국민 지지도가 높은 고 전 총리에게는 유리하다. 따라서 고 전 총리가 명분을 가지고 여권에 합류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민주당도 마냥 버틸 수만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한 선거기획 전문가는 “열린우리당 간판을 그대로 가지고 갈 가능성은 낮지만,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할 경우 여권의 분열을 막고 열린우리당 세력이 또다시 반한나라당 연합군의 중심에 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제2의 노풍’과 같은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권 후보들로는 한나라당 유력 주자들에게 무조건 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참신한 후보를 새로 발굴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후보 가운데 누군가를 골라 새 힘을 불어 넣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 정치 공학식 접근에 익숙한 당원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대거 참여하는 예비 대선을 치르는 것이 유효하다는 판단을 여당 인사들은 하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정동영의 기회?

여당의 바람이 현실로 나타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경선 방식을 도입하는 데는 일반 국민의 반응이 대단히 호의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2.5%로, 반대한다는 의견 13.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역이나 연령, 지지 정당에 관계없이 고르게 ‘찬성’ 응답자가 많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고건·정동영·박근혜 지지층에서는 90% 안팎의 강력한 지지를,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 손학규 지지층에서는 60%대의 느슨한 지지를 보냈다.

제도에 찬성하는 만큼 참여 의지도 높았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도입된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6.2%가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참여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자는 20.7%에 불과했다. 참여 의사로만 보면 지난 대선 투표율 70.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그렇다면 내일 각당의 오픈 프라이머리가 실시될 경우 어떤 후보의 경쟁력이 높을까?

 
“내일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를 뽑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열린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고건 전 총리를 가장 많이 꼽았다(39.6%). 정동영(11%), 강금실(9.4%), 김근태(6.8%)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고 전 총리가 차기 대통령감을 꼽는 단순 지지도에서는 다소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쪽 관련 기사 참조), 뚜렷한 대안이 없는 여권 주자군 안에서는 여전히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여겨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층으로만 한정하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순위에는 변동이 없지만, 고건 36.7%, 정동영 23.8%, 강금실 14.3%로, 고건 지지도는 다소 빠지는 반면 정동영, 강금실 지지도는 두 배 안팎으로 올라간다. 아무래도 열린우리당 소속이냐 아니냐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오픈 프라이머리가 도입될 경우 그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전체 수치보다 그 정당 지지층의 선택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라고 주문한다.

“내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열린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명박(37.1%), 박근혜(27.7%), 고건(16.1%), 손학규(6.4%) 순으로 나왔다. 8~9월 들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흐름이 이번 오픈 프라이머리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층으로만 들어가면 여기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읽힌다. 열린우리당 결과에서처럼 순위 변동은 없지만, 이명박 43.9%, 박근혜 40.5%, 고건 7.4%, 손학규 4.3%로, 이명박·박근혜 지지도는 올라가고, 고건·손학규 지지도는 내려가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을 바짝 뒤쫓을 정도로 치고 올라가는데, 이는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이미 경선 구도가 ‘이명박 대 박근혜’ 양강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명박, 오픈 프라이머리 적극 찬성

현재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서는 이 전 시장측이 훨씬 적극적이다. 7·11 전당대회에서 한 자락이 드러났듯이 한나라당의 ‘당심’은 그동안 당 대표를 하며 당권을 장악했던 박 전 대표에게 더 기울어 있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단순 지지도와 오픈 프라이머리 지지도 조사에서는 이 전 시장이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 시장이 오픈 프라이머리의 도입을 먼저 치고 나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여당이 이슈를 주도하고 데다, 당원 50%, 일반 국민 50%로 선거인단을 꾸린다는 현재의 경선안(혁신안)을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홍준표 의원이기 때문이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도입을 반대하는 당내 인사들은 벌써부터 “혁신안을 만든 사람이 이 전 시장과 가까운 홍의원인데, 이 전 시장이 그 안을 안 따르겠다고 하면 되겠느냐?”라고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이에 이 전 시장의 한 참모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든 안 하든 간에 철저하게 대비한다는 것이 이 전 시장의 생각이다. 내년 설까지 박 전 대표와의 지지도를 15% 이상 벌리면 당심도 돌아서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세론이 퍼지면 굳이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고, 오픈 프라이머리가 필요하다면 여당에서 먼저 치고 나오리라는 것이다.

‘당심’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박 전 대표측은 일단 게임의 룰이 바뀌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바람이 몰아치고, 다른 주자들이 불공정 게임을 주장하고 나설 경우 마냥 버틸 수만은 없는 지경에 몰릴 수도 있다. 게다가 여론의 흐름이 워낙 변화무쌍해서 그때가 되면 박 전대표가 또다시 1위 자리를 탈환할 수도 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기본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에 찬성한다. 그러나 당장 지지도 올리기가 절실한 상황에서 ‘제도’ 얘기를 먼저 꺼낼 처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어차피 강재섭 당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만나 ‘경선 방식에 대해서는 내년으로 논의를 미룬다’고 합의한 만큼, 오픈 프라이머리는 내년 초 정가의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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