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성에 이렇게 당했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11.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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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주의를 표방하는 삼성그룹의 불공정한 행위에 자신들의 꿈이 짓밟혔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인들의 피해 사례를 추적해 공개한다.

 
“그동안 상품 일등하는 데만 신경을 바짝 쓰다 보니까 삼성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대해져가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지난 2월7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백한 내용이다. 이회장은 당시 8천억원의 사재를 사회에 헌납한다고 발표하면서 이제는 삼성이 중소기업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발전해가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요즘 삼성은 얼마나 변했을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과 협력하거나 거래하다가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눈물과 한숨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공정위원회로, 경찰로, 검찰로, 법원으로, 언론으로 달려갔다가 ‘삼성공화국’으로 상징되는 두터운 보호막의 실체만 확인하고 절망했다며 마지막으로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올가을 국정감사장 곳곳에서 이들 피해 중소기업인의 한과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것이다.

삼성을 상대해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싸움을 벌이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피눈물과 한은 ‘일등주의 삼성’의 뒤안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시사저널>이 지난 3주일간의 추적 취재를 통해 이 글에 소개하는 다섯 개 중소기업 사장들의 사연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틈만 있으면 직원들에게 강조해온 ‘법보다 도덕 경영’이라는 구호가 아랫목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으나 <시사저널>은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대기업 집단에서 차지하는 선도적 위상으로 볼 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하루속히 변신해야 한다는 뜻에서 1차적으로 삼성에 의한 중소기업 피해 사례와 분쟁 실태를 집중 보도한다(편집자주).

▒ 디지털네임스 조관현 대표
‘천지인 자판 기술’ 되찾기
8년 간의 기나긴 전쟁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중소기업 디지털네임스(대표 조관현)는 정보통신 관련 아이디어 특허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 조관현 대표는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애니콜에 사용하는 ‘천지인 자판 기술 특허’를 도용해갔다고 주장하며 8년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내가 20대에 삼성과 분쟁이 발생해서 얼마 뒤면 40대를 내다보는데 길고도 외로운 특허 싸움을 벌이다 이제 지쳐가고 있다. 삼성과 싸운다고 하니 주변 친구도 지인들도 다 떠나고 명예마저 타격을 입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조관현 대표는 그러나 지난 5월 초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삼성과의 애니콜 자판 기술 도용 특허 소송에서 승소했다. 아울러 이른바 ‘천지인 자판’으로 삼성이 자체 개발 기술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해온 삼성의 기술 특허는 무효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고법 판결은 조사장이 지난 8년간 주변으로부터 ‘돈키호테’ 취급을 받으며 벌여온 외로운 진실 게임에서 거물급 법조인 출신들이 버티고 있는 삼성의 아성을 기적처럼 무너뜨렸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조관현 대표가 삼성전자와 휴대전화 자판 기술 특허 전쟁을 벌이게 된 때는 8년 전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조씨는 1996년 한글 창제 원리를 기술적으로 휴대전화 자판에 응용할 수 있는 ‘천지인 자판’을 처음으로 고안한 뒤 국내 특허를 출원했다. 이어서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통신표준기술협회(TTA)에 이 자판을 휴대전화 표준 방식으로 선정해달라고 제안했다. 이 소식을 듣고 먼저 LG정보통신에서 조씨에게 접근해 기술 사용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그 와중에 삼성전자측은 상품기획부 소속 하 아무개씨를 조씨에게 보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삼성에 기술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에서는 나를 6개월간 찾아다녔다며 천지인 자판 기술을 애니콜 휴대전화에 적용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삼성과 계약하면 이 기술을 국가 표준으로 만들어주고 다른 경쟁 회사들에도 비싸게 팔 생각이라고 설득했다. 국내 최고 기업과 계약하면 여러 모로 유리할 것 같아 내가 그러자고 승낙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삼성전자에서는 조씨를 스카우트하겠다고까지 제안했지만 그는 이 제의를 거절하고 천지인 자판 기술 사용 계약만 맺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998년 3월11일 조씨는 자신의 기술을 삼성전자가 3년간 2억원에 사용한다는 계약서에 서명 했다. 3년 후부터는 시장 반응을 보아가며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으면 상응하는 사용료를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 조씨와 계약서를 작성한 삼성전자측에서는 사장이 출타 중이니 다음날 사장 사인을 받아 최종 계약서를 보내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특허 내용과 계약서를 가져간 삼성전자의 태도는 돌변해 있었다. 자기네가 이미 출원해놓은 유사한 특허가 있다며 조씨에게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하기가 곤란하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기술 특허를 도용당했다는 생각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조씨는 독자적으로 ‘천지인 자판’을 출시했다. 조씨의 이 자판은 1999년 봄 특허 등록 허가가 나왔다. 그러나 삼성전자도 그 뒤 자기들이 천지인 자판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다며 이 기술을 적용한 휴대전화를 출시해 소비자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결국 조씨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자신의 특허를 도용했다며 9백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조씨의 천지인 기술 특허에 대해 무효 심판 청구 소송으로 맞섰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삼성전자는 조씨에게 서로 합의하자고 종용했다고 한다. 조씨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기술 특허들을 삼성전자가 사용할 테니 천지인 특허를 삼성이 사용하는 데 이의 제기를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조사장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조씨가 아닌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씨는 이에 불복해 삼성전자의 특허를 상대로 무효 심판을 다시 제기했다. 결국 항소심 법원은 지난 5월 조씨 특허에 손을 들어주고 삼성전자가 낸 한글 자판 특허는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 “삼성 한글 자판 특허는 무효” 판결

분쟁의 핵심은 현재 국내 휴대전화 소비자들에게 인기리에 보급되어 있는 애니콜 한글 자판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했느냐이다. 삼성전자측은 자신들이 조씨보다 앞선 1995년 이와 유사한 기술을 개발해 특허 등록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냈다는 특허 기술은 이른바 ‘스트로크(화살표) 방식 한글 자판’ 기술이다. 그러나 특허청에 등록된 삼성전자의 이 유사 특허란 한글 창제 원리인 천지인(ㅣ . ㅡ)대신 스트로크 방식(→,↓ㆍ)이었다. 그럼에도 삼성이 시판 중인 애니콜 휴대전화 자판은 조씨가 특허를 낸 천지인 한글 자판 배열과 흡사하다. 이 때문에 조씨는 삼성전자가 개인의 독창적 기술을 사용 계약까지 맺고서 파기 한 뒤 도용해갔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분쟁의 쟁점은 자음 모음 음소 단위의 출력과 구분 방법에 관한 양측의 기술 사상이 동일한지 여부에 있다”라고 전제하고 “두 발명은 자음과 모음 구분 처리 방법에 관해 대응되는 구성에 차이가 있고 음소 내용도 서로 다르므로 서로 다른 발명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이어서 삼성전자의 유사 특허에 대해 고법은 “특허법 42조4항의 규정에 위반되므로 무효가 되어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애니콜 자판을 천지인 개념이라고 일반에 광고해왔다. 그러나 삼성측은 수사기관 조사에서 “애니콜 자판은 천지인 방식이 아니고 천지인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관현 대표는 “삼성이 애니콜 자판을 천지인이라고 광고하지 않고 자기네 스트로크 방식에 의한 휴대전화라고 광고하며 출시했다면 나는 기술을 도용당했다고 의심하지도, 문제 삼지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개인이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자기네 기술로 둔갑시켜 엄청난 시장 선점을 누린 처사를 보고 이래도 되는가 하는 울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8년간 싸워왔다”라고 말했다.

고법에서 어렵게 이긴 조대표는 아직도 안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소송 과정에서 삼성의 두터운 벽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국내 로펌은 다 뒤져 부탁했지만 조대표의 소송 맡기를 고사했다. 대부분 삼성의 사건을 한두 개씩은 맡고 있고, 삼성을 건드려 보아야 손해볼 일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조대표는 “대법원은 전관예우가 특히 심하다는데 한국 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바뀌지 않는 한 삼성의 힘 앞에 안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 분쟁의 구체적인 사실 확인과 조씨의 주장에 대한 견해 표명을 요청하자 삼성전자측에서는 “법원에서 분쟁 중인 사건이라 취재를 사양하겠다. 대법원에서 잘 대응해 삼성의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라고 말했다.

▒ 도담시스템스 장명광 사장
“지능형 로봇 첨단 기술
삼성테크윈에 침해 당했다”


지난 9월28일 방위산업체인 삼성테크윈에서는 지능형 감시 경계 로봇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고 충남 천안의 삼성연수원에서 시연 행사를 가졌다. 주요 언론은 이 로봇에 대해 ‘국내 최초’, 또는 ‘세계 최고의 성능’ 같은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극찬했다. 삼성테크윈에 따르면, 이 로봇은 산업자원부가 삼성테크윈을 비롯한 네 개 기업과 고려대에 과제를 주어 공동 개발한 제품으로 2003년부터 3년간 산자부 예산 49억원 및 민간 자금 49억원 등 총 98억원을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삼성테크윈은 경기도 소재 군부대에서 현장 시험 평가를 실시 중인 이 로봇을 2007년 말부터 군부대와 주요 민간 시설에 경계 목적으로 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이 지능형 경계 로봇 출시를 발표하던 날 한 중소기업 사장은 통음을 하며 삼성과 산자부를 원망하고 있었다. 도담시스템스 장명광 사장이었다. 방위산업 분야 벤처 중소기업인 도담은 2000년부터 수차례 내부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인명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투형 경계 감시 로봇시스템 개념 고안에 몰두했다. 수십억원을 들여 사운을 걸고 연구 개발에 매달린 끝에 2002년 9월 지능형 로봇 장비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특허출원 등록 및 의장 등록까지 마쳤다.

 
2000년부터 육군에 소요 제기를 한 상태에서 로봇 개발에 들어갔기에 도담의 지능형 전투 로봇이 나오자 국내외 군 관계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다. 무인추적 자동사격 시스템이 장착된 도담의 지능형 로봇은 ‘이지스’라는 이름으로 시제품이 나와 군부대 사격 시험까지 마치고 각종 방위산업 전시회에 출시되어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호평 속에 도담의 이지스 로봇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도 두 대가 실전 배치되었다. 문제는 도담의 지능형 첨단 전투 로봇이 출시된 뒤 산자부와 삼성테크윈이 유사한 기술을 연구 과제로 잡으면서 발생했다. 2002년 말 도담의 로봇 전시회에 삼성테크윈 관계자들이 찾아와 관심을 보이며 여러 자료를 요청했다. 도담은 특허와 의장등록을 자기네가 갖고 있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삼성테크윈 방문자들에게 연구 성과를 설명하고 로봇 스펙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도담시스템스는 2006년 6월 한국항공(KAI)에서 근무하던 우수 기술진이 분사해 만든 회사다. 한국항공은 1999년 삼성·대우·현대 등의 방산 분야가 통합될 때 삼성테크윈에서 항공기 사업 부문으로 떨어져 나온 회사다. 도담의 직원들은 멀리는 삼성테크윈과 인적 관계가 돈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로봇 스펙을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도담에서 삼성테크윈을 상대로 지능형 로봇 기술 및 아이디어 절취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도담의 지능형 로봇이 국내외 군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상한가를 칠 무렵인 2003년 6월 산자부는 ‘성장 동력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그 속에는 지능형 로봇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당시 김칠두 산자부차관이 삼성테크윈 이중구 사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방 철책에 지능형 로봇을 배치하고 1만여 명의 병력을 절감해 산업 요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라는 요지로 공개 발표하면서 발생했다. 도담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산자부에 경위를 묻자 산자부 사무관은 도담에 “이미 장관 차원에서 삼성테크윈에 사업권을 주기로 내정된 일이니 도담은 삼성의 협력업체로 들어가라. 산자부와 막나가고 싶으면 공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라”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산자부의 처사에 절망한 도담은 정식 공문을 보내 이의를 제기했다. 무인감지 탐지 식별 추적 사격이라는 개념은 도담이 처음으로 고안한 아이디어 특허였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삼성테크윈이 산자부와 짜고 이미 개발 완료한 로봇의 기술 특허를 삼성이 부당하게 침해하려 한다고 의심해서였다. 국민 세금 중복투자 문제 등 정부 예산을 감안해서라도 일방적인 삼성테크윈 밀어주기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산자부는 도담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도담의 반발이 거세지자 산자부는 2003년 가을 지능형 로봇 개발 과제를 공개 경쟁 입찰로 결정하겠다고 공고했다. 도담은 당시 사실상 삼성테크윈에 지능형 로봇 개발 과제를 주기로 결정해두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공개 입찰을 한다고 판단했지만, 정부 절차에 따르지 않을 경우 향후 다른 사업에서의 불이익을 받게 될까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입찰에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낙찰자는 결국 삼성테크윈으로 결정되었다.

삼성테크윈 로봇 출시되자 특허 소송 제기

이후 도담은 삼성과 산자부를 상대로 지능형 경계 로봇 개념과 기술을 도용해갔다는 의혹과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긴 싸움에 들어갔다. 먼저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했다. 감사원은 산자부 감사실로 민원을 넘겼는데, 나온 결론은 ‘이유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입찰 방해죄로 산자부 장관과 삼성테크윈 사장을 고소했지만 경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도담은 다시 삼성테크윈을 상대로 특허권 침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특허 심판원은 삼성테크윈이 아직 로봇을 연구하는 단계에서는 특허 침해를 따질 비교 대상이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결국 도담은 삼성의 로봇이 출시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특허 전쟁에 나서기로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동안 도담의 지능형 전투 로봇 기술은 해외에서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도담은 세계 최고의 제품만 고집하는 중동의 한 국가 군사기지에 미국 업체를 제치고 600만 달러 어치 수출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1억 달러어치 수출의향서를 받아냈다. 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시리아 등 다른 중동 산유국들과도 5억 달러에 달하는 막바지 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도담의 00사장은 “해외에 수출되어 성능이 검증된 첨단 장비를 국내에서는 테스트조차 해주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은 삼성테크윈의 가상 장비를 몇 년씩 기다려주면서 국책 사업으로 만드는 현실에서 중소기업이 설 땅은 어디냐”라고 개탄했다. 도담은 지난 9월28일 삼성이 마침내 지능형 로봇을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본격적인 특허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

이런 사태 전개에 대해 삼성테크윈측은 “도담의 로봇과 우리가 개발한 로봇은 컨셉트와 운용이 달라 비교가 불가능하므로 특허 소송을 내더라도 전혀 거리낄 게 없다”라고 자신했다. 지능형이라는 개념에서 도담측 로봇보다 삼성테크윈이 출시한 로봇이 훨씬 더 진전된 기능들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도담이 제기하는 아이디어 도용 의혹에 대해서는 “국방 관련 특허는 입찰하기 전에 특허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특허를 도용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도담과 삼성테크윈의 지능형 경계 로봇을 둘러싼 대립은 도담이 제기하는 특허 소송을 거쳐야 그 진실이 가려질 전망이다.  

▒ 얼라이언스시스템 조성구 대표
뒤바뀐 입찰 조건
“삼성이 그럴 수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얼라이언스시스템(대표 조성구)이 SI(System Integration) 업계 선두 주자인 삼성SDS와 인연을 맺은 때는 2002년 4월이었다. 이 중소기업이 5년 동안 70억원을 투자해 종이 서류 없이 전자 서류로 업무를 추진하는 개념의 신기술을 개발하자 삼성SDS가 이 기술을 사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삼성은 우리은행으로부터 BPR 시스템을 수주했다. 이 시스템은 은행에서 각종 문서를 스캐너로 입력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전국 7백 개 본점에서 이용하는 첨단 시스템, 여·수신과 외환 등 모든 은행 업무를 서류 없이 처리한다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현재는 각 은행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SDS가 얼라이언스와 합의한 우리은행 납품 가격은 ‘3백명 사용자’ 조건 아래 11억5천만원으로 결정되었다. 당초 조사장이 제시했던 29억원의 3분의 1에 불과했지만 SDS측에서 가격 인하 대가로 30억원어치를 추가 구매해 삼성 계열사에 독점 납품하겠다고 제안해 합의가 된 계약이었다.

 
문제는 계약 체결 1년 후 얼라이언스 조사장이 다른 경로를 통해 이 사업 입찰 조건에 사기가 개입했다는 제보를 접하면서 발생했다. 삼성이 우리은행과는 ‘무제한 사용자 조건’으로 이면 합의하고, 납품업체인 얼라이언스에는 ‘3백명 사용자 조건’으로 속였다는 내용이었다. 무제한과 3백명 사용자 조건은 가격 면에서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큰 충격을 받고 사실 확인에 나선 조사장에게 우리금융정보 관계자는 놀랍게도 입찰 조건이 무제한 사용자 조건이었다며 삼성의 잘못이 있었다고 확인해주었다는 것이다. 경쟁 입찰에 참가했던 LG CNS, 한국IBM, 현대정보기술측에서도 입찰 조건은 무제한이었다고 확인해주었다. 이때부터 조사장은 삼성과 기나긴 진실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조사장은 2004년 8월 삼성SDS를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1백4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SDS가 입찰하는 과정에서 입찰 예정가를 산정하기 위해 3백명 동시 사용자 기준으로 견적서를 제출한 사실을 마치 최종 입찰 및 계약 조건이 3백명 사용자 조건이었던 것처럼 얼라이언스를 속여 그 차액만큼 이득을 취한 특가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요지였다. 조사장이 소송을 내자 삼성SDS와 우리은행측은 “당초 무제한 사용자 제안 조건이었지만 나중에 3백명 동시 사용자 조건으로 최종 입찰 조건이 변경되었고 여기에 최저가를 써낸 SDS가 낙찰되었기에 사기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 수사는 처음 서울중앙지검에서 시작했으나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1년4개월 만에 조사장은 엉뚱하게도 대검 마약반으로부터 조사장에게 사건을 무혐의 처리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입찰 참가 기업들은 지금도 당시 입찰 조건의 변경에 대한 합의나 통보 등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네 개 업체가 3백명 동시 사용자 기준으로 제출한 견적서는 입찰 조건 변경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가격 참고용 중간 자료로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우리은행측과 SDS가 내세우는 의혹투성이의 증언과 자료를 채택하는 대신 조사장과 입찰 참가 업체들이 제시하는 증거와 증언을 배척하고 SDS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SDS는 검찰 수사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대검까지 세 번에 걸쳐 나름으로 수사를 해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리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소송 낸 후 갖가지 시련 닥쳐

산더미 같은 증거 서류와 녹취록 등을 기자에게 풀어놓은 조사장은 “이 많은 확인서라든지 협약서, 증인 진술을 배척하고 삼성과 우리은행 편을 들어주는 검찰이 ‘삼성 수비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라고 항변했다. 이후 조사장은 삼성에 대항하는 ‘투사’로 변신했다. 그는 이 사건을 국산 소프트웨어 산업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 벤처기업에 대기업이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러도 시정은커녕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진실을 왜곡하고 노무현 정부가 주장하는 중소기업 살리기에 역행하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고 주장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이런 조사장의 싸움에는 보복이라고 의심될 만한 일들도 뒤따랐다고 한다. 삼성SDS를 상대로 소송을 내자 얼라이언스 지분 60%를 가진 조사장을 제치는 대표이사 변경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 주거래처인 ㅋ회사에서는 갑자기 밀린 대금을 한꺼번에 결제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연대보증이었던 조사장을 재기 불능으로 만드는 45억원대 연대 보증 청구서가 들이닥쳐 조사장은 살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조사장의 회사는 ㅋ사에 강제 인수되었지만 ㅋ사는 고의적으로 얼라이언스를 돌보지 않고 사실상 문을 닫게 만들었다. 해외 유명 벤처기업을 능가하는 기술력으로 한때 벤처 신화를 꿈꾸던 기업이 삼성과 악연을 맺은 후 한순간에 몰락한 것이다. 조사장의 이런 일련의 고사 작전 뒤에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한 것이다.

그는 이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대기업에 피해를 당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로 내몰린 중소기업 사장들을 모아 ‘대·중소기업 상생 협회’를 결성했다. 올가을 국감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국회 내에 ‘B2B 상생 협회’가 결성되도록 하는 데도 조사장의 이런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 한진건업 반성오 회장
‘불공정 하도급’과 싸우다
회사 문 닫고 몸은 병들고…


설립된 지 27년 된 건설 하도급 업체 한진건업(반성오 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삼성전기 부산 HID 제3공장 건설에 투입된 때는 2004년 2월이었다. 당시 공장 설립이 급했던 삼성에서는 공사 시방서나 도면 건축물도 없는 상태에서 한진건업과 공장 배관공사 계약서를 작성했다. 2004년 1월 초 공사 금액 12억7천만원으로 물량 단가 계약을 체결한 한진건업 반성오 회장은 4월 말까지 공사를 마치라는 조건을 접하고 눈앞이 아득했다. 2월16일에 나온 첫 도면에 이어 수정 도면은 4월16일에야 받았다. 이렇게 벼락치기 공사를 하다 보니 설계 변경 횟수만도 44차례에 이르렀다. 결국 공기가 늘어나 그해 8월31일 공장이 준공되었다.

분쟁은 준공 이후 생겼다. 공사 금액이 60억원으로 불어나자 한진건업측은 실비 기준으로 60억원을 요구했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은 34억원만 인정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결국 투입된 공사 대금 25억여 원을 받지 못해 이 회사는 2004년 말 결산에서 22억원 적자가 발생해 이듬해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올 들어 사업자 등록이 말소되었다. 반회장은 그 충격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 지금도 다리를 절고 있다.

 
분쟁의 화근은 특약 조항에 있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당시 건설업계의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건설표준 하도급 계약서’ 외에 한진건업측에 특약 조항을 넣도록 했다. 이는 계약 당시 한진측이 예측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들로서 철저하게 하도급 업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반회장은 “공기는 정해져 있고 물량은 늘어나지, 공법도 상위 공법으로 바뀌어 자재비도 늘고 야간 작업·특수 작업을 하다 보니 인건비도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반회장이 이런 상세 내역을 담은 정산 관련 서류를 넘기자 삼성엔지니어링은 인정하지 않았다. 계약상 단가 계약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양측 사이에 공사 대금 협상이 한창이던 그해 말 한진건업은 삼성엔지니어링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e메일에는 34억원을 주장한 삼성엔지니어링 현장측의 의견과 49억원으로 산정한 삼성엔지니어링 본사 발주팀의 정산 내역이 2백60쪽에 걸쳐 명시되어 있었다. 그것도 돌관 작업비라든지 고소할증비 등은 빠진 상태였다. 이에 비추어보면 분쟁 초기부터 삼성엔지니어링은 추가 공사비 발생에 대해 사실상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에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 나와

그러나 반회장은 공사 실대금 전액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엔지니어링측에서는 45억원에 아산 공장 현장을 수의 계약해줄 테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고 계속 거래를 하자고 나왔다. 반회장은 역시 17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한 방송사의 취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삼성엔지니어링측은 반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50억원대에 이르는 합의안을 제시했지만 이 또한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협상 과정에 대해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한진건업측이 계속 문제를 삼으면 삼성엔지니어링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회장이 뭘 원하는가 알아보는 차원에서 떠본 얘기였다”라고 말했다.

결국 반회장은 지난해 2월 이 사건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하도급법상 대금 지급 기일을 제대로 안 지켰고, 공사 시작 시점에 도면도 없었던 점, 추가 공사에 대해 변경 계약서와 제안서를 주지 않은 점, 현장소장을 추천하는 등 경영 간섭을 했다는 점 등을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삼성의 하도급법 위반에 대해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추가 공사비가 과다 투입된 데 대한 손실 보전은 민사 소송으로 가라는 요지로 회신했다. 결국 공정위가 삼성의 편을 든다고 판단한 반회장은 이 사건 처리에 관련된 공정위 사무관 4인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고발인 조사를 거치지 않은 채 이들을 무혐의 처리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사건 처리에 대해 “공기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 서로 협의에 의해서 이뤄진 점을 감안해 하도급법 위반 검토 대상에서 뺐고, 공사 대금 미지급 문제는 당사자 간 민사 사안이라 서로 협의 해결하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분쟁 과정에서 27년간 운영해오던 회사가 부도나고 화병으로 쓰러지는 등 타격을 입은 반회장은 결국 지난 9월 마지막으로 호소할 곳을 찾아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 10월16일 공정거래위원회 상대 국감에서 열린우리당 이원영 의원은 자기가 조사한 삼성엔지니어링과 한진건업의 사례를 들어 공정위의 부실 감사를 이렇게 질타했다. “지난해 2월 삼성엔지니어링의 하도급 업체인 한진건업이 공정위에 불공정 하도급 거래 혐의로 삼성엔지니어링을 신고했다. 발주자는 삼성전기로 원사업자와 특수 관계이고, 삼성엔지니어링의 상근 감사는 공정위 하도급국장 출신이다. 이 사건 조사는 불공정 특약, 하도급 대금 적정성, 부실 조사 외에도 서면 교부 위반, 대금 지급 기일 위반 등 의문투성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보고서로 무혐의 처리해 삼성에 면죄부를 줬고 한진건업은 사실상 문을 닫았다. 공정위가 엄격한 법 집행을 소홀히 하면서 상생이니 자율이니 떠들지만 결과적으로 대기업을 편드는 처사이다.”

한진건업 반성오 회장은 10월19일자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이 사건을 재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다시 제출했다. 지리한 분쟁에 대해 삼성엔지니어링측은 “한진건업에서 공정위에 네 차례나 제소하고 각 언론사에 제보한 사건이지만 대기업의 애로 사항을 다 해명했다. 삼성의 이미지가 있어서 성실하게 협의하려고 노력해왔으나 양측의 주장에 차이가 너무 컸다. 현재 민사 소송 중이니 연내에 법원 판결이 나오면 그에 따라 해결하겠다”라고 밝혔다.

▒ 컴네트플러스 최두일 사장
믿었던 친정이 등 돌려
코스닥 등록 꿈도 ‘물거품’


“우리가 다니던 삼성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절망감을 느낀다. 이건희 회장에게 우리의 억울한 사연을 알리려고 3년 동안 매주 이회장 앞으로 e메일을 보내고 있다.”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삼성네크윅스 협력 업체 컴네트플러스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는 1999년 삼성SDS가 구조 조정을 실시하면서 산하 정보네트워크 센터 소속 운영관리 사업 부문 종사자들이 분사해 만든 회사다. 당시 27명의 ‘삼성맨’들은 10~20년치 퇴직금을 투자해 사원 지주회사로 컴네트플러스를 설립했다.

40여 명의 분사 대상 인력이 구조 조정에 불안해하자 당시 삼성SDS 김종환 상무(현재 회장)는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설득했다. “전별금·퇴직금 없이 현재 업무를 그대로 가져나가면 몇 년 후 코스닥 등록이 가능할 것이다. SDS에서도 투자할 테니 여러분이 열심히 회사를 키워 등록해서 혜택을 보라.” 분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SDS 산하 정보통신 부서가 삼성네트웍스로 명칭이 바뀌면서 컴네트플러스의 모회사도 삼성네트웍스로 바뀌었다. 분사 초기 2년간 삼성이 위탁한 국내 네트워크 전산망 관리 업무도 순조로웠다. 이들은 이를 악물고 기업을 키워 분사 3년 만인 2002년 매출액 2백12억원에 순익 12억원, 인력 3백50여 명의 중견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렇게 되자 컴네트플러스는 주주총회를 열어 코스닥 등록을 서둘렀다고 한다.

 
분쟁은 이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삼성네트웍스가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독과점 방지 지침’에 따라 컴네트플러스를 분할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삼성네트웍스 박양규 사장은 2003년 3월14일 컴네트플러스에 공문을 보내 주요 업무에 대한 위탁 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하는 한편 4월15일 버츄얼넷이 새로 설립했다. 이로써 사실상 컴네트플러스 직원들의 코스닥 등록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를 들어 컴네트플러스 최두일 사장과 남은 직원들은 삼성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에 삼성네트웍스측은 “계약 기간 중 컴네트의 업무 수행이 소홀해지고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등 독점 공급 계약의 문제가 드러나고 위탁 업무 외에 자신의 업무를 하는 등 부정한 계약 운용 행태가 드러나 시정을 요구했지만 듣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삼성네트웍스는 컴네트플러스의 코스닥 등록 무산도 자체 내부 사정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 와중에 컴네트플러스에서 노드 운영 업무를 총괄하던 최○○ 상무가 신설 회사 버츄얼넷으로 떠나면서 그를 통해 컴네트플러스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컴네트플러스에 남은 직원과 최사장은 삼성네트웍스에 대한 매출 의존율이 54%에 이르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해당 업무와 인력을 양도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독과점 방지 명분으로 설립된 버츄얼넷은 삼성네트웍스와 박사장의 측근인 왕 아무개씨, 컴네트에서 이탈한 최상무 사이에 각각 2 대 4 대 4 지분율로 설립된 회사였다.

영업 양수도 무효 확인 소송 제기

“오십 평생 삼성에 뼈를 묻고 분사 회사를 잘 키우는 것도 삼성에 충성하는 일로 믿어왔지만 이로써 모든 것이 무너졌다.” 결국 지난해 컴네트플러스의 간부와 남은 사원들은 삼성네트웍스에서 빼앗아간 업무를 원상 복구시키고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며 분쟁에 돌입했다. 법원에 영업 양수도 무효 확인 소송과 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공정위에는 불공정 거래로 신고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사건 일체에 대해 삼성네트웍스측과 버츄얼넷측의 주장을 인정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판정했다. 공정위 판정을 기초로 1심 법원도 영업 양수도 무효확인 소송을 기각해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이를 토대로 삼성네트웍스에서는 컴네트플러스의 주장이 억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삼성이라는 이유로 명예와 신용에 타격을 입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싸움에 지친 컴네트플러스 최두일 사장과 남은 10여 명의 직원은 “친정인 삼성과 싸우면서 주변에서 아는 사람은 다 피하고 따돌렸다. 어쩌다 삼성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담할 뿐이다”라고 호소한다. 이건희 회장과 구조본부에서 컴네트플러스의 분사 과정과 이후 업무를 빼앗긴 과정을  감사팀을 내려보내서라도 정밀 조사해 공정하게 해결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분쟁이 생기니 결국 삼성 상층부도 내 식구 감싸기로 나오더라는 하소연이다. 20~30년 된 삼성맨 출신들조차 투사가 되어 거리로 나서는 오늘의 상황이 바로 대기업 삼성이 처한 위기의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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