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집안’에서 철 들기
  • 김서정(아동문학평론가) ()
  • 승인 2006.12.0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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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걱정쟁이 열세 살> 최나미 지음/정문주 그림·사계절 펴냄
 
IMF 이후 가족의 해체를 다루는 이야기가 동화계의 한 트렌드가 된 듯하다. 그런 가운데 해체의 양상을 다루는 경향도 달라졌다. 사업 실패나 죽음 같은 불가항력의 비극을 견뎌내고 가족이 다시 재결합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던 이야기들이, 부모의 철없음과 이기심 같은 이유로 해체된 가족이 그냥 그렇게 흩어진 채 굳어지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2005년 그렇게 변화하는 해체 가정을 독특하게 그려낸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로 동화계 관심의 중심에 섰던 최나미가 올해에도 그에 못지않은 역작 <걱정쟁이 열세 살>로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전작이 소통 부재의 이기적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여자의 삶’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펼쳐냈다면 올해의 책은 그렇게 각각 철없고 말없는 식구 안에서 ‘아이의 삶’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따라가고 있다. 아이가 온전히 핵심 사안이라는 점에서 좀 더 동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군청색 바다에서 커다란 배를 몰고 세상으로 나가는’ 꿈을 찾아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을 떠난 아빠, ‘할 말을 다 못한 게 억울하다고 (......) 자기 인생이 불쌍하다고’ 끝없이 울기만 하는 엄마. 집안 사정 아랑곳없이 제 필요만 야무지게 채우는 이기주의자 누나. 이런 가족이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주인공 남자아이 (정)상우는, 밖에서는 정상 가족의 일원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무섭게 변하는 사회의 물질적 조건과 여전히 옛날에 고착돼 있는 정신적 가치관, 혹은 정신없이 자라는 몸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 같은 인간과 사회의 기본 불균형이 투사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런 상우가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진실도 별거 아닐 수 있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 집에서 가장 정상적인 내가 오히려 엄마한테 걱정거리였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역시 ‘비정상’ 가족의 일원인 채팅 친구 오폭별 덕분이다. 삶이 어쩔 수 없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다시 세워나가는 성숙하고 현명한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상우는 하나 갖춘 셈이다. 그 성숙은 호들갑스럽지 않고 ‘씨알만한 희망을 품고 싶’은 정도지만, ‘걱정쟁이 열세 살’에게 딱 어울리는 개연성을 지닌다. 그런 개연성이 이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 제고에 공헌한다.

철없는 어른들의 어이없는 싸움질이 분분한 요즈음, <걱정쟁이 열세 살>이 올해의 책으로 더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우의 아빠는 집을 나가 차라리 다행이지만, 어른들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같은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 상우가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다. 좋은 동화는 이처럼 아닌 듯하면서 세상을 되비추고 반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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